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무지개’ 속 도영의 잔인한 운명은 배우 정일우를 한 뼘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황금무지개’ 속 도영의 잔인한 운명은 배우 정일우를 한 뼘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황금무지개’ 속 도영의 잔인한 운명은 배우 정일우를 한 뼘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가족이란 대게 어떤 상황에서도 의지할 수 있는 탄탄한 울타리이지만, 지독하게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이들에게 가족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 후자에게 가족이란 이름은 이런 질문을 품게 만든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고통이 더 클까,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의 그늘이 더 짙을까.

배우 정일우가 지난 4개월 간 살았던 이름, MBC 주말드라마 ‘황금무지개’의 서도영도 같은 고민으로 괴로웠다. ‘악의 축’이나 다름없는 아버지 서진기가 지은 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았던 도영. 그에게는 남들에게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헤쳐 나가야 할 과제였다.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는 것조차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신기루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그늘진 인생을 살았던 도영이 끝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예상된 파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 잔혹한 운명을 살아냈던 정일우를 만났다.

정일우는 인터뷰로 만나게 된 모든 기자들에게 꽃다발을 건네 봄을 알렸다. 받는 이에게도 더 없이 반가운 향긋함이었지만, 주는 정일우에게도 일종의 치유가 되었으리라. 그는 그렇게 서서히 서도영으로부터 자신을 유리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정일우의 시선이 한참동안이나 기자가 가져온 로맹가리의 소설 ‘흰 개’에 머물렀을 때, 아직도 여전히 남아있는 도영의 그림자를 느낄 수 있었다. 도영처럼 로맹가리 역시 권총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눈이 더 없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Q. 로맹가리가 할리우드 스타, 진 세버그와의 결혼 생활 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연민의 시선이 담긴 자전적 소설이 바로 ‘흰 개’죠. 아마도 스타인 일우 씨가 공감할 요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기 때문에 가장 멸시당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는 영화계 스타’라는 대목이라던가.
정일우 : 그러네요. 그렇군요. 공감이 가요. (책 표지를 한참 응시하더니) 그런데 로맹가리 역시도 배우처럼 생겼네요. 영화 ‘대부’가 떠오르는 그런 얼굴이군요.

Q. 로맹가리가 바라본 진 세버그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스타라는 이름이 그 사람의 모든 면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스타들은 밖으로 나가면 어김없이 터지는 환호성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고요. 정일우 씨의 경우는 어떤가요?
정일우 : 저는 보통 어렸을 때부터 친한 친구들을 만나면 진짜 제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친구들이죠. 작품에 들어가면야 바빠서 자주는 못 보지만, 평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봐요. 그 친구들과 있으면 어릴 때의 내 모습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죠. 연기자 정일우가 아닌 인간 정일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에요. 가족들과 있을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정일우, 그는 이제 트렌디한 스타 보다 깊은 배우로 성장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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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렇지 않아도 ‘황금무지개’가 끝나고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고 들었어요. 그들이 지금 말하는 그 친구들인 거죠?
정일우 : 맞아요. 부산까지 운전을 해서 갔다 왔어요. 2박3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해소가 됐어요. 그리고 전 작품을 끝나면 잠수를 타는 편이에요. 일에서 벗어나 제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려고 하죠. 그럴 때는 책도 보고, 여행도 가고, 계획도 세워요. 작품에 들어가면서 깨진 저만의 흐름을 다시 맞춰놓기 위한 시간이에요. 작년에는 이 시간을 이용해 영어공부도 했었고요. 덕분에 학교(한양대학교)도 졸업할 수 있었죠(웃음).

Q. 아, 토익 공부였겠군요.
정일우 : 맞아요. 2주 동안 24시간 운영하는 학교의 법대 도서관에 박혀서 영어공부만 했었어요. 그래머(grammar) 위주로 공부를 했는데, 그래서인지 그래머는 거의 다 맞았죠. 그렇게 졸업장을 품에 안으니 뿌듯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어머니가 참 좋아하셨어요.

Q. 대학졸업장이 꼭 필요 없는 스타들의 경우, 졸업장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편인데. 학교에서 시키는 절차를 꼬박꼬박 밟아가다니, 은근히 모범생 같은 면도 있나 봐요.
정일우 : 일탈을 할 때는 해요(웃음). 그런데 그보다는 10년 만에 공부를 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사실은 졸업, 못할 거라고도 생각했었어요.

