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뭐 봤어?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엄마와 여자 앞에서, 인생은 공집합이라는 착각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7,8회 2013년 11월 30일, 12월 1일 오후 10시

다섯 줄 요약
슬기(김지영)는 여행에서 돌아오고 싶어하고, 이에 은수(이지아)는 슬기와 서울로 돌아온다. 돌아온 슬기는 아빠 태원(송창의)과 지내고 싶어하고, 은수는 그런 슬기가 야속하게 느껴져 서글프다. 한편, 준구(하석진)는 다미(장희진)의 기획사 관계자에게 전화로 경고를 듣고, 손여사(김자옥)는 준구에게 다미와의 관계를 추궁한다. 은수는 결국 슬기를 태원에게 보낼 결심을 하고, 태희(김정난)를 만나 슬기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슬기가 태원에게 간 뒤, 은수와 순심(오미연)은 오열한다.

리뷰
남편과의 불화가 아니라 시댁과의 불화를 견디지 못해 이혼한 여자. 그리고 여자로서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 재혼한 여자. 이 두 여자 사이에는 그 누구보다 단단한 자존심이 자리잡고 있다. 존중받는 사람이고 싶다는 자존심, 사랑 받는 여자이고 싶다는 자존심이 그것이다. 자존심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여자의 인생에서, 시댁의 핍박으로 인해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크다. 그리고 다시금 재혼을 해 여자로서의 행복을 되찾아야 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도 중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사이에 자신의 책임으로 감당해야 할 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점점 커가지만, 아직 엄마의 인생으로부터 분리가 될 준비가 안된 나이에 ‘분리 된 자아’를 요구 받는다. 채 성글지 못한 자아를 갖게 된 아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설픈 자아 때문에 엄마에게 버림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은수(이지아)와 슬기(김지영), 그리고 태원(송창의)은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며 현실을 살고 있는 수 많은 재혼 및 이혼 가정의 문제를 끄집어 낸다. 여기까지, 분명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흔하면서도 민감한 문제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을 다루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의 애매모호한 태도와 성의다. 무엇보다 은수는 딸 슬기에게 ‘자신도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의 인생이 있음’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막 자아가 생겨나기 시작한 슬기가 자신을 엄마로서 믿고 일방적으로 따라주기를 기대한다. 미처 엄마에게서 떨어질 준비가 되지 않은 아이를 두고 ‘엄마와 여자’ 두 자아를 분리해 주길 바라면서도, 정작 은수 자신은 아이에게 생겨나기 시작한 자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은수는 이분법적 사고로 ‘아이’와 ‘자신’의 자아를 분리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 속에 이미 교집합으로 들어온 ‘엄마’로서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다. 충분히 영글지 못한 슬기 역시 엄미가 ‘엄마이자 여자’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듯, 은수 역시도 딸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은수가 자신의 ‘여자’로서의 삶을 택하면서도, 그 속에 이미 ‘슬기’라는 존재가 들어와 있음을 간과하면서 생긴 문제다.

중요한 건 ‘세 번 결혼하는 여자’가 이 섬세한 감정의 변화와 이로 인해 성숙해나갈 은수의 이야기를 설득력있게 풀어가기보다는 다소 답답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당당하게 항변하다가도 슬기를 탓하는 모습이나, 때로는 징그러울 만큼 엄마에 대해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외면하려 드는 아이 같지 않은 슬기의 모습은 언뜻 두려움마저 안긴다.

삶은 공집합이나 합집합이 아닌 ‘교집합’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 인물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학교의 학생이며, 조직의 구성원이다. 이처럼 인물은 수 많은 관계와 그 교집합 속에서 하나의 원을 만들어 낸다. 그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만 인물의 고뇌와 갈등은 비로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속의 인물들은 모두가 합집합 혹은 공집합을 원한다. 하지만 인생은 자신이 판단하는 대로 방향을 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그 속의 역학을 고려해야만 한다. 때문에 애초에 그것에 대해 관심 가질 생각도 없었던 은수가 비로소 지금에야 겪는 후회와 고통은 오히려 안타깝기 보다는 오히려 인과응보처럼 보인다. 여자로서의 삶을 택한 건 좋았지만, 이미 원하든 원치 않든 ‘엄마’라는 이름도 갖게 된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은 당연한 것이다.

이처럼 은수를 비롯 ‘세 번 결혼하는 여자’ 속 하나 같이 제대로 자신의 자아를 충분히 만들지도 못한 채, 자존심부터 알아버린 인물들은 자신을 둘러싼 혹은 자신에게 요구되고 있는 수 많은 역할에 어느 하나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책임감 없는 이분법적 행동이나 사고는 보는 이들을 서서히 지치게 만들어가고 있다. 현실감 있는 드라마와 자칫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드라마는 한 끗 차이다.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나아가고 있는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어떻게 이들의 인생을 설득시켜 나갈 수 있을까.

수다 포인트
- 접촉사고만 내면 ‘여자’ 탓 하는 꼰대는 한 대 쥐어박고 싶더군요.
- 숨겨진 여자로라도 살겠다며 전전긍긍하는 다미, 광모에게 미련을 못 놓는 현수. 아이를 두고도 급한 재혼을 결정한 은수, 결혼식 깽판 놓은 광모에게 ‘이별 여행’ 제안하는 주하까지. 한결같이 줏대들도 없네요.
- 여자가 마흔 넘으면 마흔 여덟 재혼 자리도 감지덕지 해야하는 건가요… 현실적이라기엔 성차별적 상황이 너무 많아 불편한 건 저 뿐인지…

글. 민경진(TV리뷰어)
사진제공.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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