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지
김연지
김연지

[텐아시아=박수정 기자] ‘씨야 김연지’.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이 표현되던 시절이 있었다. 2006년 ‘여인의 향기’로 데뷔해 ‘미친 사랑의 노래’, ‘구두’, ‘사랑의 인사’, ‘결혼할까요’, ‘슬픈 발걸음’ 등을 발표하며 국내 최고의 보컬 걸그룹으로 떠올랐던 걸그룹 씨야다. 메인보컬 김연지의 가창력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 깨끗한 발성과 시원한 고음까지. 믿고 듣는 씨야의 음악에는 김연지가 크게 자리해 있었다. 이후 씨야는 멤버 남규리의 탈퇴와 몇 차례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2011년 남규리도 함께한 굿바이 앨범 ‘씨 유 어게인(See You Again)’을 끝으로 해체를 결정했다.

씨야 해체 이후 4년이 흘렀다. 김연지가 돌아왔다. 김연지는 지난 4월 ‘잊었니’와 5월 ‘어쩌다’, 드라마 ‘여왕의 꽃’ OST ‘우리 사랑인가요’까지 연이어 발표하며 본격 솔로 활동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JTBC ‘끝까지 산다’와 KBS2 ‘불후의 명곡’으로 녹슬지 않은 가창력도 뽐냈다. 김연지는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김연지를 그리워하고 있었고, 김연지의 노래를 원하고 있었다. 믿고 듣는 가수의 귀환이다.

다시 돌아온 김연지는 더 예뻐진 외모만큼, 더 성숙해진 목소리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20대 초반, 신인상과 음악방송 1위를 휩쓸던 시기는 지나갔다. 그러나 김연지의 진짜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노래 인생 제 2막을 시작하는 김연지의 도전을 뜨겁게 응원하고 싶다.

Q. 4년의 공백이 있었다. 무엇을 하며 지냈나?
김연지 : 일단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을 하고 돌아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다른 장르들도 접해보면서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음악적으로도 좀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았다. 음악적인 공부나 교류도 좋았지만, 다른 교양 과목 수강이나 캠퍼스 생활, 친구들과 지내는 경험들이 또 바탕이 되서 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Q. 씨야로 전성기를 보낸 뒤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갔다.
김연지 : 처음에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많이 하고, 내가 잘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더 재미있게 다니고, 친구들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예쁘게 봐주셨다. 친구들이 정말 많이 도와주고, 내가 모르는 것이 있어서 조그만 다가가면 정말 오픈 마인드로 맞아줬다. 공연 같은 것을 할 때마다 참여를 했는데 리얼 악기들과 같이 맞춰 보는 게 재미있었다. 항상 MR 반주에만 맞춰서 노래했었는데 리얼로 하다보니 편곡도 자유롭고 즉석으로 하고 싶은대로 악기를 쳐주니 정말 좋았다.

Q. 올해 ‘잊었니’, ‘어쩌다’, ‘여왕의 꽃’ OST까지 노래를 계속 들려주고 있다. 오랜만에 활발한 활동이다.
김연지 : 준비하면서도 몇 곡을 연달아서 내야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어쩌다’가 나오게 됐다. 요즘에 드라마 OST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예전에 OST에 참여하려 했다가 못하게 돼 아쉬웠던 드라마들도 있어서 지금이라도 많이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Q. 컴백을 결정지은 올해, 드디어 돌아올 준비가 됐다고 느낀 것인가?
김연지 : 보통 사람의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데 난 지금 얼추 비슷하게 가고 있다. 처음부터 오랜 공백을 생각한 건 아니고, 학교 졸업 이후로 생각하고 있었다. 앞으로 공백은 안 가지도록 할 것이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준비 기간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4년 같은 공백은 없을 것이다.

Q. ‘잊었니’와 ‘어쩌다’까지 연달아 두 개의 싱글을 발표했는데 서로 다른 색깔이다.
김연지 : ‘잊었니’ 때는 기존 내가 갖고 있던 색깔과 많이 달라서 도전 아닌 도전이었다.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여주셨는지 잘을 모르겠다. 예능을 통해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어쩌다’도 많이 들어주시는 것 같다.

