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여도’에서 단종 역을 맡은 블락비의 비범(이민혁). / 사진제공=씨케이아트웍스
연극 ‘여도’에서 단종 역을 맡은 블락비의 비범(이민혁). / 사진제공=씨케이아트웍스
“어느덧 스물아홉이 됐어요. 올해는 이민혁으로서 여러 가지를 하고 싶습니다.” 2011년 7인조 그룹 블락비로 데뷔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한 비범(이민혁)의 말이다. 지난달 13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개막한 ‘여도'(연출 김도현)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그는 “블락비로는 바쁘게 지냈는데, 돌아보니 이민혁으로서는 보여준 게 없어서 아쉬웠다. 올해는 나의 다채로운 면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 첫걸음이 ‘여도’의 단종이다. 조선 6대 임금 단종과 그의 숙부인 세조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슬픈 운명을 타고난 인물로 무대 위에서 슬픔을 토해낸다. 자유롭게 뛰노는 블락비의 비범과는 확실히 다르다. 옛말로 된 어투부터 눈물 연기까지 모든 게 쉽지 않지만, 비범이 아닌 이민혁으로 뭔가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즐겁고 재미있단다. 멀리뛰기를 위해 숨 고르기를 마친 이민혁의 다른 얼굴이 기대된다.

10. 데뷔 후 처음으로 연극을 하는 소감은 어떻습니까?
이민혁 : 믿기지 않아요. 공연 전 연습부터 부담이 컸어요. 연습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달 동안 했거든요. 12월이었는데, 밖은 크리스마스로 시끌벅적해도 연습실에만 있었죠.(웃음) 공연을 올리고 나니까 재미있어요.

10. 첫 공연 전날에 잠은 잘 잤나요?
이민혁 : 사실 전날엔 크게 긴장하지 않았는데 무대에 올라가니까 서서히 긴장되더라고요. 몰입하려고 정신을 붙잡았죠. 첫 번째 공연 날, 하루에 2회를 했는데 아무래도 뒷 공연을 더 잘한 것 같아요. 마치고 나니까 후련했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 블락비에서도 춤으로 시선을 끈 멤버여서 연극 출연이 의아했습니다.
이민혁 : 연기에 욕심은 있었어요. 대신, 할 거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시작을 뭘로 해야 앞으로 연기를 할 때 도움이 될까?’ 고민했는데 운 좋게도 ‘여도’의 출연 제안을 받았어요. 사실 출연 전에도 고민을 했죠. 아이돌 그룹 출신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 진짜 잘 해냈을 때만 득이 되는 거잖아요. ‘할게요’ 해놓고 책임을 못지면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거니까요. 회사 식구들과도 상의를 많이 하고 혼자서도 고민을 거듭했어요. 그러던 중에 연출가가 ‘내가 끌어줄 테니 믿고 가보자’고 하더군요. 확신이 생겼어요.

10. 연습을 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이민혁 : 블락비 활동이 있어서 다른 배우들보다 약간 늦게 연습에 합류했어요. 첫날부터 대본 리딩을 했죠. 그 순간은 정말 괴로웠는데(웃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본 연습을 하고 나니 막막하더군요. ‘맞는 건가?’ 계속 자신에게 되물었죠.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이민혁은 “올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 사진제공=세븐시즌스
이민혁은 “올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 사진제공=세븐시즌스
10. 참고한 것들이 있나요?
이민혁 : 제가 맡은 역할은 단종이니까, 연습 전에 설민석 강사의 역사 강의를 찾아 봤어요. 그가 직접 쓴 조선왕조실록도 읽었고요. 사실 극은 허구가 가미돼 역사와 다르고, 만들어낸 인물도 나와요. 그래도 역사의 줄기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공부했는데, 연기를 할 때는 극 중 단종에게 깊이 접근했어요. 극에 더 집중한 거죠. 이 말을 하기까지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등을 고민하고 연출가에게 물어보기도 했죠. 연출님이 정말 잘 끌어주셨어요. 방향성도 잡아주고요. 또 선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여러 방법들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건 제 몫인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었어요.

