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감독
양우석 감독
영화 ‘변호인’이 뜨겁다. 한국영화 역대 9번째 ‘1,000만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그리고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이유로 개봉 전부터 많은 편견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후 국민을 움직였다. 2점으로 시작한 포털사이트 네이버 관객 평점은 어느덧 9점대를 바라보고 있다. 참으로 우여곡절이 참 많았던, 이런 저런 말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궁금했다. 이 같은 논란 가득한, 아니 만들겠다는 그 순간부터 논란이 예상되는 이 영화를 만든 주인공이 말이다. 그는 극 중 주인공인 송우석과 같은 이름인 양우석 감독이다. 개봉 전부터 그리고 개봉 후에도 수많은 인터뷰 제의를 거절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감독이기도 하다. 처음 영화를 기획했을 당시부터 1,000만 흥행을 이룬 현재까지, 그 과정을 양우석 감독에게 직접 들었다.

Q. 영화 개봉 후, 아니 개봉 전부터 인터뷰 요청이 많았을 것 같다. 그동안 인터뷰를 전혀 하지 않다가 이렇게 뒤늦게 응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양우석 감독 : 일단 더 이상 미루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근 안타까운 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맥이나 행간의 의미는 없어지고, 단어나 문장만을 가지고 조그만 프레임에 가둔 채 확대 생산한다. 그게 오해의 오해를 낳고, 진영 논리에 갖다 붙여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영화가 나왔고, 지뢰밭을 걷는 다는 느낌이었다. 자칫 말을 보탤 경우 그 프레임에 갇혀 또 다른 논란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Q.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일종의 회피라고도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개봉되면 영화적인 측면 외에 이런 저런 다양한 말들이 나올 거란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양우석 감독 :
의도적인 회피도 있었던 건 부인을 못할 것 같다. 사실 콘텐츠가 먼저 보이길 원했다. 분노를 일으키고, 양쪽을 분열 시키는 게 아니라 이해와 성찰이 목표였다. 이건 추호의 거짓도 없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시선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본다. (노 전 대통령의) 순수, 순진함에 대해 찬양하는 분과 경멸 증오하는 분이다. 대다수는 그 중간에 있다고 본다. 또 ‘갈라파고스의 시기’라고 부르는 때가 있다. 오랜 시간 생명의 근원을 연구하던 찰스 다윈은 우연히 갈라파고스 제도에 가서 짧은 단면을 보고 ‘종의 기원’을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다윈이 가서 본 건 앵무새 몇 마리와 섬마다 생태적 환경이 다르다는 것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갈라파고스의 시기가 바로 (영화 속 사건이 있었던) 이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기가 대통령이 됐을 때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본다. 반대하시는 사람들도 노 전 대통령이 지닌 초기의 분노와 실존적 고민, 선택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Q. 소위 말해 흥행 대박이다.
양우석 감독 :
사실 흥행 보다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영화를 제대로 못 만들면 많은 분들에게 잘못하는 거다. 또 오해만 불러일으킬 테고. 그래서 상업적 성공보다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는 게 더 크다. 이 정도 흥행이면 많은 분들이 이해하고 있다는 건데 그 안도감이 더 크다. 며칠 동안 평점 2점대였다. 최저 신기록을 세워보자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8점대다. 2점대부터 8점대까지 다 찍어본 영화는 없을 것 같다. (웃음)

양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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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봉 후 여러 반응을 예상했을 텐데 가장 두려웠던 반응은 무엇인가.
양우석 감독 :
영화의 만듦새가 좋지 않아 ‘그 영화는 볼 필요도 없고, 쓰레기 같은 정치영화’란 평가다. 의도를 떠나 많은 고생을 했던 스태프, 배우들의 노력이 허사가 되고, 두 번 다시 시도되는 일은 없게 될까 두려웠다. 개인적으로 1980년대를 이해하는데 두 가지 시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분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고, 다른 한 분이 고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두 분을 통해서 80년대를 바라보면 산업화부터 민주화까지 다 볼 수 있다. 한 분은 청와대 안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고, 또 한 분은 저 멀리에서 법의 보호를 위해 노력했다. 영화가 나올 즈음, 김재익 평전이 처음으로 발간됐다. 80년대가 더 많이 보일 수 있을 것 같아 개인적으로 기쁘다.

