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디즈니 감성을 지닌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디즈니 감성을 지닌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래퍼 오르내림은 혜성처럼, 그러나 조용히 등장했다. 오토튠을 활용한 독창적인 톤에 귀엽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그를 뮤지션들이 먼저 알아봤다. 이름이 알려진 래퍼나 레이블의 대표에게는 하루에도 수많은 래퍼 꿈나무들의 데모테이프가 쏟아진다. 오르내림은 단번에 이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데모테이프를 듣고 석찬우 스톤쉽 대표와 크루 우주비행을 이끄는 기리보이는 바로 오르내림과 만나 음악 작업을 함께하기로 했다.

오르내림이 돋보였던 건 그가 양 극단을 품었기 때문이다. 힙합과 디즈니, 힙합과 어린왕자 감성은 좀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오르내림은 순수함을 힙합으로 풀어낼 줄 안다. 누구나 갖고 있는 ‘찌질한’ 내면도 스스럼없이 내보인다. ”어떻게 움직여 클럽에선 / 챔스보다 재밌는 걸 알려준다 해서 나왔지 이 새벽에 / but 네이버 스포츠 5분마다 새로 고침해”라고 하거나 ”무서움을 참고 치과에 가봤어 / 이빨 요정 네이버에 검색했어 / 사탕을 먹을 나이가 지나가서 아파“라는 식이다. ‘어른아이’ 같은 매력을 가진 그가 앞으로 펼쳐보일 무궁무진한 세계가 기대되는 이유다.

10. 언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오르내림: 학교 다닐 때 ‘공부가 당연히 재미는 없는데, 왜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자고 결심했고, 중학생 때부터 5000원짜리 마이크를 사서 옷장에 놓고 심심할 때마다 연습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패딩을 팔아서 장비를 샀어요. 따뜻함을 장비와 바꾼 거죠.(웃음)

10. 그렇게 장비를 바꿔가면서 믹스테이프, 데모테이프를 내게 된 건가요?
오르내림: 그런 셈이죠. 첫 믹스테이프 ‘yesyesyesyes’와 첫 EP ‘APOLLO’를 낼 때는 커버도 저랑 친누나가 종이와 은박 껌종이를 찢어서 만들었어요. 그래서 확대하면 ‘오리온’이라고 보여요.(웃음) 앨범을 좀 더 잘 완성하고 싶어서 데모테이프를 이곳저곳에 보내기 시작했어요. 기리보이 형한테는 무작정 내 음악과 함께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장으로 ‘느낌 개좋네요ㅋㅋ’ 이렇게 왔어요.(웃음) 기리보이 형을 통해서 여러 사람을 알게 됐어요.

10. 예를 든다면요?
오르내림: 자메즈 형도 그 중 하나에요. 자메즈 형은 젊고 멋있게 사는 형이라 동기 부여가 되는 얘기를 많이 해줬어요. ‘음악을 직업으로 할 생각이라면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도 잘 생각해야 한다, 더 멋있어져야 한다’ 등의 얘기였죠. ‘전체이용가’를 만들 때도 이 부분을 많이 신경 썼어요.

10. 활동명을 오르내림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르내림: 한글로 세련된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화장품 브랜드 중 ‘아리따움’이 좋은 예라고 생각했어요. ‘아리따움’은 영어로 써도 예쁘거든요. 주황색을 좋아해 오렌지(Orange)의 ‘O’를 따서 ‘오’로 시작되는 이름을 찾기 시작했어요. 크루 주스오버알콜(juiceoveralcohol)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용가리, 오르가즘을 얘기하더라고요.(웃음) 제대로 된 것 좀 지어달라고 말하니 ‘오르내림’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다른 친구에게 “나 이제 오르내림이야”라고 말해보니 영어로는 ‘OLNL’으로 하라는 답이 왔어요. 바로 느낌이 와서 사운드클라우드에 ‘OLNL 오르내림’ 계정을 등록했어요. 지금은 너무 마음에 들어요.

10. 언젠가 화장품 광고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겠네요.
오르내림: 저한테 어울릴지 모르겠어요.(웃음) ‘아이키커’ 같은 어린이 영양제나 초콜릿 광고가 하고 싶어요.

10. 우주비행은 어떻게 결정된 크루인가요?
오르내림: 기리보이 형이 한 명씩 들였어요. 현재까지는 총 12명이 있는데 전 11번째로 들어갔어요.

10. 현재 우주비행과 주스오버알콜, 두 크루에 속해 있는데, 크루 단체곡을 낼 계획은 없나요?
오르내림: 이제는 있어요. 지난해까지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자는 주의였는데, 올해에는 단체곡 작업도 좀 더 활발히 얘기가 오가는 분위기에요. 크루만의 팀워크가 묻어난 작업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르내림 ‘전체이용가’ 커버 / 사진제공=스톤쉽
오르내림 ‘전체이용가’ 커버 / 사진제공=스톤쉽
10. ‘전체이용가’를 만들 때는 재밌었나요?
오르내림: 재밌었어요. 처음에는 숨도 안 쉬고 이어지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요. 마치 가수 비처럼 마이크를 차고 바쁘게 불러야 할 것 같은 노래를요. 그래서 ‘댄스 가수’라는 제목의 곡을 만들자고 결심했는데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그림이고 네가 그린 기린그림은 잘못그린 기린그림이다(이하 ’내가 그린 기린 그림‘)’라는 악상으로 넘어갔다가 ‘코끼리코’를 만들게 됐어요. ‘내가 그린 기린 그림’(가제)은 나중에라도 꼭 완성해보고 싶어요.

