작품 후반에 들어서며 고수가 된 일지매답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게 된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가.
정일우
: 조금 안정이 됐다. 사실 어제 김자점 역의 박근형 선생님과 같이 연기하는 신이 있었는데 워낙 연기를 잘 하시는 데다 엄한 분이라고 들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대본은 오래 전에 나왔으니까 그 신은 두 달 전부터 연습을 했고, <하이킥> 때 나를 가르쳐 주셨던 이순재 선생님을 찾아뵙고 부탁드려 따로 배우기까지 했다. 그런데 막상 어제는 박근형 선생님께서 너무 잘 해 주셔서 리허설만 50번 가까이 맞춰봤다.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 주시고 내가 NG 내더라도 괜찮으니까 다시 해 보라고 격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촬영장에 가면 시청률은 잊게 된다”

<하이킥>의 윤호 이미지 때문에 노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노력파에 가까운 것 같다.
정일우
: 작품 할 때는 작품만 파는 편이다. 그래야 끝나고 나서 후회나 아쉬움이 없으니까 일이 주어졌을 때는 거기에 미쳐서 하는 게 좋다.

그런데 <돌아온 일지매>를 하면서 좀 달라진 게 있다면 뭔가.
정일우
: 이제 연기가 뭔지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연기를 잘 하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연기라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표현해야 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전에는 대본 보고 대사만 완벽하게 외워서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냥 그 캐릭터가 돼야 하는 거다. 그래서 대사 한 마디를 외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신에서 어떤 포인트가 가장 중요한지를 알아야 하는 거다. 사실 <돌아온 일지매> 초반에는 다 잘 하려고 대사도 하나씩 다 힘 줘서 쳤는데, 어제 박근형 선생님께서 “그러면 힘이 안 산다. 가장 중요한 말에만 포인트를 주면 훨씬 안정돼 보일 거다”라고 조언을 해 주셨다. 또, 대사를 느리게 하면 젊음이 덜한 느낌이 들고 루즈해 보일 수 있으니까 그러지 말라는 얘기도 해 주셨고. 그렇게 이순재 선생님이나 박근형 선생님께 배우 대 배우로서 배우는 것들은 황감독님께 감독과 연기자 사이에서 배우는 것과 또 다른 부분이다.

작품 외적으로는 주연 배우로서 시청률에 대한 부담 같은 것도 있나.
정일우
: 사실 그런 게 없었다. 방송 전 7개월을 촬영하다 보니 그 점은 잊고 있었다. 막상 첫 방송 시청률이 생각보다 높게 나와서 놀라긴 했지만 일단 방송을 보니 내 연기에 고칠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게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첫 방송 후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시청률 잘 나온다고 어깨에 힘 들어가지 말고 안 나온다고 의기소침해지지 마라. 우리는 우리대로 간다. 우리가 즐겨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요즘 시청률이 높지 않더라도 촬영장 가면 그 생각은 바로 잊게 된다.

황인뢰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 한 얘기도 인기에 대한 거였다고 들었다.
정일우
: <하이킥> 끝나고 나서 인기라는 게 한 순간에 구름이 싹 사라지듯 없어지는 걸 보면서 좀 힘들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때 일 하는 대신 좀 시간을 가졌던 건 내가 선택한 거니까 ‘어차피 인기라는 게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인기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작품이 좋고 내가 잘 하면 또 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민호에게는 <꽃보다 남자>의 엄청난 인기를 즐기라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이킥> 당시의 인기는 정말 엄청났는데 그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
정일우
: 꿈같다. (웃음) <하이킥> 땐 너무 촬영이 바쁘고 스케줄이 많아서 잘 느끼지도 못했다. 내가 인기 있다고 느낀 건 밥 먹으러 갔는데 사람들이 알아볼 때, 그리고 ‘오죽했으면’ 뮤직 비디오 촬영으로 천안에 갔는데 사거리 도로를 사람들이 꽉 메웠을 때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정신이 없다 보니 그런 상황을 즐길 여유가 없었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건지 <하이킥>의 윤호를 좋아하는 건지에 대한 혼란도 좀 있었다. 물론 그런 걸 한 번 경험해본 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특별히 아쉽지는 않다.

