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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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상철 선배는 정말이지, 진상이라 불릴 만 하다. 자신보다 힘이 있어 보이는 자에겐 약하고, 약해 보이는 사람에겐 위압적이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다, 그리 밉진 않다.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데엔 어떤 이유가 있을 것 같고, 가끔은 안쓰럽게 보이기까지도 하다. 아마 그건, 상철이란 인물을 연기한 문지윤이란 배우의 힘일 게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물의 단면 아래, ‘삶’이란 이름의 무게를 슬며시 얹어냈다. 2002년 ‘로망스’로 데뷔해, 어느덧 연기 경력 15년 차가 된 문지윤은, ‘치인트’로 다시 한 번 자신의 진가를 알리고 있다.

10. ‘치인트’로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다. 약간, 조용한 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문지윤 : 배우라는 직업이 기다림의 연속이니깐,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전에 작품을 꽤 하긴 했다. 관심을 많이 받진 못했지만.

10. ‘송곳'(2015)이랑 ‘드라마 스페셜-아빠를 소개합니다'(2014)에 나오기도 했다.
문지윤 : 맞다. 두 작품을 했을 때도 덩치가 좀 있었다.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웃음) 그 작품들을 했을 땐 90키로 대였고, 지금은 107키로다. 요즘 인터뷰를 하면서 살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계속 똑같은 얘기를 전파하고 다니는 느낌이라, 잘 모르겠다. 허허.

10. 그래서 일부러 처음부터 묻진 않았다.
문지윤 : 그러니깐. (웃음) 근데 다른 기자 분이 얘기하시던 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하더라. 기자의 질문은 대중이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거라고. 제일 핵심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는 걸 물어보는 거니 중복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하셨다.

10.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답을 하게 돼도, 기분은 썩 괜찮지 않나?
문지윤 : 아유~ 너무 좋다. 요새는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진 찍어달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상철 선배다!” 이래 주시고. “밉상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싫어질 정도에요~” 까지는 들어봤는데, ‘삐’ 처리 될 정도의 말은 못 들었다.

10. 아무래도 그 신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다. 고추장과 참치 캔에 밥을 비벼먹으면서도 수화기 너머의 엄마에겐 참치 회를 먹고 있다고 말하던 장면. 꽤 뭉클했다.
문지윤 : 하하, 그런가? 그것과 더불어 그런 느낌의 신들이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주된 내용은 진상을 부리는 거다. (웃음) 아직도 진상 부릴 것들이 좀 남아 있어서 기대해 주셔도 좋을 거 같다. 만약에 이렇게 하다가 빠지는 인물이었으면 진상을 보다가 만 느낌일 텐데, 끝까지 진상을 부리니 심심하진 않으실 거다. 짜증내면서 보게 되실 거다.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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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만약 실제로 상철 같은 선배를 만나면… (웃음) 다행히 학생 시절에 그런 선배를 만나본 경험은 없었거든.
문지윤 : 허허. 그런데 보니깐, 상철이 같은 선배를 만나서 ‘팀플(팀플레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많단다. 상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무임승차 하는 경우도 있고. 보통 선배가 그러거나, 남자 선배랑 같은 조가 되는 여자 후배들이 숟가락만 얹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대학생활을 꾸준히 한 사람이 아니라, 다 간접경험이다. (웃음)

10. 대학교는 다니다가 중간에 나왔나?
문지윤 : 대학이 내게 잘못한 건 없지만, 나도 잘못한 건 없었다. 그냥 안 맞아서, 여기서 배울 건 더 없는 것 같다 해서 나왔다.

10. 그럼, 어떤 걸 하고 싶었던 건가?
문지윤 : 그냥… 난 데뷔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였다.