10. 첫 정규 앨범 제목을 왜 ‘전체이용가’로 지었습니까?
오르내림: ‘APOLLO’를 만들 때부터 디즈니를 동경했어요. 디즈니의 원작 소설을 보면 사실 되게 잔인한데, 애니메이션화하면서 캐릭터도 예뻐지고 이야기도 좀 더 귀여워지잖아요. 그러면서도 원작의 메시지는 그대로 품고 있고요. 저도 그런 곡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제목을 ‘전체이용가’로 정해놓고 ‘어른용’ 가사를 아이들도 볼 수 있게 포장한 곡들을 수록했어요.

10. ‘전체이용가’라 그런지 곡들이 때묻지 않은 느낌입니다. 믹스테이프 때부터 비교해보면 점점 더 순수해지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오르내림: 원래 디즈니를 좋아하긴 했지만 처음 음악을 할 때는 좀 평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APOLLO’를 만들 때부터 저한테 솔직해졌어요. 저는 좀 순진한 사람이거든요.(웃음) 그래서 점점 저와 제일 잘 맞는 음악을 하게 됐죠. ‘APOLLO’ 5번 트랙 ‘JOY’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기쁨이’를 보고 만든 곡이에요.

크루 우주비행과 주스오버알콜에 속해있는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크루 우주비행과 주스오버알콜에 속해있는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10. ‘APOLLO’와 ‘전체이용가’를 만들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오르내림: ‘APOLLO’를 할 때는 제 음악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들을 거라는 기대는 없었어요. 그런데 ‘전체이용가’는 성과도 있었으면 해요. 이유는 단 하나에요. 제 음악과 가사가 선한 영향력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전체이용가’ 타이틀곡 ‘SWEET’을 처음 서사무엘 형에게 들려줬을 때였어요. 사무엘 형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차에서 들었는데 기분이 좋아져서 차창을 열고 “좋은 데 갈까”라고 했다고 말해주더라고요.(웃음) 엄청 추운데도요. 제 음악이 그런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생겼어요.

10. ‘전체이용가’의 6번 트랙에 수록된 ‘유학생’은 미리 공개됐을 때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곡인가요?
오르내림: 여자친구가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오래 해서 저한테 이런 저런 힘든 점을 얘기해줬어요. 그런데 제가 유창하게 위로도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한 채 듣고만 있으니까 살짝 답답해하면서 가사 쓸 때처럼 말해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시간을 들여서 가사를 수정해 만든 곡이에요. 또 저도 제 나름대로의 유학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그때의 경험을 녹여내기도 했고요.

10. 나름대로의 유학 생활이라면?
오르내림: 중학교 3년 내내 혼자 지냈어요. 학교 폭력도 당했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갔을 때는 혼자 있는 것이 당연했고 편했어요. 교실에서 혼자 이어폰을 꽂고서 힙합을 들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Mnet ‘쇼 미 더 머니’가 없었고, ‘쇼 미 더 머니’가 알려진 건 2학년 무렵이라 더 외로웠어요. ‘유학생’의 첫 가사 구절인 ‘내가 선택한 게 아닌 것 같은 나의 하루’들이 계속되던 시절이었죠.

10. 그때는 어떤 음악을 들었나요?
오르내림: 중학생 때 피노다인(허클베리피, 소울피쉬)의 음악을 정말 좋아했어요. 지금 들어도 좋은데, 피노다인의 음악은 밝고 희망이 있어요. 꿈에 대한 얘기들도 많아서 좋았어요. 소울컴퍼니의 음악도 많이 들었어요. 그때 허클베리피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사람들이 자작곡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게 신기해서 자작곡을 올린 사람들한테 연락해서 녹음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렇게 녹음이라는 걸 해보고, 저 혼자 교내 힙합 동아리도 만들었어요. 시청의 지원금을 받아서 래퍼 타이가(Tyga)의 내한 공연도 보러 가곤 했죠.(웃음)

힙합과 디즈니, 힙합과 어린왕자 감성을 접목시킨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힙합과 디즈니, 힙합과 어린왕자 감성을 접목시킨 래퍼 오르내림 / 사진제공=스톤쉽
10. 세련된 오토튠 사운드를 구현한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그때부터 오토튠을 활용했어요?
오르내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오토튠을 썼어요. 저는 노래를 엄청 잘하고 싶다기보다 예쁜 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강했거든요. 그건 지금도 그렇고요. 또 제 목소리를 표현하는 것에 욕심이 좀 많은 편이에요. 사운드 엔지니어링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은 꿈은 없는데 제 목소리를 더 잘 알고,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어요. 그런데 오토튠이 제가 만들고 싶은 음악의 색과 가까웠어요.

10. 앞으로는 또 어떤 음악을 하고 싶나요?
오르내림: 장르나 형태는 상관 없어요. 전 엄청 어두운 음악을 할 수도 있고, 동요를 만들 수도 있고, 가요를 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무엇이 됐든 그건 저만 할 수 있는 음악일 거에요. 어려운 과제에도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사실 디즈니 느낌의 귀여운 비트에 새하얗고 순수한 시선을 담기는 쉬워요. 잔혹 동화처럼, 어두운 비트에 메시지를 제 식대로 담아보는 미션을 수행해보고 싶어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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