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에디터]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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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경은 여전히, 소녀다. 눈처럼 하얀 피부에 입가에 맺힌 미소는 때 묻지 않은 듯 순수해 보인다. 그런데 겉모습이 빚어내는 분위기만으론 짐작하기 어려운,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열여섯 나이에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력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강단 있게 가능성을 내보이며 모델로 데뷔했다. 그리고 4년. 일찍이 발을 담근 어른의 세계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성장하며 나아간 그녀는 어느덧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모델이 됐다. 작년엔 웹 드라마 ‘옐로우’로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했고, 최근엔 온스타일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블스 런웨이’에 출연해 선배 모델로서 주니어 모델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제 스물이지만,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모델 김진경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더 넓고, 더 깊게, 자신의 세계를 그리면서.

10. 패션 위크도 다 끝났는데, 컨디션은 좀 어떤가.
김진경 :
처음으로 패션 위크가 끝나고 나서 앓았다. 워낙 건강을 챙기는 스타일이라 평소에 잘 챙겨 먹었는데, 패션 위크 때는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해서, 2주 정도 고구마나 계란만 먹었다. 그랬더니 체력이 확 달리더라. 감기에 걸려 버렸다. 아, 잘 안 낫는다. (웃음)

10. 모델은 항상 숫자와 싸우지 않나. 몸무게도 그렇고, 치수도.
김진경 :
몸무게를 안 잰 지 한 2, 3년 됐다. 몸이 무겁다, 가볍다 식의 느낌으로만 알거나, 거울을 보며 라인을 확인하는 정도다. 그렇게 안 하면 숫자에 대한 강박이 심해지더라. 스트레스 요인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한다.

10. 올해 스무 살이 됐는데…
김진경 :
(말이 끝나기 전에 웃으며 박수)

10. (웃음) 성인이 되어 런웨이에 서니, 느낌이 달랐나.
김진경 :
이번에 쇼는 10개 정도 섰는데, 컬렉션에서 보니 세대교체가 되고 있는 것 같더라. 어리고 새로운 얼굴이 많이 보였다. 약간, 위기감을 느꼈다. (웃음) 키는 기본적으로 다 크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닌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 회사(에스팀)만 놓고 보면, 서유진이란 친구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포스가 있어서, 많이 놀랐다.

10. 그러고 보니 이제, ‘완전’ 선배이지 않나.
김진경 :
에이, ‘완전’은 아니다. 어느 정도. (웃음) 열 여섯에 데뷔했을 때 난, 부끄럼이 너무 많았다. 선배들에게 먼저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요즘 친구들은 굉장히 당차다. 먼저 다가오는 후배들이 많다. 나는 피곤에 절어 있는데, 그 친구들은 파릇파릇하다. (웃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다.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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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최근 온스타일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 ‘데블스 런웨이’에서 현직 모델인 시니어 자격으로 출연해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김진경 :
(귀엽게 울상을 지으며) 우리 팀이 우승하기를 바랐는데…! (웃음) 내가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이하 도수코)’ 출신이다 보니 도전자의 입장도 잘 안다. 그래서 더, 우리 팀 주니어인 (김)세희가 우승했으면 싶었다. 아쉬움이 컸다.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세희에게 “언니, 2등이었는데 일 많이 한다”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멘토였던 (한)혜진 언니도 많이 아쉬웠을 거다.

10. 주니어 모델들과 함께 나온 터라, 시니어 모델들의 분량이 많진 않았다.
김진경 :
데뷔 전인 주니어 모델 열 명과 현직 모델인 시니어 모델 열 명, 스무 명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다. 주니어들 중에서 우승자 한 명을 뽑아야 하는 거였기 때문에 주니어 위주로 나오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분량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내가 방송에서 해야 하고, 챙겨야 하는 몫은 다 했거든. (웃음)

