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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게 좋아 다치기 전에 / 아무리 달려 봐도 결국엔 그 자리에 / 자주 니 옷을 벗겨 미안 / 당연한 것처럼 네 곁에 눕긴 싫어 / 던져봐 질러봐 느껴봐 자신을 즐겨봐 네 멋대로 / 니가 나를 존재하게 만든 신 인 줄 알았어 / 지구가 태양을 네 번 감싸 안는 동안 / 일만 하는 나와 얻지 못한 나의 고단한 지금 / 세상 밖으로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 간장콩장콩장장 equals 간 콩장장 / 난 별 넌 별 먼 별 빛나는 별 /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 시간이 지날수록 통제는 힘들어져 / 이 노래를 듣는다면 나에게로 와주오 / 조그만 가시내들이 모여서 노랠 부르면 / 넌 진정 나를 몰라주고 말았어 / 누군가 바리고 떠나간 언덕에 우린 또 이렇게 바려진 떠돌이 / 살던 대로 하던 대로 지가 하고 싶은 대로 / 너는 이미 패턴을 다 읽혔어 더 싸워봤자 아무 의미 없겠어 / 나에게 겸손함을 기대하지 마시오 / 그래서 그대는 나 홀로 흘려보냈나 / 나이 먹어서 왜 이럽니까 / 빌어먹을 침대는 왜 이리 넓적해 / 사람답게 사는 사람답게 사는 사람 /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 우린 마치 시한폭탄 같았어 / 우리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엔 / 가끔씩 나오던 참신한 가사도 안 떠올라 /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익숙한 외로움 / 그렇게 우린 변해가고 시간은 멋대로 흐르고 / 해답 없는 질문 꽃처럼 품고 한 바퀴 돌아가는 여정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네

‘텐아시아’에서는 매주 ‘요주의 10음반’을 선정해 기사를 싣고 있다. 매 기사의 제목으로 쓰인 노래 가사를 이어붙이니 위와 같다. 지난 2013년 12월 30일부터 2014년 12월 22일까지 총 33번의 기사를 통해 330장의 앨범을 소개했다. 그 중 2014년 결산과 함께 30장의 국내앨범을 골라봤다.

이소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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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의 순도 높은 록 음반. 이소라가 앨범에서 록을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며 라디오를 진행할 때 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곤 했다.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이소라가 노래하는 김바다 앨범’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이소라가 록을 했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했냐’라는 것일 진데, 이 앨범에서 이소라는 가수가 아닌 ‘이소라 밴드’의 보컬리스트인 것처럼 뚜렷한 스타일의 록을 들려주고 있다. 이전 곡들이 단순히 록 세션 위로 이소라의 목소리를 얹은 정도였다면 ‘8’은 마치 자기 색이 뚜렷한 록밴드처럼 심지가 단단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이소라 솔로앨범이 아닌 이소라(보컬)-임헌일(기타)-정재일(베이스)-이상민(드럼)-정지찬(건반)의 5인조 록밴드의 앨범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말이다. 가수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과, 밴드의 보컬리스트로써 록을 시도하는 것은 천차만별의 결과를 가져온다. 록은 본래 연주자들의 진정한 화학작용을 수반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소라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의 기다림(이한철, 정준일은 2009년에 곡을 주고 오랜 시간 곡의 편곡이 바뀌는 것을 지켜봤다고)과, 믿음, 우정이 가능케 한 이 앨범의 울림은 이소라가 이전에 불러왔던 노래들 이상으로 상당하다. 특히 ‘나 Focus’에서 이소라가 소화해내는 록 특유의 드라마틱한 사운드와 멜로디는 단연 압권.

이규호 ‘Spade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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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가 1999년 1집 ‘얼터에고(Alterego)’ 이후 15년 만에 발표한 2집. 참 많은 이들이 기다렸다. 한때 라디오에 자주 흘렀던 ‘내일도 만날래?’ ‘머리 끝 물기’를 좋아했던 팬들도 이규호를 기다렸겠지만, 참 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이규호의 ‘재림’을 고대했다. 이승환, 고찬용, 윤영배, 이한철, 정준일 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장 컴백을 기대하는 동료로 이규호를 첫 손에 꼽곤 하더라. 1993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규호는 조동진, 조동익의 하나음악을 거점으로 활동하며 장필순, 한동준, 이승환, 유희열, 윤종신, 이소라, 박정현 등의 앨범에 참여해 수려한 음악성을 뽐냈다. 이규호는 재작년 음악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출연하며 오랜만에 팬들 앞에 나섰다. 이제 경력으로만 보면 중견 측에 속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외모는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해보였다. 이번 앨범 ‘스페이드 원(Spade One)’은 음악적 성숙함과 소년의 순수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야누스와 같은 앨범이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는 자신을 자축하는 듯한 첫 곡 ‘세상 밖으로’에서 사운드의 치밀함과 ‘반가워요’라고 말하는 가사(‘신나게 신나게’가 가녀리게 이어져 여운을 남기는) 수줍은 가사가 이규호답다. ‘없었다’에서 베이스와 신디사이저로 만드는 미니멀한 사운드는 그야말로 압권. ‘바이러스’는 이규호 나름의 불만을 드러낸 곡일까? 이규호의 음악동료들이 노래로 참가한 ‘보물섬’을 들으면 그 목소리들이 너무 순수해 미소가 흐르다 감탄사가 이어지고, 결국 감동이 남는다. 이규호는 이제 더 많은 대중 앞에 나설 때다.