10. ‘로망스'(2002)에서 관우(김재원) 동생 장비 역할로 데뷔했지.
문지윤 : 데뷔를 먼저 하고, 그 뒤, 한 4~5년 뒤에 학교에 들어간 거였다. 만약에 연극영화과였다면 계속 다녔을 지도 모르지만, 미디어영상학부라 연기 쪽에 집중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거기에서 과가 나뉘는 거였는데, 전공 수업은 안 듣고 교양 수업으로 다른 과의 전공 수업에 들어가고 그랬다. 그러니 그 수업엔 나 혼자만 다른 과 사람. (웃음) 교수님이 따로 불러서 “왜 이걸 들었니?”라며 물으시며 의아해 하셨다. “심리적으로 공부를 좀 해보고 싶어서요” 했지. 책이 엄청 두꺼웠다. ‘인간행동조직연구론’이었나? 어려워 보이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배웠다. 그런 건 재미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등록금도 아까웠고, 그때는 그 돈으로 차라리 좋은 영화를 보고 영감을 얻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 책은 아직도 갖고 있긴 하다. 그 뒤론 보지도 않았지만. (웃음)

10. 실제로 얘기하다 보니, 상철과는 다른 느낌이다. 진중하다.
문지윤 : 그렇기도 한데, 상철이 같은 느낌도 많이 갖고 있다.

10. 예를 들면?
문지윤 : 얄궂은 표정이나 개구쟁이 같은 모습. 밝은 것도 그렇고. 원래 고등학교 때까지는 까불이였다. 특히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진짜 말썽꾸러기였다. 사고뭉치까지는 아닌데, 약간 흥이 넘치고 통통 튀는 그런 친구들 있지 않나. 내가 그랬다.

10. 끼가 많았구나.
문지윤 : 초등학교 때 수련회에 가면 춤도 잘 못 추면서 앞에 나가서 춤 추고 싶어하고, 노래 부르고 싶어하고 그랬다. 끼는 없었는데 열정만 가득했다. 그런 모습들이 있었는데 데뷔하고 나서는 내 인생과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고뇌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진지한 쪽으로 가게 된 거 같다.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 “너 왜 이렇게 감춰져 있냐”고 할 정도였다. 어렸을 때 보고 지금 딱 보게 된 거니깐, 그 과정은 못 본 거지 않나. 그러니 극과 극을 보게 된 거다. “왜 이렇게 진지해졌냐” “너의 모습은 이거 아니지 않냐” 그런데 또 그런 (장난기 많은) 역할을 맡으면, “그래 이게 네 모습이지” 이런다.
사진. 구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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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다양한 면을 갖고 있나 보다.
문지윤 : 내가 생각하기에, 연기할 때 캐릭터를 백 프로 완벽하게 창조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 모습에서 비롯돼서 파생되는 거지. 신처럼 창조해 낸다면 그 사람은 정말 전 세계를 통틀어 연기 ‘짱’인 거다. 내면에 갖고 있는 것들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나도 까불까불한 모습이 있고, 누군가를 약 올리거나 하는 면도 있다. 진지한 모습도 있고. 굳이 따지자면 진지함이 7, 까부는 게 3. 7대 3이다 보니 나를 볼 때 진지한 모습을 주로 보는 사람이 많겠지. 3을 보는 사람은 드물 거고.

10. 왜 진지해지게 되었는지, 말해줄 수 있나.
문지윤 : 중3 때 연기가 하고 싶어서 거기에만 매달렸다. 처음에는 겉멋이 들어 도전해 본거였는데… 여의도에 있는 학원에 다녔다. MTM 말고 조그마한 곳. 학원비가 쌌다. 잘 사는 집이 아니었기에 어머니가 “네가 하고 싶다면 학원비만 지원해줄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하시며 끊어주셨거든. 한 2년 정도 다녔던 거 같다. 학원에 딱 들어갔는데, 잘생긴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오디션도 보고, 촬영장도 현장 학습처럼 가보곤 했는데, 너무 잘생긴 사람들이 많아서 그때 바로 ‘연기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서른을 바라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10. 그 나이에 서른을 생각했다면, 길게 봤다.
문지윤 : 그런데 막상 서른이 되니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욕심이기도 했겠지만, 사실, 더 잘 돼있을 줄 알았다. 아, 그렇다면 마흔을 바라봐야겠다, 했다. 지금 서른 넷(빠른 84년생)이니깐, 6년 남았지. 마흔에는 또, 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기 때문에, 쉰을 바라볼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거지만. 그러면서 진지해진 게 아닌가 싶다. 배우라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어린 나이에 일찍 데뷔해서 어른들과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도 같다.