10. 프로그램에서 게릴라 성으로 진행된 오픈 런웨이에 서기도 했다. 보통, 무대에 오르기 전과 후, 언제 더 흥분되나.
김진경 :
오르기 전이다. 프로그램에서 뿐만 아니라 패션쇼를 할 때면, 언제나. 그런데 쇼가 끝나면 바로 다음 쇼가 진행되잖아. 10분 전만 해도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조명을 받으며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집에 갈 땐 아니다. 게다가 난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니, 그런 것에서 오는 괴리감이 컸다. 하지만 이젠 이런 부분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일하는 데에 있어서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언니들이랑 “수고했다!”며 인사하고는 ‘칼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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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항상 웃는 얼굴인데, 딱 한 번 제작진에게 “너무 하시는 거 아니냐”며 살짝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 있다. 그때도 물론 웃으면서. (웃음) 어디로 가는지, 뭘 하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게릴라 화보 진행 때였다.
김진경 :
진짜!? 내가 그랬었나? 나도 화낼 줄 아는 아이인가 보다. (웃음) 말할 때도 항상 웃는 스타일이라 화보 촬영 콘셉트 때문에 화를 내는 느낌을 요구하실 때면 좀 힘들다. 살짝 ‘멘붕’이다. 그래서 스태프 분들도 “진경아, 너는 화를 안 내?”라고 물어보실 때가 많다. 물론, 집에서는 또 다르지. 집에 가면 긴장이 풀려서인가, 피로가 확 몰려와서, 언니가 날 불러도 “몰라, 부르지 마” 이런다. (웃음) 아, 언니는 두 살 터울이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많이 싸웠지만, 요샌 나도 여유를 갖게 돼서 그런가, 예전만큼 안 그런다. 하하.

10. 유쾌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게, “할머니가 공부 안 하면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한다고 했는데,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직업을 선택했다”고 말하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이더라.
김진경 :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안 힘들다. 내가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옆의 누군가가 기분이 안 좋으면 나까지 그렇게 되거든. 그렇기 때문에 나부터 일단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덜 힘들어진다.

10. 모델에게 추위와 더위는 늘 붙어 있는 친구(?) 같은 존재 아닌가.
김진경 :
모델 일은 정말,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는 직업이다. (웃음) 난 피부가 하얀 편이라 더울 때 비키니를 입는 화보는 잘 안 찍는다. 그건 까무잡잡한 피부의 모델들이 주로 찍고, 겨울에 밖에 나가는 게 내 몫이다. 눈밭의 하얀 소녀! 헤헤. 난 몸이 좀 찬 편이라 추위는 엄청 타고 더위를 잘 안 타는데, 항상 눈밭만 구른다. 그건 뭐, 내가 잘 참고 버텨야지. 그래도 공부를 하는 것보다 밖에서 일하는 게 더 낫다. (웃음)

10. 공부하는 거, 싫어하나? (웃음)
김진경 :
공부는, 나랑 안 맞는다. 오래 앉아있질 못한다. 근데 신기한 건 요새 건강한 요리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서 영양학 관련한 책은 읽는다. 전통음식은 왜 먹어야 하는가, 이런 주제의 책들. (웃음) 어제도 시금치 나물을 내가 만들었다. 나 때문에 가족들도 식단을 건강하게 바꿨다. 현미로 밥을 해먹고, 음식의 간은 적게 한다. 과자나 라면도 내가 못 먹게 하거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강요까지는 아니지만 건강하게 바꾸는 게 좋을 거 같다고 권유한다. 식단을 건강하게 바꾸기 전엔 나도 패션 위크 끝나면 언니들이랑 ‘엽떡’ 같은 거 먹기도 했다. 지금은 항상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닌다.

10. 건강에 관심이 많은데 아파서 속상하겠다.
김진경 :
이렇게 아픈 게 처음이어서 당황스러웠다. 얼른 건강해져서 5월쯤에 여행도 가고 싶다. 영양에 더 신경 써야겠다.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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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실 작년에 인터뷰했을 때도 그다지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다. 웹 드라마 ‘옐로우’ 촬영 때문에 밤을 새우고 오지 않았나.
김진경 :
맞다, 맞다. 어떻게 매번 이런 때에 뵙나. 아이고. (웃음)

10. 그때 ‘옐로우’가 방송되면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떠나버리겠다고 말했다. (웃음) 방송된 걸 보니 어땠나.
김진경 :
처음엔 잘 못 보겠던데 막상 또 보다 보니 촬영했을 때 생각도 나면서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고생한 만큼의 뿌듯함이 있는 거 같고 약간 부끄러운 것도 있고. 사실, 드라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다. 부담감과 압박감 때문에 오히려 촬영할 때가 더 편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게 처음 연기하는 거였는데 감독님도 좋으신 분이셨고, 내용 자체도 모델 일에 관한 거라 상황적으로 좀 편했다.