할로우 잰 ‘Day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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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8년 만의 새 앨범이다.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 출신인 할로우 잰은 2006년 첫 정규앨범 ‘러프 드래프트 인 프로그레스(Rough Draft In Progress)’를 발표하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록 음반’을 수상했다. 이후 반 해체 상태였던 할로우 잰은 2011년 열린 라이브클럽 ‘쌤’의 마지막 공연 ‘20002011’을 위해 일시적으로 재결성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다시 모인 멤버들은 정규 2집 ‘데이 오프(Day Off)’를 내기에 이른다. 지난 3월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린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에서도 할로우 잰은 출중한 무대를 선보였다. 특히 훌륭한 밴드 사운드를 뽑아내며 현지인들에게 앵콜을 받기도 했다. 할로우 잰은 처음 등장했을 때 ‘하드코어’(미국 뉴 메탈이 잘못 사용된 용어)라는 장르로 이야기되기도 했지만, 사실 이들은 어떤 장르에 넣기 애매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다. 헤비한 사운드 위로 처절한 멜로디가 얹어져 있어 ‘울면서 달리는’ 느낌이랄까? 묵직함이 몸을 울리고 멜로디가 가슴을 적신다. 죽음을 소재로 한 8곡이 담겼는데 러닝타임이 무려 70분에 육박할 정도로 긴 곡들이 담겼다. 기타 아르페지오와 샤우팅으로 비장함을 전하는 트랙도 있으며 음향 효과를 통해 앰비언트 적인 느낌을 주는 트랙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하나의 드라마를 지니고 있다는 것. ‘한편의 영화’가 아닌 8개의 단편을 이어 감상하는 느낌이다.

로로스 ‘W.A.N.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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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의 공백을 깬 로로스의 정규 2집. 로로스는 한국의 포스트 록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밴드고 꼽힌다. 옐로우 키친이 인디 신의 여명기에 이미 실험적인 사운드를 통해 한국 포스트 록의 단초를 선보였다면,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속옷밴드)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류의 본격적인 슈게이징을 들려주며 각광받았다. 로로스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규어 로스를 연상케 하는 드림 팝의 영역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노이즈를 선보였다. 최근에는 포스트 록 계열의 밴드들이 많아졌고, 엄연히 인디 신에서 하나의 세를 형성하고 있지만, 로로스가 결성된 2005년만 해도 국내에 포스트 록은 매우 낯선 장르였다. 멤버 군 입대로 휴지기를 가진 로로스는 2011년 가을 활동을 재개했다. 그해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로로스를 봤을 때는 바로 새 앨범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신보는 시간이 걸린 만큼 출중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전작 ‘팍스(Pax)’가 국내에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는 역할을 한 것에 큰 의의가 있다면 신보에서는 로로스 나름의 방향성이 뚜렷해졌으며, 무엇보다도 사운드 메이킹이 훨씬 프로페셔널해졌다. 멋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한음파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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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음파의 3집이자 세 번째 모습이라 할 만한 결과물이다. 한음파는 1집 ‘독감’과 EP ‘잔몽’으로 몽골 악기인 마두금이 중심이 된 이국적인 사운드와 사이키델릭한 음악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집 ‘키스 프롬 더 미스틱(Kiss From The Mystic)’에서는 마두금을 절제하고 간결하고 호쾌해진 록을 들려주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는 사운드의 스케일이 한층 커졌다. 한음파 사운드의 확장이랄까? 1~2집의 요소를 모두 가지면서 그것을 버무려 대곡을 지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도 본인들이 좋아하는 팀인 펄 잼의 사운드로 회귀가 느껴진다. ‘크로우(Crow)’ 등을 비롯한 곡들은 다소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 그런지 록 특유의 멜로디와 질감이 잘 살아있다. 이것은 마치 펄 잼이 5집 ‘일드(Yield)’ 이후에 그런지 록의 틀을 벗어나 마치 또 다른 세계로 흘러들어가는 듯한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까? 누군가는 라디오헤드가 ‘더 벤즈(The Bends)’에서 ‘오케이 컴퓨터(OK Computer)’로 넘어가는 사이의 경계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처럼 진보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밴드의 행보답다.

한영애 ‘샤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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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랬듯이, 역시나 한영애로 가득 찬 앨범이다. 15년 만의 새 앨범. 한영애는 “15년이 마치 15일처럼 지나갔다”고 말했는데, 이 말처럼 한영애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팔팔하다. 그 음악은 한층 젊어졌다. 한영애만의 아우라(우리나라에서 ‘아우라’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수가 한영애다)는 여전하지만 트렌디한 어법도 피하지 않았다. 본래 블루스, 록, 소울을 추구했던 한영애는 전형적인 밴드의 오서독스한 사운드를 고집하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밴드에도 컴퓨터 음악이 가미되는 변화가 있었다. 유앤미블루 출신의 방준석이 만든 타이틀곡 ‘샤키포’를 비롯해 몇몇 곡에는 최근 록의 어법이 가미됐다. 철학적인 가사를 지닌 첫 곡 ‘회귀’와 가사가 없는 마지막 곡 ‘그림 하나’의 덥스텝을 비롯한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는 한영애가 직접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워서 만든 사운드라고 한다. 이러한 열정도 놀랍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새로운 시도가 한영애의 스타일로 완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기적을 부르는 주문 ‘샤키포’, 그리고 ‘너의 편’과 같은 노래는 정말 청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래다. 기적이 별건가? 바로 이런 앨범이 기적이다.