10. 어린 나이에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드는데.
문지윤 : 나이가 어리다 보니 후배가 없었다. 후배라고 해도 아역 한 두 명 정도. 그런데 아역들은 전 회를 같이 가는 게 아니고 분량이 딱 있어서 자주 만날 수가 없지 않나. 선배들, 연출자, 제작진, 스태프 분들 다 형, 누나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은 억압된 분위기를 많이 경험했다.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그런데 ‘치인트’ 같은 경우는 내가 서른 네 살에 하게 된 작품이라, 후배들도 여섯 일곱 명 정도 있다. 어떤 친구는 나랑 띠 동갑이다. 상철이가 짝사랑하는 아영(윤예주)이는 스물 둘이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쥐띠지만 83년생이라고 치면 돼지 띠니깐. (김)고은 씨도 나랑 일곱 여덟 살 정도 차이 난다. 처음엔 후배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장난도 쳐주고 그래야 하나, 내가 겪었던 선배님들처럼 무게를 잡고 있어야 하나. 지나고 나서 후배들에게 얘기를 들었는데 “오빠, 처음에 진짜 무서웠잖아요~” 이러더라. 그런데 막상 촬영 들어가서 대화해 보니 좀 허술한 사람이란 걸 알고는 친근감 있게 대해줬다. 애드립 치면 애드립 다 받아주고, 농담하면 농담도 다 받아주고. 내가 좀 진지한 모습으로 있으면 “형님~오늘 컨디션 안 좋으세요~?” 이렇게 물어봐 주기도 하고. 그러면 난 “원래 그렇게 잘 웃는 스타일은 아니야” 라고 하지. (웃음)

10. 지금의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다. 진지하게 감정 속으로 파고들거나 하는.
문지윤 : 지금까지는 푸근하고 아저씨 같은 역할을 많이 했는데, 이젠 남자다운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느와르 장르의 남자 이야기, 남자들의 우정과 어떤 살벌함, 그들 사이의 유머가 담긴 작품. 그러려면 다이어트부터 좀 해야겠지.

10.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문지윤 : 꼭 해보고 싶다. 욕도 잘 안 하는데, 한 번 하면 살벌하게 하거든. 영화 속에서 한석규 선배님이 욕하는 것처럼 ‘쌍욕’을 친구들한테 맛깔 나게 구사한다. 친구들한테만, 재미로. (웃음) 친구들이 “너는 영화에서 욕 시원~하게 하는 거 한 번 해야 돼. 그러면 뜬다!” 그러더라. “야, 그러려면 나이도 좀 더 먹어야 하고, 다이어트도 해야 돼” 이랬다.

10. 캐릭터적으로 보면 어떤 인물 정도일까.
문지윤 : 굳이 꼽자면? (웃음) 따라 하고 싶거나 한 건 아니고, 매력 있는 건 ‘신세계’에서의 황정민 선배님 같은 역할. 재미있으셨잖아. 그러면서도 남자답고, 거친 느낌이 확 묻어났고.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살짝 어린 거 같다. 연륜이 있어야 하잖아.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도 더 경험해 봐야 할 테고. 아무튼 그런 장르에 한 번 참여해 보고 싶다. 남자들끼리 ‘으샤으샤’하면서. 주연, 조연, 이런 것 상관없이 캐릭터나 이 느낌이다, 싶으면 달려들고 싶다.

10. 그나저나, ‘치인트’의 이윤정 감독은 무슨 얘기를 제일 많이 해주던가.
문지윤 : 감독님이 나를 좀 많이 풀어주셨다. 문지윤이라는 사람이 상철이라는 인물을 잘 연기할 수 있게끔 유도해주셨다. 힌트를 주시면 내가 그걸 참고해서 ‘탁’ 꾸며서 치고 나갔다.

