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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대의 마지막 해를 연 김영광의 얼굴에는 소년과 남자, 두 가지 정체성이 한꺼번에 묻어 있다. 씨익 입꼬리가 올라가는 기분 좋은 웃음에는 천진난만함이, 모든 질문에 가감없는 솔직함으로 답을 들려줄 때는 호탕함이 읽힌다. 겉으로는 그저 유쾌 발랄해 보이지만 “실은 내가 가장 어려운 남자”라고 단언하는 그에게 가을과 겨울을 함께한 SBS ‘피노키오’는 썩 만족스러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연기적인 표현과 캐릭터의 깊이를 좀더 전달하고 싶었던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했고, 그래서 후회는 없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일찍 프로의 길에 뛰어들어, 연기자로서는 한 걸음씩 성장중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Q. SBS ‘피노키오’로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처음으로 주연 4인방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김영광: 쉽지 않았던 과정이었는데 후련한 면도 있고, 실감이 잘 안 난다. 지금까지 했던 어떤 드라마보다 내가 느끼기에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어려웠던 작품이기도 했고.(웃음)

Q. 작품이 끝나면 ‘이건 꼭 해야지’하는 게 있었을 것 같은데.
김영광: 촬영하느라 운동을 못하고 쉴 때는 누워있고 야식 먹고 하다 보니 살이 찌더라. 배가 자꾸 나오고 다른 부분은 말라갔다. 자랑하던 내 어깨도 좁아져버렸다. 쉬면서 운동을 좀 해야할 것 같다.

Q. 극의 마지막 부분 서범조(김영광)가 최인하(박신혜)를 안아주면서 이별하는 장면이 안타깝기도 했고, 인상적이었다.
김영광: 나도 안타까웠다.(웃음) 범조는 기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기보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인하를 만나기 위해 기자가 된 인물이었는데 로맨스가 이뤄지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나라면 그렇게 안 했을 거니까. 13년 동안 인하의 문자를 보고, 마침내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려고 하는 설렘이나 훔친 핸드폰에 대한 마무리가 어떻게 될까란 두근두근함이 있었고, 좀더 귀엽게 표현하고 싶었는데 생각만큼은 잘 안 됐던 것 같다.

Q. 아, 실제 김영광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김영광: 내가 범조였다면 절대로 그렇게 접근하지 않는다.(웃음) 좀더 직설적으로 다가갈거다. 주변에서 계속 맴돌고, 만나려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았을 거다.

Q. 서범조라는 인물은 극 속에서 가장 변화가 많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김영광 : 어머니 그늘에서만 살다가 세상에 처음 나온 자극을 느끼는 인물을 생각했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말하는데 애들이 보기에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다거나 하는.(웃음) 사랑스럽고 귀여운 면을 살리고 싶었다. 사실 100% 내가 생각한 대로는 안 됐다. 내가 준비된 것들을 하기에는 약간의 의견차가 있어서 촬영에 들어가면서 이미지 등 여러 부분을 재조립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좀 헤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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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려웠나

김영광: 초반부 내 뜻대로 안 되는 게 가장 안타까웠다. 캐릭터에 대해 잘 보여주고 싶었고, 내 연기에 대해 사람들에게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는데 만족할 만큼 효과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좋은 드라마의 두 번째 인물로 러브라인을 잘 보여주고 싶은 기대감도 있었는데 그런 게 효과적으로 보여지지 못한 건 안타깝다. 그래도 촬영장에서 감독님이 배우들을 많이 믿어주셨다. 어떤 장면을 연기했을 때 ‘이런 게 어떻겠냐’고 가이드를 주시는 부분 외에는 배우들이 잘 놀 수 있도록 해 주셨다.

Q. 비슷한 나이 또래 연기자들이 모여 그런지 촬영장에서 너무 떠들다가 제작진에게 혼날 정도로 배우들끼리 사이가 좋았다고 들었다.
김영광: 이번 작품하면서 종석이, 신혜 등 좋은 동생들을 만난 것도 큰 수확이다. 작품 자체가 20대들의 열정을 담고 있어서 촬영장 분위기도 더 생생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종석이가 와서 애교를 부린다거나, 신혜는 남자아이 못지 않은 털털함과 유쾌한 모습이라 ‘아 얘가 성격이 이렇게 좋구나’란 걸 새삼 깨달았다. 원래 끝나고 넷이 같이 여행도 계획했는데 밀린 스케줄을 소화하다보니 혼자 다녀왔다.

Q. 이번 작품에선 공교롭게도 가장 맏형이기도 했는데 촬영장에서 김영광은 어떤 역할을 맡았나
김영광: 난 주로 많이 듣는 편이다. 서로 얘기를 많이 하면서 같이 하는 동생들의 힘든 부분도 알게 되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Q.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타입인가보다
김영광: 꼭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있으면 애들이 다가와서 이런 저런 얘기를 쏟아내곤 하더라. 그냥 와서 얘길 하니, 같이 맞장구쳐주고, 그러다보니 나중엔 애들이 내 기분도 많이 살펴주고 챙겨줬다.

Q. 사려 깊은 면모가 느껴진다.
김영광: 스스로를 볼 때는 고민 많고, 생각도 많이 하는 편인데, 행동할 때는 그런 과정없이 과감하게 하곤 한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일 때가 더 많다. 실제로 한번 뭔가를 하기 시작하면 하루종일 계속해서 한다.

