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허희 / 사진제공=교보문고
허희 / 사진제공=교보문고
팟캐스트가 어느새 일상에 스며든 시대,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 사로잡은 팟캐스트가 있다. 바로 교보문고 낭만서점이다. 소위 ‘핫플레이스’처럼 하루 아침에 뜨고 지는 팟캐스트의 홍수 속에서 낭만서점은 2년째 입소문을 타고 진득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낭만서점의 매력은 교감에 있다. 매주 고심해 고른 신간을 주제로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폭넓은 이야기를 나눈다. 전문가의 식견과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비전문가의 견해가 어우러진 이 대화는 자연스레 듣는 이와 책과의 거리를 좁히고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는 낭만서점이 문을 열 때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문학평론가 허희가 지향하는 ‘공감의 비평’과도 맞닿아있다. 나 혼자의 만족에서 끝나는 비평이 아닌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에서 비평의 목적을 찾는다는 그를 만나 ‘비평하는 삶’에 대해 듣고 왔다.

10. 어떻게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됐나.
허희: 대학교 때 국어국문학부를 전공하면서 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나름대로 분석해보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작업이 흥미로워서 신춘문예 등 문예지 비평 공모에 비평을 내기 시작했다. 2012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 평론 부문으로 등단해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걸었다. ‘허희’라는 이름도 필명인데, 글을 쓸 때는 또 다른 자아로서 자유분방하게 쓰고 싶어 지었다. 생활인으로서의 나와는 또 다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10. 평론가의 삶은 어떻게 돌아가는가.
허희: 늘어지기 쉽기 때문에 나름대로 규칙적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노력한다.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무조건 그 시간에는 글을 쓴다거나. 또 평론은 계속 자기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학 외 다른 분야들, 즉 철학이나 역사, 사회과학 쪽의 책들도 읽어 놓아야 후에 비평의 자양분이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지적했듯, 체력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10. 언제나 글과 함께하기 때문에 책은 더 특별한 의미일 것 같다. 책에 빠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허희: 책이 왜 좋아졌는가를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존재론적 고독’이라고 하지 않나. 인간은 늘 타자와 관계를 유지하지만 본질적으로 아쉬움을 느끼는 존재다. 나는 사춘기 때 처음 느낀 그 감정을 책을 통해 극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글 자체에 빠지게 된 것 같다.

10. ‘좋은 비평’의 기준은 무엇일까.
허희: 인식적 가치, 미학적 가치, 윤리적 가치 이렇게 세 가지다. 나만의 방법론이 아니라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나는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르고 있던 것을 새롭게 알게해 주는 작품이 바로 인식적 가치를 충족하는 작품이다. 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은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엇던 새로운 미적 충격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처럼. 윤리적 가치를 지닌 작품은 기존의 도덕 관념들을 새롭게 사유할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다. 보통 이 세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비평하려는 대상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비평이라는 건 결국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뿐만 아니라 그것을 쓴 작가도 모르고 있었던 혹은 놓치고 있었던, 그 작품이 내재하고있는 것들을 나의 언어로 밝혀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가 작품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작가를 포함한 모든 독자의 인식 지평을 깨뜨려버리는 거다.

10. 당신이 지향하는 비평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허희: 늘 지향하는 것은 ‘공감의 비평’이다. 비평이라는 것 역시 독자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장르이고 나 혼자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글을 읽으면서 내 글을 통해서 그 작품을 새롭게 읽게 만드는 독자까지 감동시키는 것이 비평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값싼 감동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을 의문에 붙이게 만들고, 마음을 움직였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공감이다.

10. 그렇다면 비평가 자신은 언제 발전한다고 느끼나.
허희: 비평가가 모든 작품을 비평할 수 있다고 하는 건 오만이다. 오히려 내가 ‘비평하고 싶게 만드는’ 작품과 우연히 마주할 때, 비평가도 작품도 발전하는 것 같다.

10. 요즘 관심가는 주제는 무엇인가.
허희: 요즘 ‘리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이른바 ‘리얼리즘’이라고 할 때 그 리얼리즘이 반드시 현실에 바탕을 둔 영화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영화 ‘엑스맨’이나 ‘인터스텔라’ 또한 리얼리즘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환상적인 요소가 다분한 영화지만, 정작 관객들이 영화 속 판타지에 대해 뜬금없이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갖고 있는 ‘리얼리티’, 혹은 ‘실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의 형식이 어떠하든 간에 진실이라는 것이 있다는 거다. 가령 ‘엑스맨’은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엑스맨이 어떤 초능력을 부리든 사람들은 흥미롭게 보게 된다. 오히려 현실 속 대기업 재벌 3세가 아주 평범한 여주인공에게 백마탄 왕자처럼 나타나서 구원해주는 식의 서사가 리얼리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10. 최근 문학과 영화와의 교류가 활발했다. 원작을 토대로 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그 영화를 ‘좋다’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허희: 원작이 좋으면 영화도 좋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웃음) 원작에 너무 충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소설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 않나. 소설을 소설 나름대로 텍스트로의 매력이 있는 것이고 영화는 영상 언어로서 갖는 매력이 있다. 소설이 잘 팔리고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똑같이 영화로 옮기면 역시 비슷한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결국 감독이 그 소설의 포인트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메시지가 A라면, 감독이 A를 캐치해서 A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하면 그 감독은 B급인 거다. 그런데 A급 감독들은 A를 A’로 만들어낸다. 또는 A를 인지하고 있는 상태로 B나 C를 만든다. 영화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 되는 거다. A’의 사례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박 감독은 원작에 휘둘리지 않았다. 원작 ‘핑거스미스’에서 각색하고 싶은 포인트만 캐치해 결말을 나름의 해석으로 전환한 것, 일제강점기로 전환한 시대 배경 등이 오히려 ‘아가씨’를 좋은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박 감독은 굉장히 영민한 비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10. 그렇다면 원작과 비교해서 보면 더 좋은 영화를 하나 추천해 줄 수 있나.
허희: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종이달.’ 원작도 날카롭고 영화도 감독이 각색을 잘 해서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인간이 악을 저지르는 것에 있어서 그 악이 그렇게 자기를 파멸시킬 줄 알면서도 나아가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소설도 읽어도 소설 나름대로의 감흥이 있고 영화도 완성도가 높다.

10. 앞으로의 꿈은.
허희: 나의 고유한 비평관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책들을 꾸준하게 내고 싶다. 마치 우디 앨런 감독이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내듯이.(웃음) 그 첫 번째 시리즈는 내년쯤 출간될 예정이다.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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