Q. ‘어쩌다’는 씨야 시절 김연지의 장점을 많은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반면, ‘잊었니’는 솔로 김연지로서 본격적인 첫 곡인데 장점의 부각이 아닌 일종의 변신이었다.
김연지 : 맞다. ‘어쩌다’는 나의 파워풀한 보컬의 장점인 부분을 제일 부각시킬 수 있는 곡이라 생각했다. ‘잊었니’는 ‘연지가 이런 느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를 담았다. 나를 떠올렸을 때 항상 드는 생각이 아닌 조금 다른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첫 곡이다보니 심혈을 기울였다.

Q. ‘잊었니’ 활동하면서 오랜만에 음악방송 무대에도 섰다. 안무도 있었다. 어색하진 않았나?
김연지 : 안무라기 보다 무대 위를 그냥 돌아다녔을 뿐이다. 하하. 살짝 긴장도 되고, 기분이 좋았다. 이제 본업으로 돌아왔구나!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었다. 방송에 오랜만에 서는데 실수하지는 않을까. 조금씩 긴장하면서 하니까 잘 마친 것 같다.

Q. ‘어쩌다’는 김도훈 작곡가와 의기투합했다. 씨야 시절 전성기를 함께 보낸 작곡가와 다시 만났다.
김연지 : 도훈 오빠가 심혈을 기울여 써주셨다. 씨야 1집 때부터 함께 했는데 도훈 오빠와 꼭 다시 하고 싶었다. 씨야 때 함께 작업했던 다른 작곡가들과도 다 작업해보고 싶다. 예쁘고 좋은 노래를 주셔서 감사하다.

Q. 김도훈 작곡가와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어땠나?
김연지 : 왕래는 줄곧 있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작곡가다. 도훈 오빠가 어려운 친구들도 많이 도와주시려고 하고, 내가 상의도 많이 드렸다. 이번에 다른 색깔의 곡들도 쓰려고 했다가 아무래도 나에게는 이런 곡이 맞는 거 같다며 ‘어쩌다’를 만들었다.

김연지
김연지
김연지

Q. JTBC ‘끝까지 간다’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시간 검색어에 계속 올랐다.
김연지 :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을 못했다. 너무 기쁘면서도 얼떨떨한 느낌이었다. 아직까지도 몸소 체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Q. 소찬휘 ‘티얼스(Tears)’를 부를 때 김연지의 모습은 ‘내가 돌아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역시 파워풀한 보컬이 일품이었다.
김연지 : 최근에 인터뷰를 다니면서 각오 한 마디를 하라고 할 때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라는 멘트를 했다. 하하. ‘티얼스’ 같은 경우는 평소 많이 불러본 장르가 아니었다. 다들 해보라고 하면서 도와주시고, 열심히 불렀는데 좋은 반응이었다.

Q. 발라드가 아닌 어떤 장르에 또 관심이 있나?
김연지 : 신나는 것도 해보고 싶다. 난 아델의 ‘롤링인더딥(Rolling in the deep)’ 느낌도 좋아하고, 힘 있는 것을 불렀을 때 많이 좋아해주신다. 그런 부분들을 해보고 싶다. 아예 막 지르지 않더라도 소리로 감동을 주고 싶은 게 최종목표다. 감동을 드리고 싶다.

Q. 작사나 작곡 공부도 했나?
김연지 : 작사, 작곡 공부는 많이는 아니지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배우면서 많이 느꼈다. 내가 또 컴퓨터와 많이 친하지가 않다. 하하. 피아노나 기타로 직접 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편곡을 잘하는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Q. 그 사이, 어느덧 나이 서른이 됐다. 20대와 확실히 다른가?
김연지 : 나이를 생각하고 살아오거나 그런 적이 없다. 항상 한결같고 나는 아직 어린 애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벌써 30대라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가장 커졌다. 스무 살 때는 막연하게 꿈을 바라보고 열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스무 살의 열정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것 같았다. 30대가 되니 생각 안하려고 해도 무언의 책임감이 생기더라. 아, 이제부터는 정말 좀 더 그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되는 부분이 좀 더 확실해졌다.

