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포커 실력자 도일출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에서 포커 실력자 도일출 역으로 열연한 배우 박정민.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인생에 가장 크게 베팅했던 일이라…. 대범하게 도전해보자는 의미로 생각한다면 ‘타짜: 원 아이드 잭’(이하 ‘타짜3’)을 하겠다고 결정한 일이에요.”

잘해야 본전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박정민은 영화 ‘타짜3’를 선택했다. 대본을 받고 2주간 고민했단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고민이 아니라 부추김을 당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박정민은 독립운동가(‘동주’), 서번트증후군을 앓는 피아노 천재(‘그것만이 내 세상’), 찌질한 청춘 래퍼(‘변산’)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는 칠판보다 포커판이 체질에 맞는 공시생 도일출 역을 맡았다. 이전과 달리 아주 강렬하고 센 캐릭터다. 그래도 연기가 아닌 것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높은 몰입도를 이끌어내는 재주는 여전하다. 그의 연기에서는 불편함, 거슬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영화를 위해 7개월 간 포커 연습에 매진해 익힌 손기술도 캐릭터의 리얼함을 높인다 .매번 다른 캐릭터로 작품에 녹아드는 박정민은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배우다.

10. ‘타짜’ 시리즈를 보면서 자란 세대다. 인기 시리즈인 만큼 부담감이 컸을 것 같은데.
박정민: ‘타짜’ 시리즈는 정말 많이 봤다. TV에서 해줄 때마다 채널을 멈추고 보게 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시작할 때 많이 부담됐다. 이전 시리즈에서 취할 수 있는 건 취하되 억지로 차별점을 두려고 하진 않았다. 스토리도 다르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다르니 나는 내 몫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타짜’ 시리즈를 보면서 꿈을 키워왔다. 다들 ‘타짜’라는 브랜드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정성들여 찍자고 했다.

10. 영화 내내 욕을 하더라. 혹시 평소에도….?
박정민: 잘 한다.(웃음) 농담이다. 영화를 보고 나는 오히려 욕한 걸 많이 뺐다고 생각했다.

10.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변산’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박정민: 케이퍼물에 가까운 영화다. 평소 그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케이퍼물이 좀 과격하지 않나. 어릴 때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열광했고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영화 안에서 내가 뭔가 하고 있다는 자체가 좋았고 재밌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에 비해 도일출은 장르적 특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도일출은 역대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중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일상적 인물을 주로 연기한 나를) 감독님이 캐스팅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타짜: 원 아이드 잭’ 스틸.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자신감 넘치던 일출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달라지는 캐릭터의 모습을 연기할 때 신경 썼던 점이 있다면?
박정민: 이전보다 버석버석한 느낌이 나길 바랐다. 일출은 풍파를 겪고 죄책감까지 안게 된다. 감정이 격해지기보다 오히려 건조해지고 메말라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일출이 그럴 것 같지도 않았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도 시도해봤지만 어울리지 않았다. 메말라 있는 인간의 복수가 더 무서울 것 같다고 생각해서 감정 표현을 최대한 자제했다.

10. 일출이 점점 핼쑥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촬영하면서 살이 빠진 건가?
박정민: 모든 걸 잃고 다방 하우스에서 추루하게 도박하는 장면이 있다. (영화 촬영하면서) 그 장면에서 실제로도 가장 말랐을 거다. 그 이후 장면에서도 초췌하게 나왔으면 해서 혹독하게 살을 뺐다. 영화 시작할 때 78kg이었던 몸무게가 다 끝나니 58kg이 됐다.

10. 도일출이 마돈나(최유화 분)에게 느끼는 감정은 뭘까? 당하면서도 도와주지 않나?
박정민: 좋아한다는 감정보다 일출이 갖고 있는 열등감과 관련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일출은 마돈나가 (자신과 닮은 것 같아) 불쌍하고 거슬리고 신경 쓰이는 거다. 반면 마돈나는 일출의 그런 심리를 이용한 것 같다. 일출이 마돈나에 대한 복수심을 가졌을 때 내가 연기하며 느꼈던 분노보다 영화에는 덜 표현된 것 같다. 이가 갈릴 정도여서 한 번쯤은 시원하게 욕을 해주고 싶었다.(웃음) 하지만 일출이 그런 심성을 가진 인물은 아닌 것 같아 시나리오대로 연기했다.