정재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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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으로 신뢰하는 한 레이블 대표와 올해의 앨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정재원의 ‘한마디’를 2014년의 앨범 중 하나로 꼽더라. ‘적재’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정재원을 처음 본 것은 지난 5월 27일 종로 반줄에서 열린 바버렛츠의 쇼케이스였다. 바버렛츠의 공연이 끝난 후 강승원, 선우정아, 정재원 등 동료들이 차례로 공연을 가졌다. 최근에는 김동률의 콘서트에서 출중한 통기타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최근 세션 기타리스트들이 싱어송라이터로서 앨범을 내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데 김선욱, 빌리 어코스티, 정재원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쿠스틱 풍의 음악 안에 나름의 기타 실력을 내보이는데 결과물에서 존 메이어가 언뜻 스쳐단다는 공통점이 있더라. 정재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출중한 어법을 선보이며 정재원이라는 이름의 명함을 굳건히 내보이고 있다. 웬만한 장르는 커버가 가능한 연주자로 알려져 있는데 본인의 앨범은 팝적인 어법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는 않다. ‘아이 헤이트 유(I Hate You)’에서 꽤 화려한 기타솔로를 뽐내기도 하지만, 이러한 모습은 극히 드물다. 얼핏 들으면 카페에 자주 흐를법한 곡들인데 곡들의 만듦새, 편곡에 있어서 전형적인 흐름을 피하려 한 것이 읽힌다. 그럼에도 노래의 힘으로 청자를 설득한다. ‘한마디’는 최근에 조원선이 피처링한 곡 중 가장 조원선의 매력을 잘 살린 곡.

김사월 X 김해원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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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정보 없이 이들의 공연을 보러 갔다. 노컨트롤의 황경하가 올린 김사월 X 김해원의 티저 영상이 환상적으로 들렸기 때문. 단편선과 선원들,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의 뒤를 이어 무대에 나온 김해원과 김사월은 마치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을 보는 듯했다. 외모는 전혀 안 닮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매력이 비슷하다고 할까? 세르주 갱스부르가 제인 버킨을 범하는 느낌이라면, 김해원은 김사월을 살포시 안아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사월은 솔로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공연에 세션으로 참여한 김해원과 만나 듀오를 결성하게 됐다고 한다. 김사월 솔로 시절의 곡을 들어봐도 묘하게 야릇한 맛이 있는데, 김해원을 만나면서 그러한 색은 더욱 진해진 것 같다. ‘비밀’에 담긴 곡들에서는 샹송이 가진 프렌치 멜로디와 질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 음악의 매혹은 단지 샹송이라는 단어로만은 설명할 수 없다. 이들의 음악은 뚜렷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가령 ‘사막 part 1’을 듣고 있으면 황량한 길을 터벅터벅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둘이 속삭이는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 농밀함이 부러워진다.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을 말할게 누구도 이해 못하는 너에게만 말할게 이해한다면 그건 유령이 되는 거야’와 같은 이들의 가사 말이다.

단편선과 선원들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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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선과 선원들의 정규 1집. 회기동 단편선은 요 몇 년 사이 ‘백년’ ‘처녀’ 등의 솔로앨범을 통해 파격적이고 완성도 높은 음악을 선보이며 인디 신의 중요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회기동 단편선이 뭘 한다고 하면 ‘또 무슨 짓을 하나?’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는 것 같다. 단편선과 선원들은 단편선(보컬, 기타), 권지영(바이올린), 장도혁(퍼커션), 최우영(베이스)으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적으로 봤을 때 이들은 이 악기 편성에서 나올 수 있는 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토해내고 있다.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지는 곡부터 최근 영미권의 인디 포크, 월드뮤직, 멀리는 60~70년대의 아름다웠던 브리티시 포크, 사이키델릭 포크의 색까지 매우 복합적인 포크(트레디셔널부터 모던포크까지)음악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대개 이런 음악은 청자가 자기 취향대로 받아들이기 마련인데, 월드뮤직 마니아라면 집시 음악이 들릴 것이고 아트 록, 브리티시 포크 마니아라면 스파이로자이라 풍의 난해한 음악, 또는 ‘러브’의 사이키델릭 포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장르적인 색체의 구현이 아니라 곡이 가진 드라마틱한 진행이다. 이들 4인조는 특정 스타일에 매몰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편성에서 할 수 있는 노래의 완결성에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청자로 하여금 각각의 곡들이 가진 극적인 구성에 귀 기울이게끔 한다. 음악적 욕심과 함께 곡의 완결을 위한 자제심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

페퍼톤스 ‘High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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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톤스의 5집. 페퍼톤스가 데뷔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돼 간다. 지난 2005년 ‘레디, 겟 셋, 고(Ready, GetSet, Go!)’를 처음 라디오에서 들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마치 일본 만화 주제가 같았던 이 곡은 기존의 인디 신에서 전혀 들어볼 수 없었던 감성으로, 마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고스트네이션 - 인디차트’에서 꽤 오래 1등을 했다) 페퍼톤스의 강점은 특정 장르를 추구하기보다 음악을 캔버스 삼아 자신들의 재기발랄한 감성을 마음껏 뿌려댄다는 점이었다. ‘하이파이브’도 마찬가지다. ‘굿모닝 샌드위치 맨’과 ‘솔라 시스템 슈퍼 스타스(Solar System Super Stars)’를 들으면 페퍼톤스가 이제 강한 록을 하는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이어지는 곡들을 들어보면 역시나 다채로운 사운드로 자유분방한 감성을 펼치고 있다. ‘뉴 찬스(New Chance)’와 같은 악기 편곡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다. ‘패스트(Fast)’의 도입부는 올해 들었던 기타리프 중 단연 ‘쿨’한 연주다. 페퍼톤스는 원래 창의적이었는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 창의성이 기타리프와 같은 연주로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노래도 늘은 것 같다.

