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윤준필 기자]
안재홍
안재홍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0화에서 이동휘는 안재홍을 두고 “송강호 선배님이 극찬한 최고의 배우”라고 표현했다. 얼굴도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기에 그런 칭찬을 들었을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궁금증은 금세 해결됐다. 안재홍은 예사롭지 않은 연기력으로 ‘응팔’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많은 사람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강렬했던 정봉이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안재홍이 영화 ‘위대한 소원’으로 돌아왔다. ‘응팔’이 대중에게 안재홍의 연기력을 검증시켜준 작품이었다면, ‘위대한 소원’은 안재홍이 송강호에게 충분히 칭찬 받을 만한 배우라는 것을 보여준다. ‘위대한 소원’에서 안재홍은 매를 벌지만 어딘가 정감 가는, 우리 주변에 꼭 있을 것만 갑덕 그 자체다. ‘응팔’의 정봉은 온 데 간 데 없다.

자유자재로 연기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를 마음껏 하고 있는 배우 안재홍을 만났다.

10. 실제 나이보다 10살 가까이 어린 고등학생을 연기했는데도 전혀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완전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안재홍: 나도 촬영 전에 교복을 처음 입었을 때 ‘고등학생처럼 보이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 고등학교에서 촬영을 했었는데, 고등학생들이 근처를 지나가면 음… 차이가 많이 나더라. 영화에서는 10대들의 치기어린 모습들이 느껴져서 그런지 내가 봐도 고등학생처럼 보이더라고.

10. 작년에 찍었던 영화가 올해 개봉된다. 이제야 ‘위대한 소원’이 개봉할 수 있었던 데에는 사이 tvN ‘응답하라 1988’로 뜬 안재홍의 힘이 컸던 것 아니었을까.
안재홍: 작년 4월 한 달 동안 찍은 영화였다. 나 때문에 개봉할 수 있었던 건 아니고, 적절한 시기를 찾았던 것 같다. 요즘 코미디 영화보기 딱 좋은 날씨 아닌가. (웃음)

10. 극 중 갑덕이가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거라며, 담배 안에 들어있는 유해물질을 줄줄 읊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장면에서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가 보였다.
안재홍: 갑덕이는 정봉이처럼 어떤 것에 흠뻑 빠져서 외우는 친구가 아니다. 그 장면은 어떤 캐릭터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감독님의 유머가 드러난 장면이다. 그 상황에서 담뱃갑 적힌 경고문을 말하는 게 뜬금없지 않느냐. 그런 어이없음에서 오는 유머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이 공감을 못하시고 정봉이를 떠올리신 것 같다. 감독님의 실패한 유머다. (웃음)

10. ‘위대한 유산’ 속 세 친구 중에서 가장 안재홍과 비슷한 캐릭터는 누구인가?
안재홍: 세 친구의 성격이 조금씩 있는 것 같다. 그래도 그중에서 고르라면 고환이(류덕환)가 아닐까. 갑덕이처럼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편도 아니고, 남준(김동영)이처럼 상남자도 아니었으니까. 고환이처럼 리더십도 있고. (웃음)

10. 갑덕이를 보니 미국 영화 배우 세스 로건이 생각났다.
안재홍: 세스 로건 좋아한다. ‘위대한 소원’ 준비하면서 그가 나오는 B급 정서의 코미디 영화들을 많이 참고했다. 혼자 보기 좋더라. (웃음) 분위기 파악 못하고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게 갑덕이와 많이 닮았다. 그가 나오는 영화 말고도 다양한 걸 좋아하는데, 양극단에 가있는 코미디도 굉장히 좋아한다.