친한 친구이자 KBS <꽃보다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이민호가 지금 겪고 있는 폭발적인 인기가 그 때와 비슷한 것 같다. 먼저 경험해 본 선배로서 어떤 얘기를 해 주나.
정일우
: 인기가 생기다 보면 전에 생각지 못했던 일들도 생기는데, 민호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냐?”하는 사소한 걸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그게 내가 <하이킥> 때 민호에게 물어봤던 것들이다. (웃음) 나는 그냥, 지금을 즐기라고 한다. 그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주목받고 있으니까 뭐든지 조금 조심하는 게 좋다고. 물론 민호는 이미 그렇게 잘 하고 있다. 지금은 친구로서 민호를 축하해 주고 싶고, 앞으로도 서로를 보면서 자극받아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굉장한 힘이 된다.

연기를 하고 유명해지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정일우
: <하이킥> 때는 그런 게 몇 가지 있다고 생각했다. 사적인 시간이 없고 자유롭게 다니지 못한다던가 하는 것. 하지만 이젠 좀 그런 점으로부터 마음을 비웠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거고, 그래서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자신이 갖는 약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정일우
: 예전에는 발음이라고 생각했다. <하이킥> 때 발음이 좋지 않아서 고치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지금도 좀 걸리는 부분이 있지만 그 때보다 나아졌는데 이제 욕심이 나는 건 다양한 얼굴 표정이다. 사실 일지매라는 인물은 표정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차갑게 본다’는 하나의 설정에서도 여러 가지 감정을 미묘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니까. 결국 연기라는 것도 진심으로 우러나서 하되 그걸 표현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표정이나 눈빛에서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고 싶다. 아무래도 ‘포스’를 갖추려면 좀 더 나이를 먹어야 할 것 같지만. (웃음)

“정말, 연기는 대충 해서 되는 일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연기에 도움이 되도록 타고나서 감사하다고 느끼는 점도 있나. (웃음)
정일우
: 음…없는 것 같다. 연기는 뭐 하나를 잘 하고 못 하고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어떤 캐릭터를 맡았을 때 잘 소화하고 표현해내는 게 기준이니까. 정말, 연기는 대충 해서 되는 일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나.
정일우
: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렇게 가슴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 그 당시에는 정말 앞이 캄캄하고 제일 힘든 일 같지만 막상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많다. 그냥, 작품 할 때는 작품 해서 힘들고, 작품 안 할 땐 작품 안 해서 힘들고. 그런 것 같다. (웃음)

그러면 일을 하면서 뭔가가 두렵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나.
정일우
: 있다. <하이킥> 때도 느꼈고 지금도 그렇지만, 작품 하는 동안에도 슬럼프 아닌 슬럼프에 빠지거나 굉장히 외로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건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 분명히 어느 순간 전환점이 생긴다. 생기지 않으면 찾아낸다. 요 며칠 기분이 좀 우울했는데 어제 박근형 선생님과 연기를 하고 난 뒤에 다시 기분이 확 좋아졌다. 그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한다.

2년 전, <하이킥>의 윤호였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나 미래에 대해 좀 더 뚜렷하게 보이는 게 있나?
정일우
: 뚜렷한지는 모르겠지만 일에 대한 태도 같은 게 조금 여유로워진 것 같다. 예전에는 작품을 고를 때도 조급하게 생각하다가 막상 눈앞에 닥친 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 일에 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할 생각이다. 또,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는 내 마음이 최우선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100%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 결과도 잘 나오지 않으니까. <돌아온 일지매> 역시 내가 너무 원했던 작품이기 때문에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세월이 흐른 뒤 <돌아온 일지매>가 자신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가.
정일우
: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 작품. 배우로서든 인간으로서든.

스타일리스트 강윤주(블링블링)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글|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글|사진|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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