10. 첫만남은 기억 나나.
문지윤 : 원래 감독님과 인연이 좀 있다. ‘현정아 사랑해'(2002) 때의 조감독님이셨다. 그때는 안판석 감독님이 나를 캐스팅하셨다. 그러다가 2005년에 이윤정 감독님의 ‘태릉선수촌’ 미팅을 갔는데 떨어진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치인트’ 오디션 때 다시 뵈었다. “지윤아, 나 기억하지?” 이러시더라.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했고, 그날 이후 원작 웹툰을 찾아 봤다. 김상철 위주로 본 다음에 다시 찾아 뵈었는데 대사 첫마디 딱 들으시곤 웃으시더라. ‘아, 이거 된 거 같다’ 느꼈다. 감독님과 정확하게 얘기를 나눠 본 건 아니지만, 이 역할은 지윤이가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슬럼프였던 시기에 선택 받은 것에 정말 감사했다. 감독님도 내가 상철이를 연기해주는 것에 대해 만족하지 않으실까 싶기도 하고.

10. 슬럼프는… 언제부터였나.
문지윤 : 20대 후반부터 30 초반까지 힘들었다. 이걸 내가 계속 해야 하나, 혼란이 오더라.

10. 연기를 하는 것에 대해?
문지윤 : 조급함 없이, 그런 생각 한 번 없이 달려왔는데, 그런 시기가 왔다. 여기서 이렇게 나이만 먹으면 그냥 그런 배우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닌가. 배우를 시작했으면 작품도 딱딱 남기고 그래야 하는데, 무라도 썰고 그만두든지 해야 하는데, 아… 좀 막막했다. 어르신들 말로,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딱히 또 연기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알바를 해 볼까 해도, ‘내가 알바를 어떻게 하지?’ ‘백 명 중에 한 명이라도 알아보면, 여기서 왜 알바 하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취직을 해볼까 싶어도, 연기만 해왔는데, 연기 공부만 하면서 삶에서 얻어지는 기분, 감정들만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고 표현하려 했는데 이게 되는 건가, 했다. 결국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더라. 그러면서 소속사도 옮겼고, 그 과정 중에 ‘아빠를 소개합니다’도 하고 ‘송곳’도 하고, ‘치인트’도 딱 만났다.

2월 10일부터 21일까지 문지윤이 그린 작품 중 15점이 전시된다
2월 10일부터 21일까지 문지윤이 그린 작품 중 15점이 전시된다
10. 30대를 맞이하는 게, 쉽지 않지.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이 시기의 일인가?
문지윤 : 그 시기가 지나서이긴 한데, 너무 무료했다. 일은 했지만 취미라고 할 만한 건 운동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친구들을 만나서 커피숍에서 수다 떠는 정도였다. 그때 나랑 친한 조달환 형이 그림 그리는 걸 추천해줬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재미있더라. 집중도 잘 되고. 담배를 좀 피우는데 그리는 동안에는 담배도 안 피웠다. 끊었다는 건 아니고. (웃음) 매직으로 짧게는 1시간, 길게는 4시간 정도 그리는데 내 생각과 마음이 그림에 나온다. 그러다 보니 점점 패턴이 생기고, 나만 쓰는 기법이나 색감이 나오더라. 꾸준히 1년 정도 그렸다. 그린 그림은 주변사람들에게 선물하는데, 그럴 때면 받는 상대의 얼굴에 미소가 사악 번진다. 그러면 또 그거에 힘을 얻어서 그리고, 또 주고. 그러다가 미디어아트를 하는 친한 누나가 이번에 하는 전시회에 내 작품도 걸었으면 좋겠다고 해서 참여하는 기회도 생겼다.

10. 아, ‘부재하는 현전을 상기시키는 도구’ 전시회. 말이 어려워서 써왔다. (웃음)
문지윤 : 나도 처음에 이게 뭔 뜻이야, 이랬다. 허허. 내 그림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했는데 누나가 풀어서 써 놓은 걸 읽어 보니 이해가 되더라.