이승환 ‘Fall to Fly 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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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의 음반은 다른 아티스트가 아닌 이승환 본인의 디스코그래피에 비추어 판단해 봐야 할 것이다. 이승환만큼 앨범의 완성도, 특히 사운드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거기에 엄청난 물량을 투자하는 아티스트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승환은 3집까지 가수로써 입지를 다지고, 4집부터 대작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는 10집까지 이어졌다.(물론 이것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승환 역시 중견가수의 음원차트 열세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니까) 11집 역시 풍성하다. 스타일적인 면으로는 기존 이승환의 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고 있다. 일단 전작들에 비해 피처링 아티스트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내게만 일어나는 일’ 정도를 빼놓고는 피처링 아티스트의 특징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처링은 거들뿐, 이승환은 본인의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에게만 반응해’는 이승환 특유의 달달함이 잘 살아있는 곡이고,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에는 대곡 지향적 면모가 드러난다. 세계적인 연주자가 참여시킨 의욕은 당연히 양질의 사운드로 이어지고 있다. 가령 섹스 전야를 노래한 ‘어른이 아니네’ 또는 ‘스타 워즈(Star Wars)’에서의 사운드 이스케이프, 기타 톤 등만 봐도 여타 가요앨범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물론 이러한 음악적 노력이 음원차트 성적으로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잘 만들면 잘 팔리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사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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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의 3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이번 앨범에 수록된 13곡을 자신들이 원하는 사운드로 만들기 위해서 하고 싶은 걸 다 해봤다고 한다. 이건 가사, 사운드에 모두 해당되는 것 같다. 일본까지 가서 멜로트론을 녹음한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도 그렇고 섹스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노래한(것으로 보이는) ‘내 사람’ 등 발랄하고 의욕적인 시도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이 앨범은 상당히 복합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곰팡내 나는 표현을 쓰자면 록의 과거와 현재가 적절히 결합됐다고 할까? 본인들은 간결하다고 하지만, 그리 단순하게 들리진 않는다. 음악들이 스트레이트하게 달려가는 가운데 과거 60~70년대 영미 록의 클래식에서 보이던 장식음들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멜로트론과 같은 과거의 악기를 쓴 것 외에도 이종민의 도어즈(Doors)를 떠올리게 하는 오르간이 낭중지추처럼 톡톡 튀는데 이러한 아이디어가 곡을 살린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내 사람’에서 3분 40초경에서 사운드가 폭발하는 부분은 마치 사정(射精)하는 순간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극적이다. 앨범의 종장을 드라마틱하게 장식하는 ‘착한 건 나쁜 게 아니야 pt.2’에서 전인권의 짧은 노래 후에 나오는 연주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막판의 길게 끄는 부분은 마치 비틀즈의 ‘어 데이 인 더 라이프(A Day In The Life)’를 마무리 하는 폴 매카트니의 피아노를 연상케 하더라) 장기하와 얼굴들의 최대 장점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장기하의 목소리 때문에 묘하게 정리가 된다는 점이다. 이 앨범을 주의 깊게 듣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서태지가 앨범 내도 욕하고 마는 세상이지만.

악동뮤지션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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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스타’ 출신인 악동뮤지션이 YG엔터테인먼트로 간다고 했을 때 사실 좀 의아했다. YG는 힙합 계열의 레이블이 아니던가? 악동뮤지션은 기본적으로 어쿠스틱 팝에 기반을 둔 듀오이기에 이들이 YG라는 회사를 통해 어떤 결과물을 낼지 궁금했다. 음반을 들어보면 YG가 이찬혁이 만든 자작곡들의 개성을 잘 살려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악동뮤지션은 투개월과 버스커버스커의 장점을 고루 지니고 있다. 통기타를 기본으로 두고 투개월처럼 어반(urban)한 느낌부터 버스커버스커처럼 풋풋한 감성을 동시에 표현이 가능한 팀이다. 즉, ‘200%’처럼 달콤한 R&B 풍의 곡부터 ‘지하철에서’처럼 차분한 포크풍의 곡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한다.(우연히도 이 두 가지 중 하나는 주류 가요계에서, 다른 하나는 인디 계열에서 잘 팔리는 트렌드이기도 하다) ‘플레이(PLAY)’에 담긴 곡들은 악동뮤지션이 통기타 한 대로 만들었을 법한 노래에 적절한 세션이 첨가돼 세련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하지만 YG이기 때문인지 ‘가르마’ ‘안녕’ 등 전반적으로 흑인음악 풍의 편곡이 느껴지기도 한다. ‘길이나’ ‘갤럭시’에서는 악동뮤지션 특유의 톡톡 튀는 센스가 잘 드러난다.