Q. 조금 더 진지하고 신중해진 것인가?
김연지 : 예전에도 진지하고 신중했는데 요즘에는 유쾌하고 재미있고 통쾌하고 이런 게 좋다. 진중한 모습만 있으면 재미없잖아요. 하루하루 재미있게 살고, 그게 너무 좋다.

김연지
김연지
김연지

Q. 최근 인터뷰 중 씨야를 첫사랑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김연지 : 첫사랑이라는 것은 내가 뭣 모르고 시작해서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픈 건지 힘든 건지 행복한 건지 모른다. 좋다가도 뭔지 모르겠고 모든 걸 다 경험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아~ 이런 거구나’ 알게 된다. 씨야가 정말 큰 기쁨도 안겨주고, 눈물도 흘리고 힘들고 잊을 수없는 추억이 돼버렸다. 잊을 수도 없고, 지을 수도 없고, 씨야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다. 성장할 수 있었다.

Q. 씨야 시절 배운 것 중 이것만으로 평생 안고 가고 싶은 것과 이것만은 놓고 가자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김연지 : 배운 점은 무대에 올라가면 거짓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 프로다운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대에 올라갔을 때 확실하게 해야 한다. 프로감성이 무엇인지 이 직업이 어떤 걸 공부하고 내가 갖춰야 하는지 배우게 해줬다. 놓고 싶은 것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지내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마냥 좋은 게 아니다. 힘든 것도 있다. 그것을 묻어둘 수 있는 강인함을 키우고 싶다.

Q.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김연지 : 수다로 푼다. 예전에는 남을 욕하는 것도 싫고, 뭐라고 하는 것도 싫고, 꽁꽁 앓고 있자니 병도 됐다. 그냥 놀러가고 싶으면 놀러가고, 청소하고 싶으면 청소하고, 맛있는 것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훅 털어버리려고 노력한다. 며칠 전에 법률 스님의 어떤 글귀를 봤는데 ‘결국에는 내가 화를 내고 내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건 내 안의 욕심이다’ 같은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됐다. 왜 다 내 욕심일까. 이제는 최대한 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

Q. 힘들 때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은 무엇인가?
김연지 : 사람으로 인해 상처도 받지만, 결국엔 사람으로 치유를 받는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옆에 있어주는 소수의 사람이 정말 고마운데 그러면서 공허해한 적이 많기도 했다. 정말 어려울 때 있어주는 사람이 진짜 내 사람이다.

Q. 4년의 공백에 초조하거나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나?
김연지 : 당연히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불안정했다. 새장에 갇혀 있다가 새가 자유로워지는데 정착점이 없다. 너무 좋아서 날아가다 보니까 ‘여긴 어디야’가 됐다. ‘자유=불안’이구나..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Q. 김연지로서 자신감은 무엇인가?
김연지 :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노래로서 인정을 받았었다. 그거 하나다. 항상 긍정적으로 좋은 마음으로 살려고 한다. 부정적인 게 오면 스스로 채찍질을 많이 하는 편이다. 공허함이 올 때 자기비하를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그것을 벗어나니까 행복하다.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좋은날이 있고, 안 좋은 날이 있다. 안 좋은 날이 올 때 잘 방어할 수 있도록 강해지는 단계다.

김연지
김연지
김연지

Q. 올해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나?
김연지 : ‘어쩌다’는 방송에서 많이 불러드리지 못하니 음원으로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음원도 한두 개 더 발표하고, 가을 쯤 미니앨범으로 돌아올 것이다. 연말에 콘서트까지 하는 것이 계획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Q. 김연지로서 꿈의 무대는 무엇인가?
김연지 : 정말 그냥 소수의 소극장도 해보고 싶고, 정말 큰 공연장에서도 해보는 게 목표다. 어딘가 해외에 가서 조그마한 라이브 카페에 아무렇지 않게 가서 노래로 통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지만, 내가 얼마만큼 할 수 있을까 재미있고 멋있을 것 같다. 프리하게 음악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Q. ‘씨야 출신’이 아닌 어떤 수식어나 평가를 얻고 싶나?
김연지 : 지금처럼 믿고 듣는 목소리. 믿어 주는 것만큼 큰 것은 없다. ‘김연지니까 당연히 들어야지’라는 말.. ‘한 번 들어볼까’가 아니라 ‘연지니까’. 그만큼 인정받는 가수가 되고 싶다.

Q. 기다려준 팬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김연지 : 신기했던 게 팬들이 어딘가에 다들 숨어있더라. 한 명씩 나오셨다. 하하. 그럴 때 정말 고맙다. 내 나이 또래나 친구들은 지금 나이가 들었지만 씨야 때 기억이 난다며 너무너무 좋아했었다고 힘이 되고 에너지가 된다고 하더라. 정말 감사하다.

박수정 기자 soverus@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