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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그룹의 쇼케이스 취재 현장.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의상을 입은 멤버들이 요염한 웃음을 지으며 무대 위에 오른다. 노래가 시작되자 허리를 굽혀 엉덩이를 내밀고 손으로 다리를 쓸어 올리더니 가슴을 앞으로 쭉 내민다. 살짝 앉아 다리를 벌리고 위에서 옆으로 꺾는다. 아찔한 퍼포먼스 때문에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려보니 노래의 멜로디가 조금씩 들려온다.

새해 벽두부터 걸그룹들이 줄줄이 섹시 콘셉트로 돌아오고 있다. 걸스데이를 필두로 달샤벳, 에이오에이, 레인보우 블랙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데뷔 후 가장 농도 짙은 섹시 코드를 선보이고 있다. 2013년 계사년이 밝았을 때 한 대형 기획사의 관계자는 “기존의 섹시 코드만으로는 대중을 사로잡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2014년 갑오년이 밝자마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야한 퍼포먼스들이 이어지고 있다. 1년이 지나서일까?

타이밍 상으로 봤을 때 걸그룹이 다시 섹시해질 때가 됐다. 2013년에 소녀시대, 씨스타 등이 뮤지컬, 라스베이거스 쇼와 같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크레용팝과 같은 ‘콘셉트 돌’이 성공하는 사이 섹시한 걸그룹이 한동안 뜸했다. 그러한 타이밍에 걸그룹들은 작정한 듯 의상부터 안무, 표정에 이르기까지 농염함을 가득 담고 있는 섹시 콘셉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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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걸그룹에게 있어서 섹시함은 필수이자 통과의례다. 걸그룹이 섹시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아이돌그룹은 이미지를 판매하는 직업군이다. 섹시한 이미지는 귀여움, 발랄함, 친근함, 신비로움을 단번에 뛰어넘는다.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이 섹시한 퍼포먼스에 더욱 집중한다. 그 이유는 팬덤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이그룹의 경우 여성들이 중심이 된 열성 팬덤이 앨범과 머천다이즈를 구입해준다. 이에 비해 걸그룹의 팬덤은 분산된다. 열성 팬덤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일반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 그 대표적인 무기가 바로 섹스어필인 것이다. 섹시해져야만 하는 순환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여자 아이돌은 현재로서 아이유가 거의 유일하다.

국내 걸그룹이 섹시함을 추구한 역사는 짧지 않다. 1997년에 S.E.S., 핑클보다도 먼저 데뷔한 5인조 걸그룹 베이비 복스는 당시로서 꽤 농도 짙은 섹시함을 선보이며 남성 팬들을 열광시켰다. 물론 지금의 걸그룹에 비하면 당시는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수위가 무척 거세졌다. 2011년에 사회적 파장까지 일으켰던 포미닛의 ‘거울아 거울아’ 이후로 너도 나도 쩍벌춤을 시도하더니 이제는 다리를 벌리는 것은 필수이고, 심지어 바닥에 누워 성행위를 연상케 하는 몸짓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대중음악에서의 섹시 콘셉트는 뮤지션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이기 때문에 예술적인 범주로 바라볼 여지가 있다. 대표적인 섹시 아이콘으로 꼽히는 마돈나의 경우 성녀와 악녀를 오가며 섹시함을 미적으로 승화시켰고, 나중에는 여성성의 파괴 내지 확장이라는 메시지를 섹스어필 위로 실어 날랐다. 58년 개띠인 마돈나가 아직도 롱런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섹시함을 확실한 메시지와 함께 멋진 무대와 음악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대중은 마돈나를 단지 야한 여성이 아닌, 멋진 여성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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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걸그룹의 섹시한 퍼포먼스가 걱정되는 것은 그것이 다분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가슴, 엉덩이, 심지어 성기 주변에 이르기까지 특정 부위를 강조해 보여주는 더욱 직접적인 성적 묘사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퍼포먼스들이 노래가 가진 메시지와 점점 무관하게 흐르면서, 대중은 노래는 듣지 않고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걸그룹이 뮤지션이 아닌 성 상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무수한 섹시 퍼포먼스가 있어왔다. 그 중에서 노래가 가진 스토리텔링이 퍼포먼스와 일체화를 이룬 엄정화 ‘초대’, 박지윤 ‘성인식’, 이효리 ‘10Minutes’, 가인 ‘피어나’와 같은 곡들이 있었다. 이 곡들이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섹시한 퍼포먼스와 가사가 가진 메시지가 조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의 팝스타 비욘세는 정규 5집 ‘비욘세(Beyonce)’에서 무려 17개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보는 음악’의 콘셉트로 돌아왔다. 음반에 첨부된 DVD를 통해 이 모든 영상을 볼 수 있다. 영상 안에는 비욘세가 전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섹시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가 압도되는 이유는 비욘세의 음악이 너무나 훌륭하기 때문이다. ‘보는 음악’의 콘셉트가 거꾸로 음악에 더욱 집중하게 만드는 좋은 예다.

대중은 이미 걸그룹의 섹시한 퍼포먼스에 익숙해져 있다. 이제는 거의 내성이 생겼을 정도다. 때문에 내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자극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후년쯤에는 무대 위에서 물고 빨고 하는 행위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게 될 지도 모른다. 음악적인 성취 없이 단지 야해지는 것에만 몰두하다 되면 바닥은 의외로 빨리 드러날 수 있다. 섹시 코드가 피할 수 없는 원죄라면,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는 야해지기보다 멋있어질 필요가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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