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아
김수아
바야흐로 ‘스타 PD’의 전성시대다. 본래 방송국의 프로그램기획자로 작품 선정, 인력관리, 예산 통제 등을 담당했던 PD들의 활동 영역은 최근 들어 전에 없이 확장됐다. PD들이 프로그램의 전면에 서는 경우도 잦아졌다. 예능 PD들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제3의 멤버’와 같이 활약을 펼치기도 한다.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도 “관찰자는 관찰하는 대상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옛말이 된 지 오래다.

PD의 이름이 곧 하나의 브랜드처럼 여겨질 만큼 명확하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PD들이 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독창적인 색깔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는 이들에 시청자들의 열광 한다.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가 그만큼 깊고 중독성이 강하다는 증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소위 ‘스타 PD’라 불리는 이들은 무엇을 보고 있으며, 그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 하는 걸까.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통섭(統攝, 서로 다른 학문·산업 간의 융합)’이라는 개념은 방송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종합편성채널 JTBC ‘썰전’은 ‘정치와 예능’이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을 기가 막히게 버무린 수작이다. ‘뉴스와 거리가 먼 이들에게 좀 더 재밌고 쉽게 정보를 전달해보자’는 기획으로부터 출발한 ‘썰전’은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정보의 전달에 오락을 함께 제공하는 프로그램)’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설전’의 가치는 전 국민을 비탄에 빠지게 한 세월호 침몰 참사 때 더욱 빛났다. 시사·교양의 외피를 두른 ‘썰전’은 세월호 침몰 참사를 다각도로 분석했고, 모두가 쉬쉬하던 온갖 루머를 정면으로 파헤치며 호평받았다. 시사·교양프로그램으로 분류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예능은 아니지만 정보 전달에 즐거움을 더한 ‘썰전’만이 가능했던 일이다.

어느덧 방송 15개월 차를 맞은 ‘썰전’은 시청자뿐만 아니라, 방송가 사람들이 먼저 보는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썰전’의 연출자로서 매회 ‘정보’와 ‘즐거움’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균형 잡기를 계속해나가고 있는 김수아 PD의 시선 끝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지고 있을지. ‘썰전’을 통해 정치와 예능의 ‘통섭’을 꾀하고 있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봤다.

Q. 아무래도 지난달 24일 방송된 ‘세월호 참사’ 편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민감한 시기였지만, ‘썰전’만의 색깔을 살리면서 정보성도 잘 살린 느낌이었다.
김수아 PD: 애도 분위기에 예능프로그램이 대거 결방되면서 이슈가 집중된 탓도 크다. 정보에서 중요한 게 시의성이기도 하고, 뉴스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좀 더 쉽고 재밌게 정보를 제공하는 게 ‘썰전’의 역할이라 방송을 결정하게 됐다. 근데 막상 방송을 준비하는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다. 작가들과 아이템 이야기하면서도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 다섯 살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Q. 방송 이후 ‘속이 시원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만큼 알고 싶고 궁금했던 부분들을 가감 없이 끄집어냈다는 이야기이다.
김수아 PD: 이런 내용으로 방송할 때는 대중이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부분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정보를 알고 싶게 가공하는 게 우리 역할이기도 하고. 보도프로그램이 아니라서 취재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Q. 결국, 정보의 취사선택 문제였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
김수아 PD: 대안언론의 보도를 많이 봤다. 워낙 이번 사건을 둘러싼 루머가 많지 않았나. 가장 해결이 안 되는, 또 오해가 가득한 문제를 우리의 판단을 싣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

JTBC ‘썰전’ 스틸. 이철희, 김구라, 강용석(왼쪽부터)
JTBC ‘썰전’ 스틸. 이철희, 김구라, 강용석(왼쪽부터)
JTBC ‘썰전’ 스틸. 이철희, 김구라, 강용석(왼쪽부터)

Q. 그간 어떤 이슈에도 특유의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김구라, 강용석, 이철희가 ‘세월호 참사’ 편에서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더라. 그만큼 예민한 주제였다.
김수아 PD: 물론 출연자도 힘들어했다. 또 예민한 주제였던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수적이었다. 세 분에게 자료를 최대한 많이 전달했다. 출연자들이 접하는 매체도 제한적이니까, 다양한 자료를 드리고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Q. 원래 ‘썰전’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특히나 이번 방송에서는 강용석, 이철희의 전문성이 두드러졌다.
김수아 PD: 사실 정치가 아니더라도 대중이 잘 모르는 분야가 많다, 예를 들어 법안, 세금, 연금 등의 문제가 그렇지. 두 분이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정보를 재가공해 전달하는 게 ‘썰전’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과거에 민생 문제와 해외 직구 등의 주제를 다룰 때 시청률이 잘 나왔다. 시청자들이 ‘썰전’을 통해 보고 싶은 게 정치적 발언 뿐만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Q. 그럼에도 두 분에 대해서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하하. 연출자 입장에서 보는 두 사람의 이미지는 어떤가.
김수아 PD: 사실 두 분 모두 극단적인 스타일은 아니다. 사안에 따라 합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일 뿐이지. 예컨대 강용석은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야기한다. 어떤 면에서는 참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분이다. 반면 이철희는 세월호 참사 이후 몇 주간 “4월 16일을 잊으면 안 된다”는 말은 반복했다. 성향도 이미지도 다 다르다. 장단점이 있는 거다.

