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 이미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 이미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스틸 이미지

프랑스의 차세대 여배우 레아는 ‘그랜드 센트럴’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이미 그녀를 빼놓고는 프랑스 영화를 논할 수 없다.

“안 돼!” 영화 시사회에서 나도 모르게 탄성이 흘러나왔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의 한 장면이었다. 제인 역의 폴라 패튼이 잔인하게 뒷발차기를 선사하자, 암살자 사빈은 두바이의 초고층 건물 밖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허망한 죽음을 맞는 그녀가 바로 레아 세이두였다. 이 장면 이후 ‘미션 임파서블’을 그만 보고 싶을 정도로 흥미가 뚝 덜어졌다. 레아는 이 영화의 오프닝부터 프렌치 시크의 도도함을 선사하려고 작정한 듯, 경쾌하게 구두 소리를 내면서 걸어와 총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유유히 도망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를 넘어 곧 세계적인 스타가 되리라 직감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레아는 스무 살에 찍은 프랑스 영화 ‘나의 친구들’(2006)로 데뷔했고, 이미 두 편의 할리우드 영화로 검증을 받은 적이 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과 ‘로빈 후드’(2010)였다. 전자는 멜라니 로랑을 발견하게 만든 영화지만, 오프닝에서 레아의 새침함도 돋보였다. 한스 대령(크리스토퍼 왈츠)이 라파디트의 농장에 방문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말이다. 능구렁이 왈츠는 어설픈 불어를 하면서 “역시 소문대로 딸들의 미모가 뛰어나다!”고 극찬을 하는데, 그때 딸 샬롯 역으로 나왔다. 후자에서는 영웅 로빈 후드(러셀 크로우)에게 질투를 느끼는 존 왕의 아내 이사벨라로 등장했다. 잠깐 등장하지만 긴 머리카락을 아래로 늘어트린 레아는 마치 샴푸의 요정처럼 빛났다. 존과 침실에서 뒹굴면서 웃음꽃을 피우는 그녀는 스스로 “다산의 여왕이 되겠다”고 외친다.

영화 ‘고잉 사우스’ ‘시스터’ ‘그랜드 센트럴’ ‘페어웰, 마이 퀸’ 스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영화 ‘고잉 사우스’ ‘시스터’ ‘그랜드 센트럴’ ‘페어웰, 마이 퀸’ 스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영화 ‘고잉 사우스’ ‘시스터’ ‘그랜드 센트럴’ ‘페어웰, 마이 퀸’ 스틸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물론 단역이나 조연으로 나온 이 영화들을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순 없다. 레아의 존재감을 처음 확인한 것은 청춘 로드무비 ‘고잉 사우스’(2009)였다. 이미 오프닝부터 레아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국 밴드 카사비안의 강렬한 음악(‘shoot the runner’)에 몸을 맡기며 훌훌 옷을 벗는다. 2분 동안 그녀의 끈적한 몸부림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3% 정도만 과장해서 말한다면, 아직까지 이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그녀의 초기작에 대해선 일단 침묵하는 것이 좋다. 또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시스터’(2012)에선 참 이해심 없는 누나 루이로 등장했다. 동생 시몽이 물건을 훔쳐서 번 돈을 받아서 남자 친구와 놀기에 분주하지만, 결국 누나 이상의 비밀을 간직한 것이 드러난다. 그녀의 무표정함이 영화의 먹먹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었다. 더욱이 작년 12월에 개봉했던 ‘페어웰, 마이 퀸’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다이앤 크루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세밀하게 보여줬다. 사실 앙투아네트에 초점을 맞춘 영화가 아니라 그녀의 책 읽어주는 시종 시도니의 이야기였다. 앙투아네트가 가브리엘(비르지니 르도엔)과의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시도니로 나온 레아는 가브리엘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선택한다. 노파심에서 하나 덧붙이자면, 혹시라도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온 그녀를 찾아보려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잘 알려지지 않은 14분짜리 단편 ‘타임 더즌트 스탠드 스틸’(2011)을 추천하고 싶다. 연인과의 작별을 앞두고 과거 속으로 빠져드는 영화에서 그녀의 춤 솜씨를 엿볼 수 있다.

14분짜리 단편 ‘타임 더즌트 스탠드 스틸’
14분짜리 단편 ‘타임 더즌트 스탠드 스틸’
14분짜리 단편 ‘타임 더즌트 스탠드 스틸’

그리고 작년에 두 편의 문제작에 출연했다. 하나는 원자력 발전소 노동자들의 사랑을 그린 ‘그랜드 센트럴’이다. 삼각관계에 빠지는 캐롤로 등장한 그녀는 노브라의 위력으로, 남심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강가의 풀숲에서 밀애를 나누는 그녀와 공장의 사이렌 소리가 뒤섞이면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또 하나는 그녀 연기 경력에 이정표가 된 ‘가장 따뜻한 색, 블루’다. ‘그랜드 센트럴’의 짧은 헤어스타일에 농염한 파란 색이 조금 더해진 느낌이다. 일찍이 ‘누드 모델’(1991)에서 엠마누엘 베아르가 4시간 동안이나 알몸을 보여준 이후, 가장 충격적인 노출이 등장한다. 레아는 실존주의와 클림트에 푹 빠진 미대생 엠마로 등장해, 여성의 모든 것을 보여줄 정도로 용감하게 동성애를 연기한다. 이 연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딱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퇴폐미를 발산하는 레아를 3시간이나 바라보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신비하다는 점이다. 그녀의 매력은 하나도 휘발되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돌이켜 보면, 파리에서 고전미와 도발적인 색채를 모두 간직한 여배우가 등장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녀의 얼굴은 참 오묘한 느낌을 준다. 눈가의 주름(어둠)은 다분히 잔느 모로와 닮았고, 새침한 입술이 열릴 때마다 보이는 약간 벌어진 앞니는 어딘가 베아트리체 달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반적으로는 도도한 무표정이지만, 다소 오뚝하고 귀여운 코를 지녀서 부드러움도 슬쩍 솟는다. 어쨌든 뱅상 카셀과 호흡을 맞춘 ‘미녀와 야수’(미녀 역)의 파리 개봉을 곧 앞두고 있으니, 그녀의 아름다움에 또 찬사를 보낼 일만 남았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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