10. 연기한 이루다라는 캐릭터는 김진경과 닮았나, 달랐나.
김진경 :
이 드라마는 어떻게 보면 모델들의 일반적인 성장 과정을 담은 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일상의 한 부분을 연기하는 거였기에 나랑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이 처음에 대본을 쓰실 때 회사랑 계속 미팅을 하시면서 모델 세계를 관찰하신 것들이 잘 녹아 들어가 있었거든. 물론 성격 같은 부분에선 드라마이기 때문에 좀 더 극대화시킨 부분들은 있다. 오글거리는 대사도 있고. (웃음) 급기야 나중엔 백온(여혜원)과 뺨을 때리며 싸우기도 하지 않나. 이런 걸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서 재미있더라. 하하.

10. 모델이라면 거치는 일반적인 과정이라고 했는데, 친했던 사이가 라이벌이 되었다고 해서 그 정도는 아니겠지? 백온과 싸울 때 살벌했다.
김진경 :
하하, 아니다. 요즘엔 선배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운 편이다. 예전에는 되게 무서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모델로 활동하기 몇 년 전부터 그런 질서 같은 것들이 유해졌다고 들었다. 시대를 잘 타고난 거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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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극중 이루다에게 회사 실장이 열여섯 살짜리랑 계약했다는 말을 하며 밑에서 이런 애들이 막 치고 올라온다고 했다. 실제로 열여섯에 데뷔했기에, 그 대사가 예사 것으로 다가오진 않았겠다.
김진경 :
내 미래를 미리 연기한 기분이었다. 일한 지 4년이지만, 난 아직 스무 살밖에 안 됐다… (웃음)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서인가, 마인드가 스무 살 같지는 않다. 또래들을 만났을 때 “야 오늘 놀자!” 이래야 하는데 난 항상 일이 우선이거든. 노는 건 일 다음이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 클럽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스무 살이 됐으니 술도 막 마셔야지 하면서 마셔본 적도 없다. 이상하게 그런 마음이 안 든다. 언니들이 “진경이는 술도 안 마시고 클럽도 안가고 건강한 것만 하면서 사는 재미없는 애”라고 장난 식으로 말하곤 한다. (웃음)

10. 애 어른 같다.
김진경 :
가끔은 (내가) 좀 징그럽다. (웃음) 씁쓸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현재의 삶에 만족한다.

10. 지금이 좋나?
김진경 :
그럼.

10. ‘옐로우’를 하고 난 후 연기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했나.
김진경 :
처음엔 연기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었다가 연기를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쯤 ‘옐로우’를 조금은 급하게 들어갔다. 작품을 끝내고 나니 연기도 감정 표현이나 이런 부분에선 모델 일과 비슷한 부분이 있구나 라고 느끼며 연기에 대한 마음이 더 열리게 됐다. 앞으로 좀 더 준비를 탄탄하게 잘해서 나와 잘 맞는 역할이 운 좋게 들어온다면 다시 찾아 뵐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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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델, 방송, 연기, 다양한 경험을 해 나가고 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을까.
김진경 :
일반인이었다면 대학교를 갈 나이지만, 일을 우선시 하고 싶어서 대학은 안 갔다. 그런데 나중에라도 식품이나 영양 쪽에 갖고 있는 관심이 계속 이어진다면 공부를 해봐도 좋을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파는 조그마한 가게를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그걸 목표로 열심히 일하면서 자금을 모아야지. (웃음) 이번에 새로 세운 계획 중에 하나는 베를린에 여행을 갈 생각인데, 베지테리언을 위한 식당을 다녀볼 거다. 답사 아닌 답사랄까. 마냥 노는 가는 게 아니라 나를 채워서 오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서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고 싶다.

10. 아직 스물인데, 일을 우선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왜인가.
김진경 :
모델이 꿈이어서 모델이 됐다. 이젠 모델로서 일을 하고 있으니 그 외적으로 생기는 목표를 이루려면 일을 계속 해 나가야 하는 거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거다. (웃음)

10. 1년 뒤, 스물 하나 김진경은 어떤 모습일 것 같나.
김진경 :
아직까지는 내가 ‘아기’ 같은 이미지가 있다. 내년엔, 겉모습은 여전히 ‘아기’일 수 있겠지만 생각의 깊이가 좀 더 깊어지면서 성숙함을 풍기는 여자가 되고 싶다. 소녀에서 여자로!

이정화 에디터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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