쏜애플 ‘이상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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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디 신에서 가장 매혹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밴드는 바로 쏜애플이다. 해피로봇레코드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1집 ‘난 자꾸 말을 더듬고 잠드는 법도 잊었네’를 통해 실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고, Mnet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밴드의 시대’에서는 방송에서 주눅 들지 않는 강단과 나름 편곡 센스도 발휘해 보였다. 4년 만의 신작이자 정규 2집 ‘이상기후’는 생존을 주제로 한 콘셉트 앨범이라고 한다. 각각의 곡들은 ‘남극’ ‘암실’ ‘피난’ ‘백치’ 등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에서 묘하게 이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멜로디의 형상화라고 할까. 타이틀곡 ‘낯선 열대’를 비롯해 ‘살아있는 너의 밤’ ‘아지랑이’와 같은 곡들은 쏜애플에게 마음을 빼앗긴 여성 팬들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신인일 당시에도 워낙에 자신들의 색이 뚜렷한 팀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신인의 티를 벗음과 동시에 자신들의 색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윤성현의 보컬도 강점이지만, 밴드의 사운드 메이킹도 뛰어나다. 스타일이 너무 일관적이지 않나 하는 우려도 있지만, 밴드의 선택이라 믿어본다. 이제 스타성 면에서 ‘넬’의 뒤를 이을만한 팀이 바로 쏜애플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신해철 ‘Reboot Myself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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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고대해온 신해철의 새 앨범이다. 처음 원맨 아카펠라 곡 ‘아따(A.D.D.a)’를 들었을 때는 신해철의 컴백 곡 치곤 조금 가볍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반복해서 들어보니 곡의 중량감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신해철에게 직접 이 곡을 만들기까지의 일련의 과정(기사를 참조하도록)을 들어보니 그 완벽주의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소수의 작곡가가 다수의 히트곡을 찍어내듯 만드는 요즘 세태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곡이더라. 앨범 제목 ‘리부트 마이셀프’는 ‘재즈카페’가 들어있던 솔로 2집 ‘마이셀프’의 연장선이다. 이 말인즉슨 신해철 나름대로는 대중성을 생각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앨범이 대중성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올시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프린세스 메이커’(Princess maker)’은 신해철 나름대로 펑키한 R&B에 접근한 곡들인데 요새 트렌드와는 별 상관이 없는 복고풍의 곡들이다. 신해철 팬이라면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듣고 ‘도시인’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이처럼 신해철의 색은 새 앨범에서 단단히 박혀있다. (하긴 그처럼 자기 색이 뚜렷한 아티스트도 드물긴 하다)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은 아내와 연애를 시작할 때 처음 만들어 15년을 다듬은 곡이라고 하는데 드라마틱한 멜로디와 진행이 역시 그답다. 이 곡 말미에는 넥스트의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의 내레이션이 이어지는데, 이는 ‘어서 나타나줘’의 주인공이 지금의 아내였다는 자기 고백인가?

토이 ‘Da Ca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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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의 정규 7집. 유희열로서는 데뷔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대중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에서 발표한 앨범이다. 여러 가지 음악적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기존의 토이는 확실한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는 마니아들 외에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유희열을 알게 된 불특정 다수의 대중도 토이의 음반을 기다리게 됐다. 나름의 고민이 컸을 터. 결국 유희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화려한 게스트들과 함께 해 전 곡을 타이틀곡으로 해도 좋을만한 앨범을 만들어냈고, ‘음원차트 올킬’이라는 대중적인 성과도 거뒀다. 음반의 베스트 트랙이라 할 수 있는 첫 곡 ‘리셋(Reset)’부터 유희열의 범상치 않은 작법과 이적의 출중한 보컬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수현이 노래한 ‘굿바이 선, 굿바이 문(Goodbye Sun, Goodbye Moon)’은 6집 타이틀곡 ‘뜨거운 안녕’에 이어 유희열의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에 대한 애정을 느껴볼 수 있는 곡. 이외에 김동률, 크러쉬 & 빈지노 등이 참여한 곡들 모두 차트에서 각광받을 만한 곡들이다. 헌데 토이 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전만 못하다는 말들도 있다. 이유가 뭘까? 1.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일까? 2. 유희열이 변한 것일까, 우리가 변한 것일까? 3. 희소성이 떨어진 유희열에 대한 섭섭함이 청자의 심기에 영향을 미친 것일까? 4. ‘세 사람’이 기존의 토이 표 발라드(라고 쓰고 한국 여성들이 좋아하는 코드 진행이라고 읽는다)와 달라서? 답을 골라보라.

이장혁 ‘이장혁 Vol.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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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이장혁의 정규 3집. 90년대부터 홍대 인디 신에서 활동한 이장혁은 아무밴드로 1집 ‘이.판.을.사’를 발표하고 평단에서 호평을 받았다. (아무밴드가 궁금하면 ‘사막의 왕’을 검색해보라) 2004년에 첫 솔로앨범 ‘Vol. 1’을 발표했으니 솔로로 나선지 10년이 훌쩍 지났고 나이도 마흔이 넘었다. 지난 2012년에 3집 발매를 알리고 쇼케이스까지 열었는데 당시 앨범을 발매하지 않았다.(때문에 당시에 쓴 앨범 발매 기사는 오보가 됐다) 앨범을 미룬 것은 본인의 음악적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앨범은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 출중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지난 앨범에서는 모던포크에 집중된 음악을 들려줬는데 이번에는 밴드 사운드, 그리고 프로그래밍 등을 통해 풍부함을 더하고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악곡의 비범함이다. ‘칼집’처럼 직선적인 곡도 ‘빈집’ ‘레테’ ‘비밀’ ‘노인’ 등과 같이 청자의 ‘우울과 몽상’을 이끌어내는 곡들의 매력이 상당하다. 특히 유재인(게이트 플라워즈)의 사운드 프로그래밍이 이장혁의 곡에 다양한 색을 덧대주고 있다. 흔히 ‘인디 1세대’라 불리는 이들이 이런 고집이 느껴지는 음악을 해주는 것은 단순히 좋다는 것을 넘어서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최고은 ‘I Was, I Am, I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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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이 데뷔 4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앨범. 최고은은 지난 2010년 데뷔 후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해볼 만한 ‘음악적’인 시도는 거의 해본 것 같다. 다양한 뮤지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배운 것도 많고, 유럽투어를 돌며 호연지기를 길렀다. 일본 후지TV의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아시아 버서스’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외에서 두루두루 실력도 인정받았고 세계 최고의 음악페스티벌 ‘글래스턴베리’ 무대에도 섰다. 이러한 굉장한 경험들은 최고은의 첫 정규앨범에 고스란히 담겼을 것이다. 기존의 EP들에서 포크에 기반을 둔 음악을 선보인 최고은의 음악적 결은 신보에서 한층 다양해졌다. 특정 장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록, 재즈, 월드뮤직 등의 여러 요소들이 최고은과 황현우(까르푸 황)가 리더를 맡은 밴드가 만든 음악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음악은 다채롭지만, 이 모든 것이 최고은의 깊은, 깊은 목소리로 귀결된다. 새 앨범에 새롭게 실린 ‘L.O.V.E’ ‘노 에너지’ 등의 예전 곡들이 변화한 만큼 우리 자신들도 많이 변했겠지.
이디오테잎 ‘T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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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 팝 밴드 이디오테잎의 두 번째 정규앨범. 록페스티벌에서도, 그리고 최근 대세가 된 EDM 페스티벌에서도 이디오테잎을 만나볼 수 있다. EDM이 대세이기도 하지만, 리얼 드럼이 함께 하는 이디오테잎에게는 밴드 사운드가 줄 수 있는 특유의 활력이 존재하기 때문. 이번 여름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벌어진 이디오테잎의 공연에서 관객들은 기차놀이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2011년 디스켓 모양으로 된 정규 1집 [11111101]을 통해 이 계열의 독보적인 팀으로 떠오른 이디오테잎은 새 앨범에서 한층 넓어진 사운드를 선사한다. 전 앨범이 이색적이었던 저미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록적인 면을 구현한 것이었다면, 이번 앨범은 80년대 신스팝이 주는 청량감에 보다 감성적인 접근이 귀를 잡아끈다. 특히 수록곡 ‘몬(Morn)’의 후반부에서 반전을 이루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필시 주목해야 할 것이다. 소포모어 징크스는커녕 더 넓어진 이디오테잎의 세상.