10. 연기를 해보니 어떻습니까?
이민혁 : 여러 사람과 공부하고 고민할 수 있는 게 좋아요. 혼자 연기 수업을 받고 연습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한 달 동안 배우들과 맞춰보고 논의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습할 땐 부담감을 안고 ‘못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에게 압박을 줬어요. 첫 공연을 마치고 난 뒤부터 점점 더 재미있어요. 선배들이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울 때 ‘어떻게 저렇게 울지?’ 감탄했는데, 제가 사약을 마시고 죽는 연기를 하면서 울고 있더라고요. 그 순간 정말 슬펐고 자연스럽게 눈물이 흘렀어요. 처음 해본 경험이고, 신기하더군요. 선배들이 “진짜로 느낀 것”이라고 해주셨어요. 어렴풋이 ‘내가 운 건가, 단종이 운 건가…이런 게 연기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10. 매번 비극으로 감정을 토해내야 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민혁 : 사실 처음엔 방향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감정의 정도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어느 하나도 쉬운 결정은 없었어요. 연습하면서 방황할 때 연출가가 “너인 단종도 좋고, 단종인 너도 좋다”고 했어요. 부담을 갖지 말고 연기하라는 말이었죠. 그때부터 짐을 덜었습니다. 좋은 연출가와 선배들을 만나서 첫 시작을 잘 한 것 같아요. 감사해요.(웃음)

10. 블락비는 다재다능한 그룹이에요. 활발하게 개별 활동을 해온 멤버들과 비교하면 늦은 편이죠. 연기를 지금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민혁 : 저는 뭔가를 할 때, 보여드릴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에요. 8년 동안 그룹 활동을 하면서 뭔가를 잘 해내는 친구들이 부럽더군요. 그래서 생각도 많아지고 우울한 시기도 있었죠. 고민이 많은 저로서는 어떤 좋은 기회가 와도 선뜻 ‘하겠습니다’가 나오지 않았어요. 준비가 된 건가…항상 생각했죠. ‘여도’ 역시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연출가의 한마디가 큰 힘이 된 거예요.

10. 노래하고 춤추는 블락비 비범과 다른 느낌이군요.
이민혁 : 저는 조용하고 말수도 없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웃음) 어떻게 보면…좁고 깊다고 해야 할까요? 가수란 꿈을 이뤘으니 계속 즐겁고 행복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일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왔고, 고민이 되더군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걸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연기에 끌렸어요. 가수를 하고 싶었던 것처럼 재미있어요. 그 순수한 마음이 다예요.

10. ‘여도’가 이민혁으로서의 본격 시작이네요.
이민혁 : 지금까지는 팬들에게 블락비 비범이었다면 올해는 이민혁으로서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어요. 나이의 영향도 있겠죠? 블락비는 저에게 20대의 좋은 기회였어요. 올해 29살이 됐는데, 이젠 이민혁으로 사는 삶도 준비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10.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이민혁 : 주위 사람들 덕분이에요. 고민하는 것들을 털어놓으면서 풀었어요. 무엇보다 팬들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죠. 사실 연기를 어떤 갈증을 풀기 위해 쉽게 선택한 건 아니에요. 공부하고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저에겐 무척 어렵지만, 거기서 오는 짜릿함이 재미있습니다.

10.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이민혁 : 레몬을 생수에 넣어서 마셔요. 블락비 활동 때는 하지 않던 습관이 생겼죠. 멤버들도 “이제 와서 그걸 한다고?”라고 하더군요.(웃음)

10. ‘여도’에서 가장 어려운 장면은요?
이민혁 : 제 성격과 다른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하이톤으로 귀엽고 풋풋한 분위기를 내야 하는 거예요. 어려워요.(웃음) 확실히 같은 역할을 맡은 병헌이가 나이도 어려서 그런지 잘 어울리더라고요.(웃음) 사약 마시는 장면은 무대 밑으로 내려와서도 슬픈 마음이 한동안 남아있어요.

10. 작품을 볼 때도 여운이 오래가는 편인가요?
이민혁 :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면 OST를 찾아 계속 들어요. 쉽게 그 감정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10. ‘여도’로 얻고 싶은 게 있습니까?
이민혁 : 처음 도전한 연극에서 맡은 단종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느낀 여러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이 작품으로 끝내지 말고, 연극을 몇 작품 더 해보고 싶어요.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얻으면 좋겠습니다.

10. 올해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이민혁 :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동안 블락비로서 바쁘게 보냈어요. 한 해를 돌아보면서 ‘블락비가 아니라 나(이민혁)로는 뭘 했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아쉬움이 컸는데 연극, 자작곡, 여행까지 이민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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