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사진=SBS ‘귓속말’ 방송화면 캡처
사진=SBS ‘귓속말’ 방송화면 캡처
드라마 속 PPL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드라마 제작 환경의 악화로 드라마와 PPL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지만, 극의 전체적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은 PPL은 시청권의 침해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지난 2010년 1월 방송법 시행령이 어느 정도의 규정(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5%, 전체 화면 크기의 4분의 1을 초과하지 않는다)만 지키면 브랜드 이름을 가리지 않은 채로도 극중 PPL이 가능해짐에 따라, 시청자들은 드라마에서 준(準) 간접 광고를 수없이 봐왔다. SBS ‘당신의 여자’에서 집에 들어온 배우 노현희가 갑자기 부모님께 “공기 청정 좀 해놓으라니까”라며 공기청정기를 켜 유명해진 장면부터 SBS ‘아임쏘리 강남구’에서 배우 차화연은 며느리와 대화할 때 항상 안마의자에 앉아서 얘기하는 기현상은 광고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최근 1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PPL로 출연해 가장 많이 덕을 본 것은 한 샌드위치 브랜드 S사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해외 K드라마 애청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아예 ‘한국 샌드위치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이 올라왔다. tvN 드라마 ‘도깨비’와 ‘시카고타자기’, SBS ‘피고인’등에 나온 샌드위치 브랜드 PPL 장면의 상황을 요약한 것이다. 드라마 속 샌드위치 가게에서는 저승사자(이동욱)이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기도 하고, 악역으로부터 아이(신린아)를 보호할 수도 있으며 아주 어려운 소송 사건을 풀 수도 있다.

SBS ‘피고인’, tvN ‘도깨비”시카고타자기’ / 사진제공=dramatroll.net
SBS ‘피고인’, tvN ‘도깨비”시카고타자기’ / 사진제공=dramatroll.net
SBS ‘귓속말’도 예외가 아니었다. 세간에 화제를 일으킨 ‘귓속말’ PPL은 이보영의 선크림 신이었다. 지난 4월 25일 방송된 10회에서 배우 이보영(신영주 역)이 김뢰하(백상구 역)와 접촉하기 위해 나란히 조깅을 하던 중 자외선차단제를 꺼내는 장면이다. 둘 사이의 대립이 극의 긴장감을 서서히 조여가는 찰나였기 때문에 그 순간 이보영이 선블록을 꺼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이보영은 광고로 사용해도 될 만큼 주의깊게 선블록을 바르는 장면을 연출한 후, 김뢰하에게 “너도 바를래?”라고 권하기도 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보영은 지난 15일 방송된 14회에서 다시 화장품을 꺼냈다. 이보영은 멋지게 악의 무리를 소탕한 후, 경찰서에서 결연한 표정으로 아이크림을 꺼내 발랐다. 이때 이보영은 메이크업을 한 상태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발라 더욱 의문을 샀다. 메이크업을 한 상태에서 기초 제품을 바르면 오히려 메이크업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이보영의 행동에 옆의 동료도 “누가 경찰서에서 분냄새를 풍기냐”라고 물었다. 이에 이보영은 “왜, 분냄새 풍기니까 돈냄새 못 맡냐”라고 답했다.

이는 과한 PPL이 극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는 비난으로 이어졌다. 이보영이 화장품을 바르는 것 장면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신들이 이보영과 이상윤의 멜로를 위한 복선도 아니었던데다 그 둘을 제외하면 도무지 극중에서 그 기능을 알 수 없는 장치였기 때문에 비난을 면치 못했다. 특히 권력 세력간의 암투 등을 성공적으로 그려냈던 박경수 작가가 그간 보여준 필력을 향한 팬들과 시청자들의 기대가 있었던 탓에 실망의 목소리도 컸다.

이같은 PPL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해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으로 중국 등에 드라마 판권을 팔 수 없게 돼 제작비에 대한 압박이 크다”며 “배우와 작가의 몸값 등 내부 비용 요소 증가도 PPL 의존도가 높아진 요인중 하나다”고 전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PPL은 드라마 제작 환경에 필수적인 요소지만, PPL도 그 작품만의 톤앤매너는 따라가야 할 필요는 있다”며 “‘귓속말’은 한국 사회 상류 집단 간의 권력 암투를 둘러싼 무거운 드라마다. 그러나 샌드위치 프랜차이즈나 화장품 등의 PPL은 그 진지한 분위기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않아 시청자들의 몰입을 방해했다”고 평했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