한승석 정재일 ‘바리abando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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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한승석의 소리와 ‘음악천재’라 불리는 만능재주꾼 정재일의 연주가 만난 이 앨범. 둘은 고수와 창자로써 만나고 있다. 정재일은 북만 들지 않았을 뿐 한승석의 창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긱스 출신의 천재 소년으로 회자됐던 정재일은 2012년 제대 후 동료 가수들의 세션으로 참여하고, 뮤지컬 음악감독, 연극 스코어 앨범 발매 등 실로 왕성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국악은 정재일의 넓디넓은 음악 배경 중 하나. 한승석과는 2008년 국악그룹 ‘푸리’를 통해 만났다. 당시 작품인 ‘자룡 활 쏘다’는 현대음악과 국악의 밀접한 앙상블을 느껴볼 수 있는 곡. 이번 앨범에서는 바리공주 이야기를 소재로 했으며 극작가 배삼식이 가사를 썼다. 그리고 거스를 것이 없는 정재일의 유연함은 한승석의 소리를 한껏 날아오르게 한다. 사실 현대음악과 국악의 조우는 과하다고 할 정도로 잦은 편. 이 앨범을 단순한 현대음악과 국악의 크로스오버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이 앨범의 방점은 단지 국악의 음악적인 진화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사람들과 소통을 유도하는데 찍혀 있기 때문이다. 국악을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가슴이 요동칠만한 음악이다.

향니 ‘첫사랑이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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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 향니를 처음 본 건 작년 여름 라이브클럽 롤링홀에서 열린 ‘헬로루키’ 공개 오디션 현장에서였다. 자유분방하게 피아노를 치며 기기묘묘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꽤 놀랬더랬다. 재즈의 어법을 가진 화려한 피아노 연주에 약간 광기가 들린 보컬이 매우 신선하게 들렸다. 당시 심사를 맡은 김현준 재즈비평가는 “향니의 음악은 듣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불안하게 하려면 완전히 불안에 빠지게, 미치게 만들면 어떨까? ‘나를 따르라’는 마음으로 앞장서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경연에는 떨어졌지만, 그날 이후 앨범이 기대되는 신인으로 향니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데뷔작 ‘첫사랑이 되어줘’은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앨범이다. 경연 때보다 다소 정리됐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는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기본적으로 향니의 피아노와 노래가 곡을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으며 밴드 멤버들은 향니의 아이디어를 잘 거들 뿐이다. 마치 향니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뮤지컬의 OST를 듣는 느낌이랄까. 멜로디, 가사, 편곡 등 향니로 가득 찬 앨범으로 올해 신인 여성 뮤지션 중에서는 단연 최고의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넌 나의 롤모델’이란 노래가 있는데 향니의 음악적 롤모델은 시이나 링고(동경사변)가 아닐지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서태지 ‘Quiet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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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의 정규 9집이자, 솔로로는 다섯 번째 앨범이다. 서태지의 설명을 빌자면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 딸 ‘삑뽁이’를 위해 만든 앨범이다. 그런 사정까지 알아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음악 이야기만 하자면 최근 해외에서 유행하는 일렉트로 팝의 다양한 어법들이 들어가 있다. 서태지는 5집이자 솔로 첫 앨범인 ‘서태지(Seo Tai Ji)’부터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한 록을 기본으로 한 음악을 꾸준히 들려줬다. 신보에서는 록의 비중을 줄이고 멜버른 바운스, 칠스텝 등의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의 영향이 느껴진다. 서태지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처럼 건반으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전처럼 기타로 나올만한 멜로디는 현저히 줄었다. 결과적으로 음악은 꽤 대중적인 어법을 지니고 있으며 오히려 솔로보다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의 정서에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숲 속의 파이터’에서 노래 막판에 “진짜?”라고 속삭이는 서태지는 20대처럼 앙증맞다. ‘크리스말로윈’의 가사에 대해서는 산타를 현 정부에 비유해 비판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서태지 말대로 해석은 자유일 것이다.(CD 알판에 찍힌 산타의 모습이 무시무시하긴 하다만) 서태지는 밴드와 함께 공연하지만, 악기 편곡 및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차기작에서는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진짜 밴드’를 꾸려서 새로운 음악을 시도해봤으면 한다. 여러 명이 혼자보다는 나으니.

