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돈’에서 불법 작전을 추적하는 한지철 역으로 열연한 배우 조우진.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돈’에서 불법 작전을 추적하는 한지철 역으로 열연한 배우 조우진. /사진제공=쇼박스
“제목이 주는 호기심부터 엄청났어요.”

배우 조우진은 영화 ‘돈’(20일 개봉)에서 불법 작전을 뒤쫓는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역 한지철을 연기했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우진은 ‘돈’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입었다. “이 후드티가 편하더라고요. 하하.” 정겨운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만큼은 맹렬히 파고드는 칼날과 같다. 극 중 한지철은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 분)와 불법 작전을 실행하는 브로커 조일현(류준열 분)을 서서히 조여간다. 주변을 맴돌며 은근슬쩍 미끼를 던지기도 하고 강하게 압박하기도 한다. 이들 셋 가운데 한지철이 가장 정당한 돈과 올바른 정의를 추구한다. 조우진은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인물마다 돈을 바라보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포차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위로 실적이 표현되잖아요. 적나라해요. 그 숫자에 따라 사람들의 자세와 태도가 다르죠. 돈에 대한 태도와 시각이 다른 인물들이 얽히고설킵니다. 거기서 마치 화학작용처럼 발생하는 일들이 장르적 쾌감을 만들어내요. 재미뿐만 아니죠. 돈을 위에 놓고 바라봐야 하는지 밑에 놓고 내려다봐야 하는지, 돈을 좇는지 돈에 쫓기는지…큰 스크린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유익한 시간도 될 것 같아요.”

영화 ‘돈’의 한 장면.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돈’의 한 장면. /사진제공=쇼박스
조우진은 “속에 있는 생각을 잘 표현하는 편은 아니다”라면서 “오랜만에 자기 감정과 생각을 여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한지철이라는 인물을 만났다”며 마음에 들어 했다. 내향적인 자신과 달리 거침없이 직진하는 캐릭터에 대해서도 매력을 느꼈다는 얘기다.

“번호표는 (감정을) 계속 누르잖아요. 한지철은 돈을 객관적이고 정의롭게 바라보려고 하는 반면, 조일현은 돈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죠. 각각의 캐릭터가 생동할 때 축의 균형이 이뤄져요. 한지철은 이 축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담당한다고 생각했고요. 내가 이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도전의식도 생겼죠. 스스로 채찍질하며 달려온 작품이었어요.”

조우진은 특히 영화 ‘보안관’을 함께했던 이번 영화의 제작진에 대한 깊은 신뢰감을 드러냈다. 조우진은 “‘돈’을 준비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빨리 시나리오를 보고 싶다고 졸랐다”면서 “기대했던 대로 이야기가 묵직한 힘이 있었다”고 감탄했다.

“저는 현장에서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가길 어려워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보안관’ 촬영하면서 많이 유연해졌습니다. 당시 스태프들이 ‘여기 와서 좀 같이 어울려’라면서 제가 편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셨거든요.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는 게 일하는 데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집중해야 할 땐 힘이 들어가면서 여유도 생기더군요. 제 변곡점이 됐던 ‘보안관’의 인연이 ‘돈’까지 이어진 것이죠.”

조우진은 ‘돈’에서 조일현을 연기한 배우 류준열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우진은 “류준열은 지금껏 함께 연기한 배우 중에 각 장면에 대해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다”며 “그만이 갖고 있는, 작품과 인물을 사랑하는 태도에 반했다”고 말했다.

“준열은 열린 마음을 갖고 현장에 나와요.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준열이 그랬어요. 준열이 현장에 와서 인사를 하면 다들 웃어요. 제가 인사를 했을 때보다 다들 이를 더 많이 보이더라고요. 하하. 존재 자체가 비타민이고 사이다인 친구죠. 이런 무결점 청년이 있나 싶어요. 센스도 넘칩니다.”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자 운명”이라는 조우진. /사진제공=쇼박스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자 운명”이라는 조우진. /사진제공=쇼박스
조우진은 11년간 사랑을 키워온 연인과 지난해 결혼식을 올리며, 딸도 있다는 좋은 소식을 알렸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게 돼 돈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을까.

“버는 것도 힘들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어렵더라고요. 유용함의 가치만큼 나눔의 가치도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나눔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어요. 나눔의 가치가 폄하되는 걸 경계하기에 표현하기 조심스럽지만 전에 없던 행복감을 느꼈어요.”

영화 ‘내부자들’에서 “여! 썰고”라면서 아무렇지 않게 안상구(이병헌 분)의 팔을 자르라고 지시하는 잔인한 조상무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조우진. 이후 영화 ‘남한산성’ ‘강철비’ ‘1987’ ‘국가부도의 날’ ‘마약왕’, 드라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으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지난해만 11개의 작품을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조차 놀랐다고 했다.

“앞으로는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치열했고 쉴 틈도 없었습니다. 운 좋게 좋은 작품,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양한 옷을 입을 수 있었어요. 감사하면서도 지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작품 하나 없어서, 캐릭터 하나 없어서, 대사 하나 없어서 속상해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의 저를 넌지시 바라보면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더라고요.”

조우진은 “(최근 몇 년간) 모든 게 파도처럼 밀려왔다”면서 아주 잠깐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듯했다. “인물과 작품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대사는 적어도 100번은 연습했습니다.” 이번 영화 ‘돈’의 한지철을 이렇게 연기했다는 조우진이 어떻게 신스틸러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게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