Q.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언제부터인가.
양우석 감독 :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한 동기는 최근 몇 년 동안 젊은 친구들을 만나고 가르치면서다. 젊은 친구들이 아쉬웠던 게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굉장히 피곤해 한다는 거다. 두 세대 전은 폐허였고, 30년 전만 해도 민주화는 요원했고, 산업화도 걸음마 시기였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그 조건들을 혁파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모든 측면에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뤘다. 그런데 문제는 30년 전 이야기를 모른다는 거다. 역사를 빨리 지우고, 빨리 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꼭 한 번 이 이야기를, 부모 세대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애초 웹툰으로 만나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 찰나에 학교 선배인 최재원 대표(‘변호인’을 제작한 위더스필름 대표)를 만났고, 영화로 하면 어떻겠냐고 하는 거다. 그래서 조금 고민하다 좋은 감독님과 좋은 배우들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이왕 이렇게 된 거 연출을 직접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는 거다. 여기서 멈추는 건 또 못 참겠다 싶어 얼떨결에 ‘어~어~어!’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 (웃음)

Q. 갑자기 연출까지 맡게 된 것을 보니 초반에는 뭔가 쉽지 않았나 보다.
양우석 감독 :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독립영화로 하자는 말도 나왔다. 나 역시 이야기를 만들어서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동의를 했다. 그런데 가장 연기 잘하고, 신뢰를 가진 송강호가 들어오면서 커졌다. 그렇게 경황없이 시작하게 됐다. 상업적인 성공보다 이해와 성찰이 아니고 다른 쪽으로 해석되면 어떨까를 고민하면서 진행했던 것 같다.

Q. 영화의 모티브인 ‘부림사건’이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건가.
양우석 감독 :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된 건 다들 알다시피 5공 청문회다. 당시 눈부신 활약에 박수를 보낸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형 중 하나가 ‘춘향전’인데 많은 분들이 그 모습을 연상했던 것 같다. 고졸 출신이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국회의원이 됐고, 서슬 퍼런 권력에 소리치던 모습에서 이몽룡의 ‘암행어사 출두’를 떠올렸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다가 부림사건도 알게 됐다. 또 1990년 민자당 합당 당시에도 박차고 나왔다. 이건 뭘까 싶은 거다. 변호인이 됐을 때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신념을 행해 달렸고, 정치인이 돼서 전력을 다했던 건 동서화합이다. 물론 그 벽은 끝끝내 뛰어 넘지 못했지만. 여하튼 대통령이 되면서 사실 이 이야기는 버려졌는데 고인이 됐고, 먹먹하던 차에 젊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를 없앨 게 아니구나, 해볼 때가 됐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양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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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80년대 당시에 양우석 감독(88학번)은 뭘 했나. 말하는 것만 봐서는 학생운동 등 사회적인 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을 것 같다.
양우석 감독 :
학생운동은 의외로 안 했다. 대신 영문학, 철학, 역사 등을 다 배워보자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내가 대학 다닐 시절에는 경제성장이 잘되던 시기여서 취직 걱정이 없었다. (웃음) IMF까지는 성장했으니까. 민주화가 더딜지언정 발전해가는 건 사실이었다. 여하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고, 공부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석사나 박사 보다는 폭넓고 얇게. (웃음)

Q. 그럼 정치적 성향은 어느 쪽인가.
양우석 감독 :
웹툰 ‘스틸레인’을 연재할 때엔 ‘저런 극우가 있나’란 이야기도 들었다. 요즘엔 아시다시피. 나는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극우와 극좌를 왔다갔다한다. (웃음) 요즘 들어서는 이념이라는 것보다 다시 태도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지 그런 태도 말이다.

Q. 실화와 허구가 뒤섞여 있는 것 같다. 온라인에서는 실제 인물과 극 중 인물을 비교하기도 하더라. 어떤 식으로 이야기의 구성을 했던 건가.
양우석 감독 :
모티브는 실화지만, 허구가 많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보통 명확한 이해를 위해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를 설정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송우석과 차동영이다. 신념의 강도는 차동영도 결코 적지 않은데 그 목표가 너무 신성해서 수단과 방법은 중요치 않은 사람이다. 반면 송우석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법을 가지고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인데 부조리한 사건을 만나고 분노한다. 차동영하고 경계선이 여기서 생긴다. 차동영은 신념이 생긴 뒤 성찰하거나 반성하지 않았는데, 송우석은 어떤 상황을 마주하면서 반성하고, 회의한다. 이처럼 우리 한국사가 만들어낸 신념을 가진 두 남자의 이야기다. 지금 실화 인물과 싱크로율을 맞추고 그러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옛 사건을 공부하고, 생각하고, 성찰해주는 건 매우 반갑다.