10.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엉뚱한 캐릭터여서 그런지 몰라도 갑덕이가 참 많이 맞는다.
안재홍: 생각 없이 행동하고, 일을 만들고 다니고, 그야말로 매를 버는 스타일이라 참 많이 맞았다. 그런데 이게 고환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맞는 거다. 포기할 법도 한데 묵묵히 친구의 옆을 지키는 모습이 다가왔다. 어딘가 불량스럽지만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안재홍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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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세 명의 배우들의 케미가 대단했다. 마치 삼총사를 보는 느낌이었다.
안재홍: 류덕환과는 같은 회사지만 함께 작품을 한 적이 없다보니 친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친해지고 싶었던 친구였는데, ‘위대한 소원’을 통해서 많이 친해졌다. 그리고 전에 장편 독립영화에 대사도 없는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영화 주연이 김동영이었다. 잠깐 촬영하는 거였는데도 날 기억하고 있었다. 신기한 인연이 있었다.

10. 작품을 통해 만난 인연이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끈끈한 호흡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놀랍다.
안재홍: 정말로 단기간에 진한 사이가 됐다.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지만 마치 합숙하는 느낌으로 얘기도 많이 나눴고, 쉬는 날에는 같이 맛집 찾아다니고 하면서 정말 친해졌다. 그런 우리끼리의 친함이 화면에도 녹아든 것 같아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10. 전노민이 세 사람과 함께 촬영했던 걸 굉장히 좋아했다고 들었다.
안재홍: 전노민 선배가 우리를 굉장히 예뻐해 주셨다. 역시 경력이 어마어마한 배우란 걸 느낀 게, 홍성 맛집을 굉장히 많이 아신다. (웃음) 전주 맛집이면 모를까.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면 아는 곳이 있다면서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바로 데려가시더라.

10. 홍성에서 계속 촬영했던 건가?
안재홍: 홍성-남원-전주에서 열흘씩 머무르면서 촬영했다. 여행가는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방촬영을 좋아한다. 오로지 영화만 바라보고 그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촬영하면서도 스태프랑 다 친해져서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좀 끈끈해졌다. 농도가 짙은 촬영장이됐다.

10. 애드리브도 많이 있었을 것 같다.
안재홍: 아니다. 모든 대사는 사전에 다 맞춰봤다. 일정이 타이트했기 때문에 리허설과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들이 얘기를 많이 나눴다. 그래서 더할 건 더하고, 뺄 건 뺐다.

10. 어떤 장면이 더해진 부분인가?
안재홍: “가족을 건드려?”라는 대사가 있다. 이 대사는 노는 것처럼 리허설을 하다가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이게 재미있고, 갑덕이 캐릭터에도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나중에 추가했던 대사다. 또, 내가 눈이 빨개져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현장에서 수정된 부분이다. 현장에서 어떻게 표현하면 더 재미있을까 고민하다가 빨간 눈이면 어떨까란 아이디어가 나왔다. 현장에서 바로 눈을 완전히 덮는 특수렌즈를 공수해왔다. 공포영화에서 쓰는 렌즈라고 하던데, 엄청나게 크다. 눈 안에서 렌즈를 펴는 건데, 굉장히 아프고 착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비역할 하는 분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안재홍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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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갑덕이가 굉장히 웃기는 캐릭터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영화의 톤을 방해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던 건 그만큼 안재홍이 연기를 잘 했다는 뜻이 아닐까.
안재홍: 생각보다 갑덕이가 마냥 생각이 없는 친구는 아니다. 계속 남준이한테 ‘그러면 안 된다’, ‘내가 안 된다고 했지?’라면서 브레이크를 건다. 개인적으로는 갑덕이가 주관이 굉장히 강하면서 현실성도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가 워낙 독특하니까 선을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할지 영화의 정서에 맞는 독특한 톤을 찾으려고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다. 감독님도 분명하고 명료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점차 이해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딱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의상이나 헤어스타일도 바로 갑덕이의 캐릭터를 느낄 수 있게 노력했다.

10. 갑덕이의 파마머리도 본인이 직접 설정한 건가?
안재홍: 그건 감독님 의견이었다. 난 처음에 추성훈 선수 스타일의 울프컷을 제안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남준이가 상남자니까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내가 파마를 하는 걸로 바뀌었다. 멋을 많이 부리지만 어울리지 않는 걸로 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10. 성(性)을 소재로 하고, 고등학생들이 ‘성매매 전단지’를 뒤져보는 장면 등은 시각에 따라 불편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안재홍: 감독님도, 배우들도 이 영화가 불편하게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을 많이 했다. 고등학생들이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자신들이 모르던 미지의 세계에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봐주셨으면 좋겠다.