Q. 얼마 뒤 6.4 지방선거도 있고 뉴스 이슈가 참 많다. 준비하는 데 적잖이 부담되겠다.
김수아 PD: 뭐 그것도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예능 이슈가 적은 게 아쉽다. 먹잇감이 없으니까, 하하.

Q. 최근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는 먹잇감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편성 결정이 아직 안 난 프로그램도 있었던 터라 반응이 갈렸다. 혹시 방송보고 연락 온 PD는 없었나.
김수아 PD: 그게 참 그렇다. 방송을 본 분들은 별말씀을 안 하시는데, 꼭 기사로 나간 제목만 본 분들은 기분이 나쁘다는 반응을 보이신다. 원래 ‘썰전’이 ‘우리끼리만 했던 이야기를 방송에서도 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라, 막상 현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그 정도로 기분 나빠하지는 않는다. 아, 생각해보니 “방송 잘 봤다”고 연락해온 모 파일럿 프로그램 PD가 한 명 있었다, 하하.

Q. ‘썰전’이 방송 초기의 신선함을 잃고 자극적인 이슈로만 화제 몰이를 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다. 확실히 프로그램의 반향은 예전만 못한 것 같기도 하고.
김수아 PD: 인정한다. 1부에서는 뉴스, 2부에서는 방송 주제를 다루는 포맷으로 단순하게 시작했던 거라 그런 이야기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 거냐는 거다. 그 부분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

Q. 가장 간단한 방법은 패널에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닐까. 김희철의 투입도 그런 의도였던 것 같고. 하지만 아직 자신만의 캐릭터를 잡은 느낌은 아니다.
김수아 PD: 워낙 독특한 친구라 시간을 좀 주면 크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이돌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영입했던 친구다. 자기 생각도 확실하고 회사로부터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상황에 있으니까. 또 사석에서 보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굉장히 신선하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조리 있게 말 잘하는 사람이야 ‘썰전’에 많으니까 이런 존재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섭외한 건데, 아직 확 무언가에 꽂히지 못한 것 같다. 그 친구는 어디에 꽂혀야 잠재력을 발휘하는 친구라서.

JTBC ‘썰전’ 스틸. 허지웅, 강용석, 김구라, 박지윤, 김희철, 이윤석(왼쪽부터)
JTBC ‘썰전’ 스틸. 허지웅, 강용석, 김구라, 박지윤, 김희철, 이윤석(왼쪽부터)
JTBC ‘썰전’ 스틸. 허지웅, 강용석, 김구라, 박지윤, 김희철, 이윤석(왼쪽부터)

Q. 패널 한두 명 교체하는 것으로 프로그램에 큰 변화가 일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썰전’의 포맷이 안정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견고한 안정성도 방송프로그램에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김수아 PD: 변화에 대한 고민은 계속하되, 장점은 살려나가야 한다고 본다. ‘썰전’은 잡지와 같은 느낌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보다는 피처 기사나 기획 취재 기사에 가까운 거지. 분명 시청자들에게도 이런 부분에 대한 니즈가 있으니까 ‘썰전’이 이 정도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Q. 방송 초에는 ‘썰전’은 ‘종편이라서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 지금도 그 말은 유효한 걸까.
김수아 PD: 한계도 있고 가능성도 있다. 아이템 선정에 있어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섭외는 어려울 때도 있는 그런 복합적인 느낌? 요즘은 케이블채널이나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바뀐 터라, ‘종편은 아닌데 지상파도 아니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하하.

Q. 연출자로서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수아 PD: 늘 한 가지 생각을 품고 있다. ‘시청자의 수준은 높다’는 것. 그 눈높이를 맞추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이다. 이 생각을 ‘썰전’에 적용하면 이렇다. 뉴스를 모른다고 해서 수준이 낮은 건 아니지 않나. 뉴스도 비평할만한 가치가 있으며, 또 그 안에 들을만한 이야기가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썰전’이 확 변하는 날이 올까.
김수아 PD: 혁신적인 변화는 없을 거다, 하하. 갑자기 윤현준 PD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르네. “계속 잘 만들면 본다”고. 어쩌면 연출자로서는 시청률이 안 나올 때 쓰는 자조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연출자라서 더 필요한 마인드 같기도 하다. 어쨌든 계속 잘 만드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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