10. 아무래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문지윤 : 좋은 사람들이 곳곳에 조금씩 있다. 좋은 사람들이 적은 분야에 많은 것 보다, 수는 적지만 많은 분야에 조금씩 분포되어 있는 게, 살아가는 데에 더 효과적이지 않나. (웃음) 인복은 타고난 것 같기도 하고. 친구들이 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해서 어머니가 항상 “너만 잘하면 된다. 뒤쳐지지 말아라”라고 하셨다. 친구들이랑 만나려면 너도 거기에 맞추라고. 하하. 애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회사에 취직하고, 조교수도 되고 하는데, 너도 연기를 시작했으면 연기자로 성공해라, 이렇게 말이다. 쉴 때는 잔소리도 엄청 들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니” “너 어떡하니”. (웃음) 서른이 넘어서도 말이다.

10. 그럴 때면 뭐라고 대답했나.
문지윤 : “있어 봐, 있어 봐, 내가 다 알아서 해” 그러면서 그림 그렸다. (웃음) 어머니는 그 모습이 한심해 보이셨나 봐. 그런데 지금은 “그림 그리니~” 이러시며 물 한 잔 갖다 주신다. 이제는 그림도 조금 발전을 해서인지 인정을 해주시더라. 전시회도 오실 거다. 사실, 전시회를 열 만큼의 실력은 아닌데… 기획하는 누나를 잘 만나서 하게 된 거지. 나만 잘하면 될 거 같다.
사진. 구혜정
사진. 구혜정
10. 40대를 바라 보고 있다고 했는데, 40대가 되기까지 어떻게 가고 싶은가.
문지윤 : 다양한 작품을 필모그래피에 올리고 싶다. 이왕이면 사랑 받는 작품을 하면 좋겠지. 어떤 배우가 난 내 갈 길만 갈 거야, 이러겠나. 그건 좀 어리석은 일 아닌가. 내가 하는 작품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고, 대중의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연기자는 보여지는 직업인데, 당연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살아야지. 그러려면 그런 작품을 해야 하는 거고, 그에 걸맞은 행동도 해야 하는 거고. 기대감을 배신했을 때 대중은 바로 돌아설 테니깐, 무섭지.

10. 대중의 기대를 배반하는 게, 두렵나.
문지윤 : 사랑 받고 있다가 내가 실수를 해봐라. 법적으로.

10. 법적으로? (웃음)
문지윤 : 바로 돌아서는 거다.

10. 바른 생활 사나이인가?
문지윤 : 그렇다. 운전할 때 신호도 다 지키고, 뒤에 차가 없어도 깜빡이는 항상 켠다. 거의 이런 수준이다. 불법 유턴은 해본 적도 없다.

10. 그럼 뭐, 걱정할 거 없지 않나.
문지윤 : 술도 좋아하지 않으니깐. 마시긴 하지만 자주 먹는 스타일은 아니니 음주 운전은 꿈에도 생각 안 하고.

10. 그래서 스트레스를 푸는 게 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문지윤 : 그래서, 그림이…! 그림으로 많이 표현한 것 같다. 그림 그린 게 마음에 안 들면 도자기 깨듯이 다 찢는다. 아니면 다 그려놓고 마지막에 사인을 안 한다든가.

10. 어라, 이건 완전 작가인데?
문지윤 : 이제, 어설픈 작가가 된 거지. 펜을 들고 30분 동안 가만히 있었던 적도 있다. 뭘 그리지, 싶은데 그릴 게 생각이 안 나더라. 그리고는 싶은데 손이 안 떨어지는 그런 거. 뭐라도 그리면 되는데 이게 안 돼서, 아 오늘은 그리면 안 되겠다, 하고 잔 적도 있다.

10. 그동안 예술가의 삶을 살았네.
문지윤 : 마가 뜨는 시점에 그랬다. (웃음) 그 시기가 또 이런 꽃을 피워낼 줄은 몰랐지. 전시회는 2월 10일부터 21일까지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와 있는 그림들은 조그만해서 잘 안 와 닿는데 크게 전시된 걸 보면 좋으실 거 같다.

10. 올해, ‘치인트’부터 전시회까지, 시작이 좋다.
문지윤 : 그러게 말이다. 이제 좀 잘 되려고 그동안 그랬었나 싶고. 더 열심히 해야지. 모든 것들이 다 조화롭게 맞아 떨어져서 다 잘 됐으면 좋겠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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