Q. 최근에는 무엇에 꽂혀있나?
김영광: ‘펀치’의 김래원 선배가 멋있다는 생각?(웃음) 완벽하게 준비한 대로 캐릭터가 나온 것 같다. 연기할 때의 느낌이 정말 좋다. 아마 그런 캐릭터를 하고 싶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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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음, 요즘은 ‘수컷다운 느낌’이 점점 좋아지나보다.

김영광: 나도 느와르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었다. ‘내 나이대에 할 수 있는 건 없는 걸까?’란 생각도 했고. 드라마 속에서 싸움을 해도 멋지게 킥을 날리는 장면이 아니라 그냥 되는 대로 싸우기만 해 봐서(웃음) 멋있는 남자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Q. 극중에서 어머니(김해숙)와의 애틋함도 많이 부각됐다.
김영광: 초반부에 마마보이처럼 비춰진 부분이 많아 뒤로 가면서 상반된 느낌을 줬던 것 같다. 실제로 집에선 무뚝뚝한 아들인데….(웃음)

Q. 촬영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좀 났겠다.
김영광: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독립해 혼자 산 지 벌써 9년째다. 어머니께 선물이나 용돈은 많이 드리지만 살갑지는 못하다. 그런데 요즘 부쩍 집밥이 그립더라. 특별한 게 아닌 엄마가 해 준 정이 담긴 밥, 찌개, 김치같은 음식이 간절해진다.

Q. 요즘 좀 외로움을 타나 보다.
김영광: 원래 안 그랬는데 요즘 들어 외롭다. 집에 혼자 있을 땐 혼잣말도 많이 한다. TV 보다 광고가 나오면 “뭐라고?”하고 대꾸하기도 하고.(웃음) 빨리 애완 동물을 키워야지….

Q. 쉴 때도 밖에서 돌아다닌다든지,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진 않나 보다
김영광: 안 놀았다고는 얘기 못하겠는데, 안 논지는 오래 됐다(웃음) 좀더 어릴 때는 명동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했고, 충무로에서 혼자 영화 세 편까지 본 적도 있었고, 되게 많이 걸어다녔다. 그저 걸어다니면서도 신나했었다. 날씨가 좋으면 내가 기분이 좋고, 사람들이 많으면 활기차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직업적으로 보여지는 위치에 있다보니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는 ‘나와 너’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길거리는 편하게 다니곤 한다. 일이 많아 걸어다닐 시간이 없어 그렇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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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삶에 있어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연기를 할 때도 그런가

김영광: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가 좋다. 예를 들면 tvN ‘아홉수 소년’ 속 인물 같은? 겉보기에는 무기력한데 할말 다 하는 캐릭터가 좋다. 실제로 삶에서는 굳이 힘줄 필요도 없고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도 되는 부분이 많은데 사실 드라마에서는 극적으로 표현이 되곤 한다. 나는 잔잔한 것도 좋아하고, 그걸 더 세분화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안 하는 듯 하나 다 느껴지는 감정을 결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느낌이 좀더 인간적이란 생각이다.

Q. 그런 연기관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김영광: 감독님들이 조금씩 다 나를 성장시켜 주셨다. 예를 들어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김윤철 감독님은 성숙하지 못했던 연기를 성숙하게 만들어주신 분이다. 배우들의 장점이나 단점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고 이해하게 해 주셨다. 때론 대본을 들고 감독님과 싸우기도 했는데 서로 당당하게 묻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어느 날 술을 마시다 당시 완전히 신인이었던 성준과 나를 어떻게 캐스팅할 생각을 하셨냐고 물었더니 ‘난 그냥 봤을 때 멋있는 사람이 좋아’라고 하시더라. 감동받았다.

Q. 얘기를 듣다 보니 내면에 자유로운 상상력이 많아 보인다.
김영광: 만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섬세하게 공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요즘에는 정말 여러 작품,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려드리고 싶은데 대중들이 아직까지는 나에 대해 다 아시는 것 같진 않다.(웃음) 그냥 밝은 애? 정도의 느낌이지 않을까(웃음)

Q. 편견일 수도 있지만, 사실 모델 출신 연기자들은 특유의 섬세하고 까다로운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김영광에게서는 솔직 발랄함이 느껴진다.
김영광: 음… 사실 내가 가장 어려운 남자다. 가장 알 수 없는 사람라고나 할까.(웃음)

Q. 이십 대의 마지막 해다.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김영광: 서른이 된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것 같다. 다만 잠시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볼 수 있다면 좋겠다. 연말이 되기 전에,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 놀이터에 가고 싶다. 요즘 들어 친구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 일하면서 생긴 추억보다는, 학창시절 친구들이랑 산에 갔던 기억 같은 게 새록새록 떠오른다.

Q. 연애는 어떤가?
김영광: 사실 만날 시간도 없고, 연애에 대해서는 잠깐 마음을 접었었다. 이성을 만나기보다는 빨리 자리를 잡고 여유로워지고 싶었다, 하고 싶은 작품을 하기 위해 발전해야겠다는 생각이 1~2년 전부터 커졌다. ‘쉬고 싶다’고 하다가도 매니저 형이 일을 안 가져오면 전화 해서 “뭐 없어?” 라고 물어보곤 한다.(웃음)

Q. 남자들 사이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나보다.
김영광: 어느 순간 챙겨야 할 동생들도 늘어나다 보니, 리더십 있는 남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많이 든다. 그러면서 나도 점점 더 형이 되어가고 어른이 되어 가겠지.

글. 장서윤 ciel@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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