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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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가 범죄자라면 기분이 어떨까? 또는 우리 아빠가 혹시 범죄자가 아닐까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하루에도 수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매일같이 뉴스 시간을 꽉 채운다. 생각해보면 사건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분명 누군가의 가족이다. 영화 ‘공범’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손예진은 누구보다도 믿었던, 자신을 끔찍하게 여기는 아빠를 의심하게 된다. 잔인한 상황에 놓인 손예진은 경험해보지 못한, 알 수 없는 감정을 쏟아내야만 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감정 소비가 많았고, 오열하다 탈진까지 왔다. 눈물을 참 예쁘게 흘렸던 배우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아빠를 의심하는 딸, 다은의 삶을 잠시나마 살았던 손예진을 만났다.

Q. ‘공범’ 촬영을 마친 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개봉을 앞두고 그때 기억을 떠올리는 감회가 색다르겠다.
손예진 :
심지어 다른 작품 하나를 끝냈고, 다른 작품을 또 하고 있으니까. (웃음).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하나씩 떠올리고 있다.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힘든 영화를 찍었구나 싶다.

Q. 아버지를 의심한다는 게 드라마 ‘상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손예진 :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하면서는 바로바로 잊어버린다. 또 드라마는 정해진 게 아니라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 드라마를 하면서 ‘공범’을 떠올릴 정도의 여유가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쯤 와서 정리된다.

Q. 극 중 맡은 다은은 아버지가 유괴 살해범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심하는 인물이다. 이런 상황이 쉽게 이해되진 않을 텐데 작품 선택할 때는 어땠나.
손예진 :
전체적인 게 무서웠고, 소름 끼쳤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가까이에서 일어나면 어떨까란 무시무시한 생각도 들면서 너무 어렵고, 심리적으로 안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실은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이걸 하는 순간 아플 것 같은데, 감정을 잘 콘트롤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배우들은 한 번쯤 힘들고, 어려운 영화, 자신에게 고통 주는 걸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나에게 있어 ‘공범’은 가장 극적인 영화다. 가장 많은 감정 표현을 해야만 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어려웠던 것만큼 욕심도 났던 것 같다.

Q. 영화의 설정 자체가 힘든 상황이다. 연기하기에도 쉽지 않았겠다.
손예진 :
이 연기는 솔직한 연기였다. 극 중 다은이 절제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했을 거다. 의심하고, 확신했다가 아니라고 했다가 다시 또 의심하고. 다른 사람이 아빠를 의심할 땐 아닌 척을 해야만 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 표현이 반복됐던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절제만 했다면 못했을 거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했다. 물론 완급조절은 당연한 거다. 개인적으로 참는 성격인데 그런 면에서 다은과 나를 똑같다고 생각했다.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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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에 비해 감정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영화인 것 같다.
손예진 :
체력적, 정신적으로 다 힘들었다. 에너지를 계속 발산해야 하는 연기가 솔직하기 때문에 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의 에너지를 순간 몰입해서 원하는 감정을 낸다는 게 만만찮다. 극적인 상황에서 극적인 연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해본 적도 없고, 연습할 수도 없는 거다. 그래서 즉흥적인 순간의 감정 연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대본을 자주 보고, 연구하기보다 이미지만 떠올리고 그 상황에 맞게 임했다.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아픔, 혼란 등 여러 감정 속에 분노가 있는 거다. 너무 혼란스러우니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거다. 순간 집중이 필요했고, 감정 콘트롤이 중요했다. 그럼에도 캐릭터의 상황이 힘들고, 워낙 세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도 힘들었다. 이렇게 찍다가는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없겠다 싶어서 ‘컷’과 함께 오히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Q. 오열하다가 탈진했다는 기사를 봤다. 그 상황이 궁금하다.
손예진 :
권투 선수들은 경기 중 몰입하고, 흥분하기 때문에 아픈 것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잘 안 나온 것 같은데, 이걸 해야 할 것 같은데 세 번 하니까 더는 할 수가 없었다. 순간 힘이 쭉 빠지면서 말조차 하기 어려웠다.

