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백만 가지 종류의 소녀들이 있다. 늘씬한 몸과 요염한 표정으로 아슬아슬한 경계를 즐기는 소녀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소녀들은 터질듯 싱싱한 젊음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Rock your body I say’에 맞춰 폴짝 뛰어 오르거나,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를 외치며 같은 동작으로 행진을 하는 카라는 긴장감 대신 천진난만함을 선택한 소녀들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앳된 얼굴과 아기자기한 의상,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특유의 분위기는 슬픈 가사의 ‘허니’에 흥겨움을 불어넣을 정도다.

“‘Rock you’ 이후 온전히 쉰 날이 일주일이 안 되요”

한 세트의 인형들처럼 마냥 앳되고 귀여워 보이지만, 무대를 내려오면서 다섯 명은 각자의 얼굴로 돌아간다. 여전히 깜찍한 소녀의 모습인 채로 오물오물 질문이 끊이질 않는 막내 지영은 조금 더 발랄한 모습이 되는 반면, 새침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털털하고 솔직한 하라는 다른 멤버들의 인터뷰를 잠자코 지켜보다가 슬쩍 한마디 거드는 과묵한 아가씨로 변신한다. 무대에서나 KBS <스타 골든 벨>에서 엉뚱한 모습을 종종 보여주던 니콜의 종알종알 빠른 말투는 여전 하지만, 멤버들의 장점을 찾아서 일일이 칭찬을 하는 속 깊은 태도에서는 또래보다 성숙한 어른스러움이 묻어난다. 뿐만 아니라 벌써 스물두 살이 된 리더 규리는 사실, “학교에서는 후배를 두 번이나 받은 선배”라는 본인의 설명에 걸 맞는 카리스마를 가졌고, 초등학생이 별명이 될 정도로 어려보이는 외모의 승연은 심지어 “가벼운 느낌을 싫어해서 문자를 보낼 때조차도 맞춤법에 신경을 쓰고, 이모티콘은 되도록 자제”한다고 할 정도로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다.

각자 나이도, 개성도 다르지만 이들의 조화에는 신기하리만치 거슬리는 모서리가 없다. 활동 중간에 신입 멤버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이 세계에 들어오면 어려운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는데, 쉽게 질리거나 지치지는 않을까. 혹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닐까”하고 애늙은이 같은 걱정을 했다는 승연과 “연예인이 되면 밥도 못 먹고 되게 힘들 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먹는 것도 잘 챙겨주고 아직은 재미있는 일이 더 많아요”라며 신나게 자랑을 하는 막둥이 지영은 그 생각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마치 친자매처럼 편안하게 어울린다. 그것은 이들이 각자 다른 출발점에도 불구하고 같은 목표를 꿈꾸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수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영상 오디션에 응시 했던 니콜이나 광주에서 상경해서 여러 오디션을 봤던 하라는 물론, 앨범의 부진과 멤버 교체, 기약 없는 공백기를 겪으며 절치부심해 온 규리와 승연은 개인시간 조차 없는 나날의 연속이지만 “달릴 수 있을 때 달리는”재미를 만끽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그동안 혼자서 온라인 게임 프로그램부터 케이블 리얼리티 쇼까지 각양각색의 방송을 거치며 무대 복귀를 손꼽아 기다려 왔던 승연의 감회는 남다르다. “많지도 않은 스케줄인데, 어중간한 시간에 맞추느라 학교 출석도 제대로 못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때의 마음고생 덕분에 지금 힘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 ‘Rock you’이후로 온전히 쉰 날을 합쳐도 일주일이 안 되거든요.”

진심을 다한 순간, 소녀들은 깨어난다

그리고 지난 주, 무대에서 다시 소녀로 돌아간 카라는 ‘허니’로 음악 프로그램 1위를 드디어 달성 했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울었지만, 두 번째는 카메라가 꺼질 때 까지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못나게 우는 얼굴 캡쳐 사진이 인터넷에 마구 돌아다니더라구요”라고 말하는 승연은 고개를 절래절래 젓지만, 내심 기분 좋은 표정이다. ‘진짜’라고 생각했던 진지한 얼굴 아래로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소녀의 진심이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무대 위에서만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언제든 온 마음을 다 해 행복한 순간, 카라는 소녀가 된다. 불안과 걱정 없이 마냥 사랑스러운 바로 그 소녀 말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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