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매주 1회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명으로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사진=영화 ‘플립’ 포스터
/사진=영화 ‘플립’ 포스터
이 소녀를 어디서 보았더라? 생각해 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치 코미디인 ‘스윙보트2008’에서 케빈 코스트너의 딸 몰리로 나와 당찬 모습을 보여주었던 메들린 캐롤이었다. 그리 예쁘지는 않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자기 나름의 시각으로 세상을 열심히 알아가는 역할이었는데 꽤 인상 깊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플립(flipped)’(감독 로브 라이너) 역시 메들린 캐롤에게 잘 어울리는 영화다.

일곱 살 소녀 줄리는 이사 오던 첫날, 앞집에 사는 브라이스(캘런 맥오리피)에게 푹 빠지고 만다. 잘생긴 소년인 데다 파란 눈이 빨려 들어갈 듯 아름다웠던 까닭이다. 줄리는 구김 없는 성격이라 자신의 관심을 여과 없이 브라이스에게 표현했고 브리아스는 그 관심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앞집에 이상한 여자애가 이사 온 셈이었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6년이 지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일이 터진다. 짐작하는 대로 소년 소녀의 사춘기가 시작된 것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사랑의 감정이 늦게 발달한다는 점은 다들 알고 있으니 두 사람 사이에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지 흥미가 절로 생긴다. 감독이 관객, 아니 인간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증거다.

로브 라이너의 전작 ‘미저리1990’나 ‘버킷 리스트2007’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플립’에서도 과연 감독은 심리묘사에 뛰어나 눈길 한 번, 손 끝 하나를 통해서도 감정 표현이 뛰어났다. 특히 줄리가 나무 높이 올라가 먼 곳으로부터 비쳐오는 석양을 바라보는 장면은 좋았는데 그녀가 추구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의 심리묘사를 관찰하면서 영화를 따라가면 무척 재미날 것이다.

/사진=영화 ‘플립’ 스틸컷
/사진=영화 ‘플립’ 스틸컷
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빗나가기만 할까? 한쪽은 짝사랑을 시작해 이미 감정 진도가 많이 나갔는데 다른 한쪽은 뒤늦게 사랑을 시작한다. 짝사랑에 지친 상대의 마음이 이미 접혔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말이다.

브라이스는 정신 연령이 줄리보다 어려 그녀의 일탈적인 행동들을 의아해한다. 줄리가 자기 집 앞의 플라타나스 나무를 자르지 못하도록 나무 높이 올라가 버틴다든가, 잔디를 손보지 않아 볼품없이 되어버린 정원을 방치한다거나, 괴팍해 보이는 줄리의 가족들도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줄리의 가치를 진즉에 알아본 외할아버지 쳇(존 마호니)은 줄리네 가족을 아주 맘에 들어 한다. 다양한 세상을 겪은 할아버지가 귀여운 손자에게 지혜를 넘겨주려는 순간이었다. 우리식으로 따지면 노인 세대에 대한 공경이 살아있는 영화라고나 할까?

영화는 동명 원작 소설을 기초로 하지만 원래 배경인 현재가 아니라 1950년대 말로 바꾸었다. 아마 감독이 자신의 성장 시기에 영화를 맞추려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기성세대들에게도 공감대를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작품으로 탈바꿈했는데 따지고 보면 사춘기 초입의 소년 소녀들의 감정은 동서고금을 초월해 다 똑같은 게 세상이치다. 그렇지만 요즘 세대는 왠지 내면의 아름다움이나 은근한 멋을 모른다고 폄하하는 노인들도 있으니 추억을 떠올리며 꼭 한번 감상해보시길 바란다.
……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 때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
……
(‘초원의 빛’, W 워즈워드)

영어의 flip는 ‘휙 뒤집다’는 뜻이다. 그러니 flipped는 ‘휙 뒤집혀진’이 되려나? 사춘기 소년 소녀의 불안정한 정서를 표현하기에 적당한 말이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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