Q. 눈물을 예쁘게 흘리는 여배우이지 않나. 이번엔 눈물을 흘리긴 하지만 그것과는 좀 다르다.
손예진 :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 좋았던 것 같다. 지금까지 예쁘게 울려고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캐릭터 자체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번엔 우는 게 전부 중요한 신은 아니었다. 보여드리지 않는 표정이 많이 나온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좋다.

Q. 기존에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나 보다.
손예진 : 그럼에도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거다. 물론 액션만 계속 해왔다면 또 다른 모습이겠지만 그동안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최근에 다양한 이미지로 봐주는 것도 고맙기도 한데 끊임없이 그렇게 해 왔다.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있어 그립긴 한데 지금 내 상황에 있는 시나리오들에 맞게 하는 거다.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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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06년 드라마 ‘연애시대’에 이어 다시 김갑수와 부녀 호흡을 맞췄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그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다. 다시 만난 김갑수는 어떻게 변해 있던가.
손예진 :
굉장히 다양해지신 것 같다. 요즘엔 예능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하시고, 젊게 사시는 모습들이 많이 노출되고 있으시다. 이렇게 지금 형성돼 있는 갑수 선배 모습과 7년 전 느낌은 다른 게 있다. 예전에는 솔직히 어떤 분인지 잘 몰랐고, 언론에 그다지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를 같이 한 신이 2~3신밖에 안됐다. 항상 전화통화로만. 그랬음에도 그때 기억이 매우 좋았다. 선배님이 가지고 있는 내공과 풍기는 느낌이 내가 캐릭터를 이해하기 쉽게 해줬다. 가만히 있는데도 마음을 뭉클뭉클하게 만들어주고, 몇 번 뵙지 않았는데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그 기억이 뇌리에 많이 남아 있다. 다시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됐다. 남자배우랑 하면 사랑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아 갑수 선배님도 남자배우구나. (웃음) 여하튼 아빠와 딸은 아빠가 누구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 특히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감정선을 보여주는데 두 배우의 연기가 허술하고 어색하면 절대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런데 갑수 선배님과 하게 돼 정말 기대됐고, 어떤 모습이 나올지 설렘도 있었다. 촬영하면서 역시 7년 사이에 또 다른 많은 모습이 담겨 있구나 싶었다. 나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돼야지 생각했다.

Q. 이야기만 들었을 때 굉장한 신뢰가 느껴진다.
손예진 :
(선배님이) 깔끔한 연기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연기를 한다고 하셨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배우마다 성격과 특색이 있는데 내가 지향하는 바와 선배님이 지향하는 게 비슷하다. 그런 부분이 비슷하다 보니 군더더기 없이 연기한다고 보는 것 같다.

Q.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감정을 만들어 가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겠다.
손예진 :
사실 사는 곳도 바로 옆이다. 마주친 적은 없지만. (웃음). 사실 마음은 더 다가가고 싶었는데 의심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러지 못했다.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더 친해졌을 텐데 아쉽다. 물론 선배님이었다면 친하게 지내다가도 의심하는 연기가 분명 가능했을 거다. 근데 나 같은 경우는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한 발 한 발 어쩔 수 없이 뒤로 가게 됐다. 인간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쉬웠다.

Q. 영화는 마치 ‘그 놈 목소리’ 이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극 초반 다은이 영화를 보고, 그 영화 속 목소리를 듣고 아빠를 의심하는 건데 마치 그 영화가 ‘그 놈 목소리’ 같았다. 실제 ‘그 놈 목소리’에도 마지막에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나.
손예진 :
그 모티브가 살짝 들어있다. 중요한 건 ‘그 놈 목소리’의 사건도 그렇고, 어떤 사건이든 그 주의의 누군가는 알 수 있지 않겠느냔 거다. 누군가의 아빠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공범’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그 놈 목소리’를 못 본 분들도 많고, 무엇보다 ‘공범’은 가해자 입장이다. 가해자가 내 가족일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래서 많이 다를 것 같다.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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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신의 아버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는데 그 감정을 잡아가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손예진 :
너무 비슷한 목소리 톤과 말투가 아빠와 비슷하다고 의심한다. 그러면서 아빠의 행동까지 의심하게 된다. 의심이 의심을 부르는 그런 거다. 다은 입장에서는 법 없이도 살 아빠인데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심하고. 그게 반복되면서 조금 더 확신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쌓여간다. 물론 딸을 애지중지 키워왔고, 그래서 다은 역시 아빠를 위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가 됐을 것 같다. 부녀지만 남들보다는 조금 더 애틋한, 그런 관계다. 이처럼 여느 부녀보다 더 애틋했기 때문에 더 힘들고 잔인하고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Q. 평소 성격상 의심이 많은 편인가.
손예진 :
평소에 생각이 많긴 하다. 그런데 의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 스스로는 사람을 간파하고, 심리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허당인 경우가 많았다. ‘헛똑똑이’라고 하지 않나, 이런 순간들이 많긴 하다. (웃음)

