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 역을 연기한 배우 조인성./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 역을 연기한 배우 조인성./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야전에서 주근깨는 필수입니다.” 배우 조인성이 ‘꽃미남’ 이미지를 벗고 돌아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 스타일과 깨끗한 피부는 온데간데없다. 틀어 올린 머리, 새까맣고 푸석푸석한 얼굴에, 주근깨도 보인다. 덥수룩한 수염까지 붙였다. 약 1400여 년 전 고구려와 당나라 간에 벌어진 ‘안시성 전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안시성’을 통해 성주 양만춘으로 변신한 조인성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양만춘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안시성을 침략한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에 맞선 88일 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남다른 리더십과 지략을 발휘해 결국 성을 지켜냈다. 꽃미남 배우 조인성이 양만춘 역에 캐스팅 된 데 대해 외모와 목소리의 톤 등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과 우려가 없지 않았다.

“처음엔 저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고심 끝에 ‘성주’와 ‘장군’이라는 타이틀을 뺐죠. ‘리더’라는 것에 무게를 두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조인성은 영화에서 근엄하고 굵은 목소리의 장군 대신 가족, 부하, 백성을 챙기는 소통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그는 “전형적인 ‘장군’의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실제 양만춘에 관한 기록은 단 세 줄뿐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었다. 싸움도 잘하고, 주변 사람들도 챙기는 그런 동네 형님 같은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을 연기한 배우 조인성은 “전형적인 장군의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영화 ‘안시성’에서 양만춘을 연기한 배우 조인성은 “전형적인 장군의 캐릭터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안시성’에는 2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손익 분기점은 460만. 주연 배우로서 부담스럽지 않을까.

“압박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날 순 없죠. 안시성을 필사적으로 지켰던 양만춘 장군과 같은 마음일 겁니다. 부족한 점은 많지만 제가 가진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고, 후회 없이 찍었습니다.”

영화에는 보조 출연자 6500명, 말 650필과 직접 제작한 고구려군 갑옷 248벌, 당나라군 갑옷 168벌이 사용됐다. 총 23만1000㎡의 터에 실제 높이 대로 만든 11m의 수직 성벽세트와 길이 180m의 안시성 세트를 제작한 것은 물론 1만6500㎡ 규모의 토산도 CG가 아니라 직접 만들어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조인성은 “제작비를 많이 들인 만큼 볼거리가 풍성하다”며 전투 장면을 관전 포인트로 꼽았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펼쳐지는 주필산 전투와 두 차례의 공성전, 하이라이트 격인 토산 전투까지 네 차례번의 전투 장면은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웅장하고 역동적이다. 전투에 사용된 공성탑, 투석기, 운제(雲梯·사다리) 등 대규모 무기와 시설들도 직접 제작했다. 스카이워커, 로봇암, 드론 등의 신식 장비로 촬영해 생동감을 더했다. 조인성은 “진짜 전투에 참여한 느낌으로 찍었다. 관객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촬영은 지난해 봄부터 겨울까지 강원도 고성에서 이뤄졌다. 날씨와의 싸움이 제일 힘들었단다. 조인성은 “요즘 우리나라가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다. 뉴스에서 남극보다 춥고 아프리카보다 덥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름에도 엄청나게 두꺼운 옷에 갑옷까지 입었다. 겨울에는 눈을 못 뜰 정도로 칼바람이 불었다. 현장에 놀러 왔던 배우 도경수가 진짜 전쟁터 같다고 하더라. 촬영장에 실내세트가 하나도 없어서 더 그랬다. 막사에서 더위와 추위를 이겼다”고 말했다.

힘든 촬영도 동료 배우들 덕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그는 공을 돌렸다. 원래부터 친분이 있던 배성우, 박병은과는 촬영 후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잘 한 부분, 잘 못한 부분에 대해 진솔하게 의견을 나눴다. 영화에선 특히 배성우와 붙는 장면이 많았다. 조인성은 하나의 테이크가 끝날 때마다 “괜찮았어?”라고 물어 배성우를 귀찮게 했단다. 배성우는 최근 영화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나 챙기기도 바쁜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제가 오지랖이 넓은 편이에요. 사실 동료가 제일 빨리 알거든요. 감독님의 모니터는 멀리 있잖아요.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 물었어요. 못하는 것도 보여줄 줄 알아야지 잘 하는 것만 보여주려 하면 새로운 옷을 못 입습니다. 전형적인 옷만 입게 돼죠.”

‘안시성’을 통해 영화에 데뷔한 남주혁에 대해서는 “누군가는 걱정했겠지만 난 걱정 안했다. 드라마 주인공을 했던 배우다. (이제 말을 배우는 아이처럼)가나다라마바사를 했던 친구가 220억 원을 들인 대작 영화에 들어와서 서브 주인공 한 게 아니지 않나”라며 믿음을 보냈다. 남주혁은 극 중 안시성 출신 태학도 수장 ‘사물’ 역을 맡았다. 사물은 연개소문의 비밀 지령을 받고 안시성에 잠입했다가 점점 마음을 여는 인물이다. 조인성은 “수염을 붙이지 않아 분장이 빨리 끝나는 주혁이가 제일 부러웠다”며 웃었다.

220억 대작 ‘안시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조인성은 “(흥행에 대한)압박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날 순 없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220억 대작 ‘안시성’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조인성은 “(흥행에 대한)압박감과 부담감에서 벗어날 순 없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1998년 모델로 데뷔해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 활약해온 조인성은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이했다. ‘안시성’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는 “특별한 의미를 두고 싶진 않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또 겨울이 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온 시간이다. ‘안시성’은 그저 연기 20년이 담긴 작품일 뿐”이라며 “‘사극이 어울릴까?’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렇다고 백마 탄 왕자만 할 순 없지 않나. ‘비열한 거리’ 때에도 그 얼굴에 조폭이 맞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하나하나 돌파하고 있다. 20년도 과정일 뿐”이라고 담담히 설명했다.

1981년생인 그는 40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그는 나이듦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마음가짐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촬영 과정의 고생이 심했던 만큼 영화의 성공을 위해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제 인생에서 요즘처럼 열심히 일 한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말에서 220억의 대작을 책임진 주연배우의 무게가 느껴진다.

“큰 영화는 너무 힘들고 위험한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고구려 역사를 담은 영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소재는 많을 텐데 자료가 많이 없으니 덤벼들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안시성’이 고구려 역사의 모든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영화를 기점으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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