양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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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인’을 제목으로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리고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던 건가.
양우석 감독 :
실제 법정에선 변호인으로 한다. 그리고 의사, 판사, 변호사 등은 웬지 ‘마담뚜’가 등급 나누는 기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처음부터 ‘변호인’이란 제목이었고, 그건 변하지 않았다.

Q.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에 좋은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양우석 감독 :
배우들이 시나리오 문장에 대한 이해력만 높은 게 아니라 문맥과 영화적 고민까지 같이 해줬고, 기막히게 해석 하고 표현해 줬다. 아무래도 입봉이다 보다 서투름이나 미숙함은 각오했던 것 같다. 그런 암묵적인 합의가 많이 생겼던 것 같다.

Q. 배우들 캐스팅에 조금은 애를 먹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정치적 색깔을 입을 수밖에 없는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기획 등 영화 관련된 일을 계속 해 왔다곤 하지만 어쨌든 데뷔 감독이다.
양우석 감독 :
시나리오도 있지만, 송강호와 연기해보고 싶다는 분이 많았다. 그게 서로 격려도 되고, 분발할 수 있는 자극도 됐다.

Q. 그럼 모두 원하는 대로 캐스팅이 된 건가.
양우석 감독 :
(캐스팅도) 너무 우당탕탕 이었다. ‘이러면 좋지요’ 하면 캐스팅됐다고 연락오고, ‘이번에도 됐다고요’라고 물어보는 분위기였다. ‘설마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배우들까지 하겠다고 하는 거다. 만족 정도가 아니라 감격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였다.

Q. 임시완도 마찬가지인가. 출연 분량을 떠나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다. 단지 고문당하는 힘든 역할이라서가 아니라 그 친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질 수 있다.
양우석 감독 :
일단은 부산 사투리를 완벽하게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임시완은 심지어 극 중 진우와 마찬가지로 부산대 공대를 다니기까지 했다. 30년 전 선배 이야기였던 셈이다. 그 때문인지 집중도나 몰입도가 높았던 것 같다. 그리고 김영애와 모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닮아 있다. 그런 것들이 좋았다.

Q. 임시완의 합류도 만족을 넘어 감격이었던 건가.
양우석 감독 :
임시완은 감격보다는 각오다. (웃음) 우리 둘은 같은 입장이었다. 둘 다 처음이니까. 생각보다 20대 초반 연기자 폭이 넓진 않다. 그리고 결코 쉬운 배역이 아니라서 각오는 물론 노력과 의지가 굉장히 필요했는데 임시완이 그런 것들을 잘 어필했다. 감사하게도 잘 나와서 덜 미안하다. 고문을 누가했겠나. 물에 들어갈 때 ‘컷’을 외쳐야 나오는 거니까 내가 고문을 한 거다 다름없다. 그래서 죄송하고 감사하다.

양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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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에게 ‘변호인’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양우석 감독 :
개인적 의미보다는 우리 모두에게 의미가 큰 것 같다. 나 혼자였으면 웹툰으로 했을 거다. 영화라는 건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기천명의 노력과 수고가 있는 것 같다. 실제 성공에 대해선 실감을 못해서 덤덤하다. 다만 이해를 받고 있다는 게 반갑고 기쁘다는 게 가장 적확한 표현이다.

Q. 영화가 전하는 사회적 파장이 상당하다.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나.
양우석 감독 :
글이나 영화는 ‘사이렌’ 같은 역할 밖에 못한다. 주위를 환기시키는 역할인 셈이다. 불을 끄고, 사고를 수습하는 건 주위에 계신 분들이 사이렌 소리를 듣고 하는 거다. 내러티브가 가진 한계일 수 있지만, 그게 의무라고 본다. 때문에 행동을 취해주면 가장 고마울 것 같다. 일개정치인이 잘못했다고 비난하는 것보다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있어 정치란, 민주주의가 뭔가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가 단어 몇 개를 프레임이 가둬 논란만 키우고 있는데 이건 인문학적인 학살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적인 학살 그 다음은 민주주의가 죽는다. 그런 풍토가 만들어지기까지 침묵했던 결과가 지금 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부터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하는데 영화가 서문을 열어준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Q.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니 그보다 우연찮게 감독으로 첫 발을 뗐는데, 앞으로도 연출을 계속 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양우석 감독 :
아무 생각 없다. 얼떨결에 이것도 시작했고, 너무 준비를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폐를 끼친 게 아닌가 싶은 마음도 크다. 사실 은퇴할 나이에 입봉해서 민망하기도 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열심히 해보겠다. 그리고 다음에는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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