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의 얼굴을 안다. 그러나 거기까지. “제가 연기 했던 인물은 기억을 해도, 그게 다 저라고는 생각을 잘 못하시는 것 같아요. 캐릭터 변화가 너무 커서 그런가.”라는 그의 말처럼 사실 배우 심형탁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MBC <그래도 좋아>를 떠올리면, 그는 분노의 화신 윤석빈이고, MBC <크크섬의 비밀>에서 그는 직장인 멜로의 정수를 보여 준 심형탁이었다. 그런가 하면 KBS 드라마 시티 <쉿! 거기, 천사>에서 그는 강퍅한 얼굴로 절절한 연민을 길어 올린 오류였으며, 심지어 2002년 방송된 MBC 베스트 극장 <연인들의 점심식사>에서는 동성 연인을 잊지 못하는 정후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심형탁은 KBS 일일드라마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장남과 가장으로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생활형 의사 유민수를 연기 하고 있다.

설명서와 연습으로 설명되는 남자

도무지 교집합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것 같은 배역들을 종횡무진 하는 동안 그는 서른을 넘겼다. 공익근무 요원으로 군 생활도 마쳤다. 3년간의 공백은 두려웠지만, 복귀 1년 전 부터는 운동과 연기 연습을 하며 배우로서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단단히 준비를 했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촬영을 이틀 남기고서 <집으로 가는 길>의 대본 15권을 받아들었을 때도 심형탁은 망설임 없이 소속사의 연습실로 향했다. 그리고 매 끼니를 자장면으로 때우며 촬영 직전까지 대본을 독파했다. “다른 분들은 두 달 전부터 준비하고 계셨을 텐데, 제가 시간을 따라잡을 방도가 달리 없었어요. 앞으로도 일일극의 호흡을 따라 가려면 계속 연습실에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제 방에는 보물 1호인 대형 TV부터 홈시어터, 각종 게임기가 다 구비돼 있거든요. 컴퓨터도 두 대나 있고, 재미있는 게 너무 많아서 연습을 하려면 집 밖으로 나와야 해요.”

연기만이 아니다. 스스로를 “피곤한 성격”이라고 칭할 만큼 심형탁은 모든 일을 차근차근 처음부터 쌓아올려 가는 타입이다. 늘 컴퓨터를 고쳐 주던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핀잔에 자극을 받아 시작한 컴퓨터 공부는 웬만한 조립과 수리를 직접 할 정도로 통달했고, 학창 시절 친구가 ‘메탈리카’도 모른다고 놀렸을 때는 잡지며 음반을 전부 사 들여 음악 정보를 통째 외워 버릴 정도였다. “휴대폰을 사면 사용설명서를 첫 장부터 꼼꼼하게 읽거든요. ‘스타크래프트’를 시작 할 때도 관련 책을 구입해서 1장 펼치고 종족들에 대한 공부부터 시작했을 정도니까요.”이미 모델 일을 하고 있었던 스물두 살 나이에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수원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것도, 언론과 방송에 대해 알고 싶다는 욕망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국대 신문방송학 대학원에 지원한 것도 모두 그런 엄격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신형탁, 심현탁, 김형탁… 심형탁입니다!”

그래서일까, 지독한 연습벌레인 심형탁의 연기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그가 생활에 밀착한 현실적인 인물이 될 때다. 극적인 설정의 도움이 없을 때, 연습으로 여백을 가득 채워 넣은 심형탁의 캐릭터는 더욱 뚜렷해진다. 그에 더해 “데뷔 후로 계속 제가 집안의 가장입니다. 여동생 시집보내고, 군 전역하고 나니까 통장 잔고가 0이더라구요. 앞으로 쉼 없이 일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는 진솔한 고백까지 듣고 나면, 일상에 단단하게 발 붙이고서서 책임감으로 연기를 하는 이 남자의 얼굴은 한결 선명해진다. 그러나 아직 선명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그의 이름. “나름대로 전역 후에 활발하게 활동을 했다고 생각 하는데, 기자님들이 제 이름을 자꾸 틀리셔서 슬퍼요. 요전번에 KBS <연예가 중계>에는 신형탁으로 나왔어요. 다른 기사에도 심현탁, 김형탁… 다양하게도 틀리시더라구요.” 심형탁, 세 글자를 정확히 기억했다면, 이제 당신은 그 남자의 1장을 펼친 셈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 되었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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