에픽하이 ‘신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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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의 성공적인 부활을 알린 앨범. YG엔터테인먼트로 옮긴 후 에픽하이의 사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워낙에 인기 있는 아이돌들이 많은 레이블이기에 뒷전으로 밀려난 느낌도 있었다. 이번 앨범은 상당히 좋은 타이밍에 나왔다. 힙합에 대중이 반응을 하는 분위기가 됐고, 타블로는 ‘쇼미더머니’ 등을 통해 대중에게 다시 가까이 다가갔다. 나름 힙합 계에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에픽하이가 제자리로 돌아가기에는 적기라 할 수 잇다. 특히 신보는 YG의 태양, 바비, 비아이, 송민호를 비롯해 박재범, 빈지노, 윤하, 개코 등 최근 힙합 앨범 중 가장 화려하다 할 수 있는 게스트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다. 타블로의 기지 넘치는 가사는 여전하며 특히 ‘본 헤이터(Born Hater)’의 가사는 읽는 재미도 있다. ‘본 헤이터’와 같은 공격적인 19금 가사의 곡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머무르는 것은 상당히 신기한 광경이고, 앨범 중 가장 재미없는 노래인 ‘헤픈엔딩’이 순위가 제일 높은 것은 조금 아쉬운 모습.

CR태규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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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맨 CR태규의 두 번째 앨범. CR태규는 하헌진, 씨없는 수박 김대중, 김태춘 등과 함께 인디 신에서 ‘델타 블루스’를 구사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들은 블루스 선배들인 신촌블루스의 이정선, 엄인호, 그리고 김목경, 채수영와 구별되게 블루스의 초기 스타일인 델타 블루스를 구사하는데, 이는 이제 인디 신에서 하나의 작은 흐름이 됐다. CR태규는 1집 ‘CR Blues’를 발표했으며 김대중의 ‘300/30’에서 슬라이드기타를 선보이고 블루스 옴니버스 앨범 ‘블루스 더, Blues’에서 강한 록 블루스를 들려준 바 있다. 신보에서는 어쿠스틱기타(도브로 기타인 것으로 들린다) 한 대와 함께 노래하고 있다. 블루스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메시지의 전달에 있는데, CR태규는 델타 블루스 특유의 기타 주법 위로 자신의 목소리를 확실히 전달하고 있다. 로버트 존슨, 스킵 제임스와 같은 명인들이 그렇듯이 단순히 12마디 3코드의 블루스에 머물지 않고, 꽤 다채로운 멜로디를 들려준다. ‘외로움’ ‘유월 삼십일’과 같은 곡들은 굳이 블루스 팬이 아니더라도 너끈히 공감할 만한 곡이다. 블루스도 작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앨범.

국카스텐 ‘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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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카스텐의 5년 만의 새 앨범. 이 한 장의 앨범이 나오기까지 참 별 일이 다 있었다. 정규 1집 ‘국카스텐’을 1만 장 이상 팔아치우며 인디 신의 르네상스를 연 것으로 평가받는 국카스텐은 이후 ‘나는 가수다’를 통해 화제를 모으며 한때 록계 최고의 기대주로 떠올랐지만 전 소속사와 법적 분쟁 등으로 내홍도 겪었다. 쉬는 기간이 길었던 만큼 새 앨범에는 열다섯 곡이라는 꽤 많은 곡들이 담겼다. 타이틀곡 ‘변신’을 필두로 1집 때와는 다른 새로움과 음악적 욕심이 느껴지는 곡들이 꽤 있다. 기존에 비해 밴드적인 편곡보다는 프로듀싱적인 면이 강화된 곡들이 다수 보인다. 이번에는 하현우가 혼자 곡을 만드는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하현우가 미디로 찍은 멜로디를 멤버들이 악기로 편곡을 하고, 기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운드는 새로운 장비를 통해 표현했다고. 멤버들은 이번에는 그 새로운 장비를 공부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런 것이 밴드다운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악곡 적으로 다소 복잡해진 면이 있지만, 국카스텐 특유의 폭발력은 여전하다. 국카스텐을 두고 인디 신의 스타가 국민 록 스타가 되는 모델을 만들 거라 기대한 이들도 있겠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어쨌든 귀환을 환영한다.