10. 극 중에서처럼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가 고등학생 안재홍에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면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나?
안재홍: 친구가 정말 절실하게 소원을 얘기하니까 노력해보겠다고는 말할 것 같다. (10. 아무래도 갑덕이처럼 많이 맞을 텐데 괜찮을까?) 아니다, 그렇게 맞고 싶진 않다. (웃음)

10. ‘족구왕’부터 ‘응팔’, ‘위대한 소원’까지 연달아 코믹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이러다가 ‘안재홍=코믹전문’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걱정되지 않나?
안재홍: 난 아직도 어리고,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다. 그런 걱정을 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안재홍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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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연기는 언제부터 하고 싶단 생각을 했나?
안재홍: 대학에 와서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입시 준비하면서 느껴보지 못하는 즐거움들을 연기를 하면서 느꼈다. 즐겁다는 감정이 그렇게 생소한 감정인지 몰랐다. 대학은 대학생이 되고 싶어서 간 거였다. 고등학교 때는 크게 장래희망도 없었고. 구조적인 문제 같다. 하하 (웃음)

10. 최근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안재홍이 출연한 ‘졸업여행’을 관람할 수 있다. 알고 있나?
안재홍: 안다. 그런데 난 내 연기가 오그라들어서 못보고 있다. ‘졸업여행’에는 고경표도 나오고, 류혜영도 나온다. 두 사람 다 학교 후배들이다. 입학할 때부터 되게 눈에 띄는 신입생들이었다. 왜 같이 입학해도 유난히 눈에 띄는 친구들이 있지 않느냐. 고경표와 류혜영이 그런 친구들이었다.

10. 홍상수 감독이 학교 교수님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 작품에 스태프로 참여했던 건가?
안재홍: 감독님 영화도 평소에 굉장히 좋아했다. 스태프를 했다는 기사가 뜬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거창한 역할을 맡은 건 아니고, 사람들이랑 차량 통제하는 역할이었다. ‘제작 지원’이었다. 학교 다니면서 얻은 게 굉장히 많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정말 열심히 다녔다. (웃음)

10.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직접 연출한 ‘검은 돼지’가 초청을 받았다. 대학에서 연출을 전공했는 줄 알았는데 연기전공이더라.
안재홍: 모교에 영화과가 생기고 입학한 두 번째 기수였다. 연출을 전공하는 학생은 단편영화를 연출하고, 연기전공은 단편영화에 출연하거나 연극 무대에 올라가는데 영화를 연출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교수님께 허락을 구하고 워크샵 과제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이 즐겁고, 그 기억이 마음에 많이 남더라. 아직도 밤새 웃으면서 만들었던 그 과제물들이 기억에 남는다. 매학기 그런 영상물을 만들었던 것 같다.

10. ‘검은 돼지’는 어떻게 찍게 됐나.
안재홍: 졸업하고 친구들이랑 모여서 두 편 정도 단편을 찍었다. 특히 ‘검은 돼지’는 굉장히 소규모 예산이었다. 나를 포함해 다섯 명이 만든 영화다. 차 한 대 빌려서, 트렁크에 장비 싣고 왔다 갔다 하면서 찍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찍었던 작품이다. 아무도 우리한테 영화를 찍으라고 시킨 사람이 없으니까 촬영 맡은 친구한테도 ‘그냥 너하고 싶은 대로 찍어보라’고 했었다. (웃음)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란 마음으로 찍은 영화인데, 도움을 준 친구들한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건 상영을 하는 거지 않냐. 이번에 전주에서 큰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가장 기쁘다.

10. ‘해보고 싶은 걸 해보자’란 마음가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지금 안재홍이 하고 싶은 건 뭔가?
안재홍: 음… 뭘 하든 즐거웠으면 좋겠다.

윤준필 기자 yoon@
사진. 서예진 기자 yejin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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