10. 마돈나와의 베드신도 나온다. 이전에 베드신을 찍은 적이 있나?

박정민: 퀴어영화에서다. 그래서 처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상대 배우를 배려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도 처음이라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촬영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며칠간 고민했다. 촬영 전날 (최유화) 누나와 통화했다. 예민하지 않게 스태프들도 배려하면서 잘 해보자는 대화를 나눴다. 누나가 현장에서 훌륭하게 해내줘서 고마웠다. 베드신이 참 어렵더라. 다신 못할 거 같다.(웃음)

박정민은 “욕먹는 걸 두려워하면 그 어떤 영화도 못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은 “욕먹는 걸 두려워하면 그 어떤 영화도 못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류승범 캐스팅 과정에서 류승범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시사회 때 류승범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감동적인 편지였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이었나?
박정민: 출연해달라는 내용은 아니었다. 팬레터에 가까웠다.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보면서 꿈을 키웠다는 내용이었다.

10. 박정민과 류승범의 팀플레이를 기대한 관객들에겐 애꾸의 역할에 좀 아쉬운 면이 있는데.
박정민: 승범 형님의 표현대로 애꾸는 스모키(smoky)하고 수증기 같은 캐릭터다. 마치 없는 듯한 사람이지만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사건의 모든 걸 다 알고 있기도 하다. 애꾸라는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면 판을 설계한 사람으로서 신비감과 무게감이 떨어질 거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세세하게 드러나면 멋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10. 주연으로서 입지로 굳혀가고 있는 것 같다. 배우라는 일을 선택한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후회되는 순간은 없나?
박정민: 고민은 매일 있다. 내가 생각했던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고민이 없어지겠지 싶었는데 오히려 커지는 경우도 있다. 내가 꿈꿨던 이런 날을 기다렸던 예전이 더 행복했던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매일 꿈을 키워갔던 그 때의 내가 더 긍정적이고 밝지 않았나….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생각이 바뀐다.

10. 하고 싶은 일을 취미로 즐기는 것과 업으로 삼는 것은 다르지 않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면서 하게 된 고민은 없나?
박정민: 내가 하고 싶어 선택했지만 내가 잘 하고 있느냐고 자문했을 때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열등감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내가 자신을 좀먹으면서 사는 사람이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쉬운 직업이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아야하는 직업이고, 잣대를 들이미는 직업이다.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도 잘 해나가고 나 자신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민은 “나에게 가장 혹독한 사람이 나다. 그래서 웬만한 비판은 다 수용할 수 있다”며 웃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박정민은 “나에게 가장 혹독한 사람이 나다. 그래서 웬만한 비판은 다 수용할 수 있다”며 웃었다. /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10. 홍대 근처에 책방을 냈던데 그곳에 자주 가나?
박정민: 거의 매일 있다. (책방을 여는 것도) 꿈이었다. 작업실 겸용으로 조용히 쓰려고 했는데 이제 소문이 나면 작업실로는 못 쓰게 되는 거 아닌가 싶다. 큰일이다.(웃음)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누구나 와서 책을 읽다갈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계속 거길 가는 걸 보면 거길 좋아하는 게 맞나보다. 혼자하기엔 벅차서 초등학교 동창인 절친한 친구와 같이 한다.

10. 2016년 냈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개정해 출간했다. 책에 대해 얘기하면 쑥스러워하면서도 책을 또 낸 이유는 뭔가?
박정민: 출판사의 의견이다.(웃음) 사실 내가 요즘 글을 무서워한다. 특히 남한테 보여주는 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또 나도 상처를 받을 수 있어 두렵다. 개정판 때문에 책 내용을 수정하다보니 (예전에 쓴 글들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이 많더라. 어렸을 때 주제도 모르고 가볍게 휘갈겨 쓴 것들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만한 부분들을 삭제하고 수정했다. 사과드린다는 글도 첨부했다. 이제는 책을 더 안 내려고 한다.(웃음)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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