아시안체어샷 ‘Horiz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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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체어샷의 대망의 첫 정규앨범. 놀라운 데뷔앨범으로 꼽힌 EP ‘탈’을 가볍게 뛰어넘는 결과물이다. 신작은 세계적인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기타리스트 제프 슈뢰더의 프로듀싱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제프는 아시안체어샷에 대해 “신중현이 라디오헤드의 소리로 블랙사바스와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아라. 그것이 바로 아시안체어샷”이라고 말했는데, 이에 동의한다. 그의 말처럼 ‘호라이즌(Horizon)’에는 기존에 아시안체어샷이 선보인 바 있는 한국적인 사이키델릭 록에서 더 나아가 모던록의 어법, 그리고 클래식 록의 중후함까지도 담겨 있다. ‘해야’ ‘뱃노래’ ‘어떡할까’ 그리고 ‘날 좀 보소’ 등은 한국적인 가락을 선보임과 동시에 광활한 전개를 보이기도 한다. 신중현이 했던 것처럼 한국적인 정서에 폭발력을 탑재하고 있는 것. 여기데 유려한 멜로디를 선보이고 있는 ‘밤비’ ‘자장가’와 같은 곡들이 안식을 전한다. 노래 곳곳에 이들의 개성이라 할 수 있는 ‘한’ ‘처연한 곡조’는 여전하다. 다행히도, 제프 슈뢰더는 아시안체어샷의 장점을 정확히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과거 서울전자음악단이 이뤄낸 금자탑을 이어가는 놀랍고도 도전적인, 그리고 아름다운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파블로프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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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사운드’를 표방한 파블로프의 앨범. 강북사운드가 뭘까? ‘강남스타일’은 유명하지만, 딱히 ‘강남사운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파블로프 측은 보도자료를 무려 네 종류로 보내왔는데(이런 건 처음 봤다), 이를 읽어보면 ‘강북사운드라’는 것은 복잡다단한 상황에 놓은 한국의 록 신(scene)을 지칭하는 것 같다. 암튼 도통 감이 오지 않아 음반을 들어봤다. 파블로프는 87년생 고교 동창들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로 음악 외에 북한 펑크 리성웅 전시, 마석가구단지 외국인근로자 페스티벌 등 이색적인 기획에도 참여해왔다. 첫 정규앨범인 ‘26’에는 최근 인디 신에서 나오고 있는 다양한 록 스타일이 뒤섞여 있다. 앨범속지에는 각각의 트랙이 임재범 ‘너를 위해’,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 H.O.T ‘캔디’, 신촌 블루스 ‘골목길’, 산울림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 등에 영감을 받았다고 표시돼 있는데, 곡들을 들어보면 별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한국 고전 록들의 요소가 다분하긴 하지만) ‘재즈의 모든 것’이란 노래가 재즈와 아무 관계가 없듯이 말이다. 파블로프의 음악에 담긴 청춘의 에너지가 담겼다는 것은 진짜.

크러쉬 ‘Crush o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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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요계 주요 움직임 중 하나는 R&B 싱어송라이터들의 급부상이다. 정기고, 크러쉬, 자이언티, 진보, 범키, 계범주 등 소울(R&B) 음악 계열의 뮤지션들이 그들. 크러쉬는 크러쉬는 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를 비롯해 박재범, 자이언티, 다이나믹듀오, 리듬파워, 로꼬, 사이먼디, 양동근 등과 함께 작업을 해오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첫 정규앨범 ‘크러쉬 온 유(Crush on You)’에서는 노래부터 작사, 작곡, 프로듀서까지 맡으며 자신의 작업을 온전히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이나믹듀오의 개코와 최자부터 자이언티, 그레이, 박재범, 사이먼디, 리디아 백, 쿠마파크, 진보에 이르기까지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최근 그 어떤 피처링진보다도 더 화려하다. 이처럼 피처링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크러쉬는 각 곡에서 함께 한 뮤지션들과 적절한 앙상블을 이루며 트렌디한 R&B의 성찬을 선사하고 있다. 흑인음악 마니아부터 파티를 좋아하는 여성들까지 만족시킬만한 앨범.

트리오 클로저 ‘Coexist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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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오 클로저는 비안(피아노), 이원술(베이스), 한웅원(드럼)이 뭉친 피아노 트리오다. 셋은 현재 국내 재즈계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 중인 연주자들로 2010년 12월부터 함께 트리오로 연주를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임프로비제이션을 주고받는 스타일을 넘어서 세 명이 섬세하게 짜인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 흔히 유러피언 스타일, ECM 레이블에서 들어봄직한 피아노 트리오의 사운드라고 할까? 세 명은 거의 균등한 세 개의 꼭지점을 이루고 있다. 멤버들이 각각 3곡씩 자작곡 내지 편곡으로 앨범에 참여해 8곡의 자작곡과 1곡의 편곡(‘Solar’), 2곡의 즉흥곡이 담겼다. 그 어떤 곡에서도 누구 하나 과잉된 연주를 들려주지 않는다. 이는 개개인의 임프로비제이션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전체의 교감에 보다 집중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킵 인 터치(Keep In Touch)’와 같은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이 앨범의 미덕이다.

써니킴 & 벤 몬더 ‘The Shining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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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몬더와 써니 킴이 2013년 10월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듀오로 가진 라이브를 녹음한 실황 앨범. 당시 이 공연을 보러 가서 둘을 인터뷰했다. 둘이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벤 몬더라는 연주자가 무척 궁금했다) 써니킴이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 유학 시절 벤 몬더는 그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둘은 학교에서 만난 적이 없지만, 써니 킴은 벤 몬더의 ‘Hatchet Face’라는 반복이 하나도 없는 15분짜리 연주를 응용해 곡을 만들기도 했다고. 뉴욕에서 재회한 둘은 쉬지 않고 몇 시간 동안 즉흥 잼세션을 했다고 한다. 이 앨범은 그러한 연습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앨범에 대한 콘셉트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선곡을 의논한 정도로, 연주는 거의 즉흥적으로 진행이 됐다. 벤 몬더 가진 음악과 써니 킴의 음악이 아무런 장벽 없이 만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벤 몬더가 아르페지오를 통해 반주를 하는 형태이지만, 때로는 써니 킴이 보컬로 깔아주는 소리 위로 벤 몬더가 유영하듯이 연주를 쏟아내기도 한다. 여기에 써니 킴이 간헐적으로 전자음을 깔면서 색체가 만져지는 듯한 강렬한 사운드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다가 돼주는 셈이다. 앨범을 듣고 있으니 그날 현장에서의 마법과 같은 순간이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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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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