Q. 외국어 공부를 하면서 외국 활동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나요? 요즘은 한국배우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 낯선 풍경도 아니고요. 중국 시장 진출은 마치 당연한 일인 듯 여겨지기도 하고.
정일우 : 저 역시 당연히 해외시장에 관심이 있고 해외 팬미팅도 계획 중이지만, 해외에서 외국어로 연기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대사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그 맛을 외국인인 제가 적절하게 살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 때문에요. 그렇지만 확실히 외국팬들을 만나면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기는 해요. 또 저희 가족들이 중국과 인연이 있어 중국은 늘 관심이 가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Q. 막 끝낸 작품 이야기를 해볼까요. 사실 정일우 씨가 ‘황금무지개’를 한다고 했을 때 ‘의외’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트렌디 한 느낌의 스타였는데 주말드라마라니, 변화의 징조인가라는 추측도 해보았었고.
정일우 : 긴 호흡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장르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도 바탕에 있었고요. 이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고, 또 아직 저는 젊기 때문에 내실을 닦아야 한다고도 생각했죠. 그런 느낌으로 시작한 작품이 ‘황금무지개’였어요. 결과적으로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것을 느꼈어요. 선배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 이렇게 긴 작품에 주인공으로 참여해 극을 끌고 나갔다는 것은 제게 큰 의미로 다가와요. 덕분에 조금 더 여유있어졌달까요.

Q. 극의 길이도 길지만, 서도영이라는 캐릭터 자체도 연기하기 쉬운 인물은 아니었어요.
정일우 : 그래서 감독님 작가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대본을 여러 번 읽는 것은 기본이고요. 저는 캐릭터 분석을 할 때 대본을 완벽히 숙지한 다음 머리로 시뮬리에션을 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해요. 디테일한 손동작, 표정 변화도 미리 계산을 해두는 편이죠. 하지만 언제나 현장에 가면 바뀌기 때문에, 늘 열어두고 있어야 해요. 그런데 사실 이런 것들은 초반에만 해당되는 것이지, 역할에 몰입하고 나면 극 안에 빠져 있게 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Q. 아버지를 미워해야하는 아들이라니. 감정적으로 이해는 가되, 그 고통을 체감할 수 있었나요.
정일우 : 힘들었어요. 유일한 핏줄이자 사랑하는 아빠였는데, 그런 아빠의 악행을 저지하기 위해 감옥에 집어넣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나 역시 아버지를 감싸준 죄가 있으니 함께 교도소에 가겠다’라는 대사를 할 때는 눈물이 너무 나서 NG가 났죠. 그리고 서도영을 연기하면서 가족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어요. 어릴 때부터 불화가 많은 집안에서 자라면 반드시 성격에 드러나게 되는 것 같아요.

Q. 맞아요. 부모를 싫어하는 자식들이 결국 나중에 부모를 닮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잖아요. 그렇지만 굳이 극단적이거나 부정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부모를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참, 정일우 씨의 경우 아버지와 닮은 점은 무엇인가요.
정일우 : 아버지가 워낙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하시는 터라, 집에서는 과묵하세요. 식사를 하실 때도 그렇죠. 어머니가 재미없어 하시죠. 그런데 이제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Q. 어머니가 더 심심해하시겠어요.
정일우 : 맞아요. 그래도 어머니와 밖에서 데이트도 해요. 하지만 역시 집 안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밖에서 워낙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인터라, 집에서만큼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 같아요.

Q. 어머니와 데이트라니, 다정한 아들이네요. 그렇지만 진짜 연애도 해야 하잖아요. 이번 드라마에서는 유이 씨와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었는데, 대리만족이 되던가요?
정일우 : 저는 극중 연애에 대리만족을 느끼지는 않아요. 제 삶에 대입시키지는 않거든요.

Q. 얼마 전에는 MBC ‘무한도전’에 출연해 화제가 됐어요. 멤버들 사이에서 거의 ‘멘붕’ 상태인 정일우 씨를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정일우 : 정말 적.나.라.하.게 드러나더라고요(웃음). 정신이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재미도 있었고요. 뭔가 촬영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수다를 떠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Q. 예능 출연이 드물었는데, ‘무한도전’에 출연한 이유는요?
정일우 : 응원단 편이잖아요. 제가 축구를 워낙 좋아했고, 그래서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에 너무 가고 싶었어요. 실제 월드컵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제게는 꿈같은 일인데, 마침 작품도 끝냈고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Q. 혹시 앞으로는 예능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까요.
정일우 : 예능은 아마도 ‘무한도전’으로만 만족할 것 같아요. 가끔 예능에도 얼굴을 비출 수 있겠지만 역시 저는 좋은 작품으로 만나고 싶어요.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제공. 스타케이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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