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19
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19
(PART5에서 이어짐) 2006년 태국으로 첫 해외공연을 떠나기 전, 내부사정으로 드럼 이상민이 밴드를 탈퇴했다. 그 자리에 밴드 LA시스템 드럼 최주호의 소개로 최민석이 영입되며 폰부스의 라인업은 마무리 되었다. 밴드의 막내이자 분위기 메이커인 드럼 최민석은 서울 을지로의 평범한 가정에서 1987년 12월 6일 새벽 6시29분에 태어났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의 팝송을 피아노를 치며 불렀던 어머니의 노래를 들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녔던 최민석은 일곱살부터 부천 동곡초등학교 3학년까지 경기도 안산에서 성장했다. 조용하고 여성스러웠던 어머니를 닮아 내성적이고 눈물이 많았던 그는 불같은 성격의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아버지는 그의 소극적인 성격을 고치려 초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장에 강제로 보냈을 정도. 초등학교 4학년 때, 그의 부모는 성격차이로 이혼해 어머니와 작은삼촌과 부천에서 동중학교 1학년까지 함께 살았다. “작은 삼촌은 예전에 건반을 치셨어요. 삼촌이 쓰던 야마하 건반이 지금도 집에 있습니다.”(최민석)

최민석 어린 시절
최민석 어린 시절
최민석 어린 시절

이후 교육여건을 걱정한 아버지와 함께 살며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상계중학을 다녔다. “게으른 성격 탓에 성적은 중간정도였지만 국어, 과학, 사회, 영어는 5개 이상 틀린 적이 없었어요.”(최민석) 한 달에 한 번 부천 어머니 집으로 갔던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 학원에 만난 친구 송승영을 따라 교회에 갔다가 드럼을 배우게 되었다. 음악에 관심이 없었지만 좋아했던 교회 여자아이가 ‘드럼 치는 모습이 멋있다’고 말해 잘 보이고 싶어 친구와 함께 매일 같이 연습을 했다. 3집 수록곡 ‘나에게로’ 가사는 그가 친구 송승영을 생각하며 쓴 가사다. 학교 축제에서 밴드부가 공연을 하는 모습을 봤다. “우리와는 수준차이가 너무 나더군요. 그때 드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최민석)
최민석 고등학교시절 드럼치는 모습
최민석 고등학교시절 드럼치는 모습
최민석은 아버지의 권유로 항공기술고 입시공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엄한 아버지가 무서워 공부는 했지만 평생 싫어하는 걸 하며 살기 싫어 가출해 어머니 집으로 갔죠. 마침 학교에서 실업고 입시설명회를 듣고 드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 서서울 생활과학고 실용음악과로 진학하겠다고 떼를 썼습니다. 작은 삼촌도 음악을 하다 실패했기에 어머니의 반대가 엄청 심하셨지요.”(최민석) 계속 고집을 부리자 무서운 아버지가 찾아왔다. 묵묵히 아들의 이야기를 듣던 아버지는 의외로 “후회하지 않고 잘 할 수 있겠냐”며 실용음악과 진학을 허락했다.
최민석 클럽 FF 공연 2014년2
최민석 클럽 FF 공연 2014년2
자신과는 달리 고등학교 친구들의 음악 수준은 대단해 의기소침했다. “그때 좌절감에 술, 담배를 처음 배우고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헌데 과 친구에게 실력이 없다고 놀림을 받으면서 오기가 생겼어요. 학교 연습실에서 혼자서 밤 9시에 교문을 닫을 때까지 미친 듯이 연습을 했습니다. 살면서 그렇게 뭔가에 집중해서 해본 적은 처음이었는데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저녁도 굶고 연습했습니다.”(최민석) 3달 정도 연습한 결과, 드럼 전공과 합주시험에서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1등을 했다. 관심을 보인 드럼 선생님이 그에게 해준 말은 기억에 선명하다. ‘드럼에서 제일 중요한건 테크닉이 아니라 리듬이다. 노래를 들어봐라. 리듬이 90%고 테크닉은 10%밖에 안 된다. 10% 때문에 연습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최민석 폰부스 녹음실 바닥에 스틱치며 드럼 연습
최민석 폰부스 녹음실 바닥에 스틱치며 드럼 연습
최민석은 신곡이 나오면 리듬을 어떻게 쳐야 노래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들지를 고민한다. “첫 합주시간에 본 조비 공연 동영상을 보고 나도 저렇게 큰 무대에서 멋지게 연주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지고 싶더군요.(웃음)”(최민석) 당시 친구들은 화려한 테크닉이 나오는 퓨전재즈 음악을 주로 들었지만 그는 본조비와 미스터 빅의 드러머들이 구사하는 톤과 그루브에 대해 연구를 했다. 자연스럽게 대학 진학을 위한 퓨전재즈 밴드보다는 록 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학교친구들과 4인조 밴드 ‘앳 더 타임(AT THE TIME)’를 결성했지만 흥미가 없어 음악을 포기하려 했다.
최민석 클럽 FF 공연 2009년2
최민석 클럽 FF 공연 2009년2
선배 최주호가 “괜찮은 밴드가 있으니 해 볼 생각 없냐?”고 전화를 했다. 처음 고사를 했지만 선배의 끈질긴 권유에 2006년 폰부스의 클럽FF공연을 보러갔다. “처음 봤을 때 홍대까지 갔던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공연 후 ‘어떠냐?’고 묻는 선배들의 말에 중학생 밴드부도 저거 보단 잘하겠단 말을 했죠. 속으로요(웃음). 그 정도로 초기 폰부스의 음악수준은 개판이었습니다.”(최민석) 공연 후, 멤버들은 오아시스의 공연 동영상을 보여주며 ‘이거 칠 수 있냐?’라고 물었다. “그때 왜 연습 좀 하면 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태우형은 제 말을 듣자마자 ‘응 됐다. 같이 하자’고 해 얼떨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최민석)
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20
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20
2006년 연습실과 스튜디오 녹음으로 자체 제작한 첫 EP에 대한 반응을 보기위해 인터넷에 올렸다. 태국, 대만, 일본 3개국으로 부터 초청을 받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공식 앨범을 내기 전에 소속사도 없이 매니저도 없이 태국 최대 록페스티벌인 팻 페스티벌(FAT FESTIVAL)에 초대받았다. 이후 드럼 최민석이 합류하며 라인업을 완성해 태국공연을 떠났다. 현지에서 CD에 사인을 요청받고 언론과 인터뷰까지 하며 록 스타 대접을 받았다. 현지에서 만난 트리퍼사운드 김은석 대표가 귀국하면 연락하라고 했다. “처음 폰부스는 엉망이었습니다. 처음 공연을 보다 한심한 생각에 중간에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뭔가 해보려는 의욕과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에 2008년에 계약을 했습니다.”(김은석 대표)(PART7로 계속)
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81
폰부스 강화도 피쳐사진81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최민석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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