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KBS2 ‘같이 살래요’에서 최문식을 연기한 배우 김권.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KBS2 ‘같이 살래요’에서 최문식을 연기한 배우 김권.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최만식이 아니라서 다행이었어요. 하하하.” 배우 김권의 웃음소리는 예상 외로 작았다. KBS2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에서 연기한 최문식과는 달랐다. 최문식은 ‘같이 살래요’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인물이다. 수양어머니 이미연(장미희)의 재력을 등에 업고 갑질을 하다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에겐 아픔도 있다. 친모에게 버림 받고 친부에겐 이용 당했다. 김권은 문식이 느꼈을 외로움에 공감했다. ‘문식이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는 그를 만났다.

“문식이에게 아픔이 있다는 게 시놉시스에 작게 언급돼 있었어요. 초반 모습은 얄밉게만 보일 수 있지만 입체적인 인물이거든요. 문식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문식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다. 밖에서 낳아온 자식. 그의 탄생은 축복받지 못했다. 친모는 그를 모텔에 버렸고 친부 최동진(김유석)은 그를 이용해 이혼한 아내인 이미연의 재산을 빼돌리려고 했다. “최악의 가정환경이지 않을까요.” 김권은 그런 문식을 안타까워했다. 이미연이나 박효섭(유동근)에게 안길 땐 감정이 북받치기도 했단다.

“효섭이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부터 문식이의 마음이 움직인 것 같아요. 처음엔 어머니한테 주식을 받는 조건으로 (효섭의 집에) 간 거였잖아요. 엄마에겐 잔인한 일이었죠. 효섭의 가족과 친해진 엄마를 보면서 문식이도 고통스러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찍을 땐 재밌었어요. 배우들끼리 무척 친해진 상태였거든요.”

김권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김권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데 그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김권은 문식의 독기와 집념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워커홀릭이라는 뜻은 아니란다. 김권은 일만큼 사랑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사랑도 근성 있게 한다고 했다. “진한 사랑을해보고 싶어요. 음악가들도 이별한 뒤에 좋은 가사가 나온다고 하잖아요.” 김권은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솔로에요.”

2010년 모델로 데뷔한 그는 이듬해 드라마 ‘나도 꽃’ 출연을 시작으로 배우의 길을 걸어왔다. 드라마 ‘가시꽃’ ‘달콤살콤 패밀리’ ‘끝에서 두 번째 사랑’ ‘공항가는 길’ ‘마녀의 법정’ 등 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안판석 감독과는 두 번이나 호흡을 맞췄다. ‘밀회’와 ‘풍문으로 들었소’를 통해서다. 김권은 “배우로 살아가면서 되새길 수 있는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며 “감독님의 말씀은 머리에 꽂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현장에서 배우들을 자유롭게 풀어놓던 안 감독과 달리 ‘같이 살래요’의 윤창범 감독은 주어진 연출과 지시를 중요하게 여겼다. 김권은 ‘같이 살래요’ 오디션을 위해 윤 감독을 만난 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놨다고 한다. 자신의 열정이나 노력을 어필하는 대신 인간 김건우(김권의 본명)을 보여주려고 했다. “무조건 시켜만 달라는 건 떼를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색깔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윤 감독은 그런 김권의 당돌함을 눈여겨봐 그를 캐스팅했다.

“저는 낯도 많이 가리고 세심한 편이에요. 일할 땐 특히 예민해지고요. 대신 근성은 있어요.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몸을 던지는 타입이에요. 저 스스로에게 객관적이고 심지어 자신을 비하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자만하게 될 수는 없는 성격인 것 같아요.(웃음)”

‘갈 데까지 가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김권.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갈 데까지 가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김권. / 사진제공=원앤원스타즈
김권은 자신에게 63점을 줬다. ‘50점 이상을 준 것은 스스로를 칭찬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냐’고 묻자 미소와 함께 “어렸을 때 63점짜리 시험지를 가져가면 혼나지 않던가요?”라는 반문이 돌아왔다. 김권은 자신이 더 넓은 마음을 가지길, 더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길, 내면의 깊이를 키우길 바라고 있다.

“자의식은 어느 정도 있는 편이에요. 그게 절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기도 해요. 스스로에게 혹독하다는 건 제가 더 성장하길 바라기 때문인 거겠죠. 어떻게 보면 제가 참 강한 사람 같기도 한데, 반대로 아주 약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래서 제겐 혼자 있는 시간이 아주 중요합니다. 명상을 하면서 저를 돌아보고 제 용기를 생각하고 앞으로에 대한 계획도 세우거든요.”

올해 서른 살. 하지만 그에겐 여전히 소년 같은 모습이 남아 있다. “연기를 거지 같이 하고 온 날엔 혼자 소파를 치곤 한다”고 말할 때가 그랬다. “연기가 안 될 때가 제일 괴롭고 연기가 진심으로 나왔을 때는 제일 행복해요.” 연차는 쌓였지만 그의 순수함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김권은 요즘 서핑에 빠졌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캠핑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지난 8개월 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자신에 대한 상이다. 김권은 “초심을 잃지 않고 버텼다는 점을 칭찬해주고 싶다”며 “힘이 빠지는 순간도 많았다. 그 때마다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주말극에 출연하는 걸 부모님께서 무척 좋아하셔서, 부모님을 생각하며 버틴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갈 데까지 가보자. 늘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요. 물론 좋지 않은 결말이 분명할 땐 포기할 줄도 알아요. 그런 경험은 제겐 상처로 남곤 하죠. 하지만 그 상처가 훗날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줄 거라고 믿어요. 대신 내가 가보자고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가볼 거예요. 자존심이나 창피함도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에요.”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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