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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했다. 지난달 14일 종방한 KBS2 ‘비밀’에 출연했던 배우 최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비밀’이 KBS가 ‘적도의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등을 통해 그간 선보여온 정통 멜로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만큼 지성-황정음, 배주빈-이다희가 그려내는 감정선은 무척이나 농도가 짙고 깊었다. 하지만 최웅은 그 틈새를 비집고 자신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성공했다. “광수야” 부르는 말에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다가도, 이내 코믹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반전이 있는 연기. 그가 ‘비밀’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다.

작품을 통해 얻은 ‘목석남’이라는 수식만큼, 실제로 만나본 최웅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굳은 심지의 소유자였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연기자로 데뷔해 아무리 작은 배역을 맡을지라도 흔들림 없이 연기자의 길만을 바라본 그의 의지는 그야말로 ‘목석’이었다. “아쉬운 연기를 펼친 뒤엔 죄책감마저 느껴졌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한 남자의 성장통의 흔적이 역력했다.

Q. ‘비밀’에서 항상 민혁의 곁을 지키는 광수 역을 맡았다. 감정 표현의 폭이 넓지 않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겠다.
최웅: 항상 감정의 기복이 없이 사장 조민혁(지성)을 보필해야 하는 광수 역은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다. ‘목석남’이라는 수식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대사도 “예”, “아니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뿐이라 자칫하면 기능적인 배역에 그칠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대본에 나온 광수의 대사는 적었지만, 상황을 나타내는 지문은 많았다. 짧은 대사라도 다양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Q. 광수와 같은 비서 역할은 전작 ‘나인’에서도 맡았었다. ‘나인’에서의 경험이 이번 작품에서 큰 도움이 되었는가.
최웅: 케이블채널 tvN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도 비서 역을 맡았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땐 정말 기능적인 배역이었다. 건조한 말투로 정보 전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비밀’에서 광수 역을 연기하며 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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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집중한 부분이 있나.
최웅: 이응복 PD에 대한 믿음도 컸다. 리허설을 할 때 여러 방식으로 표현을 연구해서 보여드리면 조언을 해주셨다. 가능성을 열어 두고 광수 캐릭터를 찾아가자고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디테일한 표현을 하려 집중한 게 적중한 것 같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 사장님(지성)의 모습을 보며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됐고 결국, 광수도 성장하게 됐다. 광수가 감정적인 변화를 겪게 되면서 강유정(황정음)과 사장님을 연결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된 거다.

Q. 대중들이 어떤 배우를 발견할 때는 외모, 목소리, 존재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거다. ‘비밀’을 통해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직접 작품 속에서 연기했던 사람으로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을 듯하다.
최웅: 사실 연기를 한 뒤 아쉬움이 컸다. 조금 과장해 말하자면 ‘죄책감’마저 느껴졌다. 특히 후반부에 광수가 점점 코믹한 모습을 보이는 장면이 잦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연기한 뒤 내가 무엇을 했나 싶어서 “다시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되물은 적도 많다. 그때마다 교도소 친구들(정수영, 문지인, 황석정)의 조언에서 힘을 얻었다. 아무래도 연기 경험이 많은 분들이다 보니 내가 극에 조화롭게 녹아들 수 있도록 호흡을 맞춰주시더라.

Q. ‘비밀’ 속 유일한 20대 남자 배우다 보니, 배우들의 애정을 듬뿍 받았을 것 같다(웃음).
최웅: 이번에 광수 역으로 조명을 받을 수 있었던 데도 그 부분이 컸다. 주인공 외에 20대 남자는 나뿐이니까 단연 눈에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장에 같은 나이 또래 배우가 없어서 외로움도 느꼈다. 다 일장일단이 있는 거다(웃음).

Q. 배우로 활동하기 전에 모델 일을 먼저 시작했다. 원래 모델을 꿈꿨던 건가.
최웅: 고등학교 시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에 푹 빠진 후 뮤지컬학과에 지원했다. 하지만 뮤지컬학과에 특차로 합격하고 입학 전 모델과로 전과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뮤지컬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모델 일은 어릴 때만 할 수 있다는 주변의 조언도 한몫했다(웃음). 스무 살이 되던 해, 죽기 살기로 트레이닝을 받고 무대에 서며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기를 1년, 처음으로 기획사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병역비리 문제로 연예계가 떠들썩했고, 더 시간을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입대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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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대 후의 생활을 어땠는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최웅: 군 제대 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프로필 사진부터 찍고 광고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얼굴을 비쳤으나 마음만큼 쉽게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매니저도 없이 프리랜서로 분주히 활동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젊었을 때 군대에 간 걸 후회하기도 했다(웃음).

Q. 2011년 KBS2 ‘각시탈’로 데뷔전을 치렀다. 첫 작품인 만큼 감회가 남달랐겠다.
최웅: ‘각시탈’에 출연하기까지 연기 트레이닝을 많이 받았지만, 여전히 배우로서는 백지에 가까웠다. 첫 녹화를 마치고 방송을 모니터하는데 정말 못 봐주겠더라(웃음).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혼자서 내면 연기를 하는 꼴이었다. 28부작 중편 드라마 ‘각시탈’을 하며 8개월간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배운 것들이 ‘비밀’에 출연해서야 표출이 된 것 같다.

Q. 모델 일을 그만두고 작품 활동을 하며 힘들었던 때는 없었는가. 두 분야가 워낙 다른 일이다 보니 적응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최웅: 특히 2013년은 지옥 같은 한 해였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 경제적인 부담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잔병치레도 잦았다. 연기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연기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밤새 술을 마시며 답답한 마음을 풀었다. 그런 방탕한 생활 중에 ‘오직 연기만 바라보고 다시 시작해보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봤던 작품이 바로 ‘비밀’이었다.

Q. 많지 않은 작품 수에도 이렇게 조명을 받는 걸 보면 분명 ‘배우 최웅’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당신만의 무기가 있다면 무엇일까.
최웅: 무기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반전’이라고 생각한다. 광수도 진중함 속에 묻어나오는 코믹한 요소가 있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항상 연기할 때면 어떻게 대조를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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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구체적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 건가.
최웅: ‘비밀’을 마치고 나서야 조금씩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게 됐다. 모처럼 얻은 기회인 만큼 놓치고 싶지 않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예를 들자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경비실 아저씨 혹은 생활용품 같은 배우?(웃음)

Q. 연기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을 보니 당신이 활짝 만개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웃음).
최웅: 남자 배우로서 가장 멋있을 나이는 30대 후반이라고 생각한다. 30대 후반에는 한 가정을 꾸린 가장으로서, 배우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작품을 여유롭게 이끌 수 있는 능력도 생길 것 같다. 더 나아가 40대에는 브루스 윌리스처럼, 50대에는 성룡처럼 액션 연기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잘하지는 못해도 액션은 항상 나의 꿈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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