Q. 자신에게 가해졌던 잔인한 의심이나 자신이 해본 잔인한 의심이 있다면 말해 달라. 아무래도 대중에게 노출된 연예인이기 때문에 그런 잘못된 오해나 의심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지 않나.
손예진 :
친한 친구 사이에서 내 비밀이나 그 친구에게만 했던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를 통해 내 귀에 들어오는 경우, 그땐 엄청난 배신감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자님들도) 그런 경우는 종종 있지 않나요? 여자들은 한 번씩 다 있다. 굳이 배우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따지니까 내 배신은 배신도 아니다. (웃음). 그리고 대중에 노출됐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이야기를 대중이 오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까운 사람들도 오해하는데, 대중은 얼마나 단면적인 것을 보겠나. 가령 어떤 행사장에서 피곤한 모습을 보였을 때, 그 순간만을 본 사람은 ‘착할 것 같았는데 차가워 보이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더군다나 의도적으로 꼭 그러는 친구들도 있으니까.

손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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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매번 인터뷰할 때 손예진 씨가 자랑하는 부분은 수익률이다. 홈런은 많지 않아도 꾸준히 안타를 치는 유형이라고. 이번엔 어떻게 예상하나.
손예진 :
(웃음).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를 홍보하는 것도 배우의 몫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크랭크업 하는 순간 배우의 역할은 끝났다고도 볼 수 있다. 흥행이나 이런 것들은 점점 모르겠다. 그냥 다 잘 될 것 같다.

Q. ‘타워’ 개봉을 앞두고 인터뷰를 했을 때 멜로 욕심을 냈다. 20대 때 보여주지 못한 깊이를 더 보여줄 수 있을 거라면서. 언제쯤 볼 수 있는 건가.
손예진 :
이제 해야죠. (웃음). 빨리 조만간 좋은 멜로를 해야겠다.

Q. 요즘 출연이 연이어 있는 것 같다. 오히려 어릴 때보다. 체력이 팔팔할 땐 쉬어가더니 왜 요즘은 달려가나.
손예진 : 일 년에 한 작품씩은 꾸준히 했다. 특별히 요즘 들어 많이 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마음이란 게 끝날 땐 쉬어야지 하면서도 좋은 작품을 만나면 선택하게 된다. 쉬고 싶은 마음보다 아직은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Q. 쉬려고 했다가 선택했던 작품이 전부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아니었을 텐데. 또 작품 마치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 보면 작품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러면 쉬지 않고 작품 선택한 것을 후회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손예진 :
어떤 작품이든 하고 난 뒤에는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한 것을 후회하기보다 작품을 하는 것 자체가 다 재산이고, 남는 거다. 어떻게든 내 개발의 시간이다. 물론 여유롭게 쉬는 것도 개발일 수 있지만 연기 측면에서 배우고, 부딪히고. 좋아하는 하는 거다. 드라마 ‘상어’ 끝나고 나서도 쉬고 싶었는데 ‘해적’이 너무 놓치기엔 아까웠다. 그래서 곧바로 하게 됐다. 쉬고 싶을 때 좋은 작품이 없으면 그때 쉬겠다. (웃음).

Q. 어떻게 자기를 봐줬으면 좋겠나.
손예진 : 계속 궁금한 배우이고 싶다. 작품을 하고 나면 배우의 잔상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게 참 힘들다. 그걸 깨는 배우들이 최고의 배우들인 것 같다. 연기 잘한다는 배우가 다 그런 것 같다. 가령 이런 거다. ‘우아한 세계’를 뒤늦게 봤다. 송강호 선배야 워낙 잘하니까 당연히 ‘잘하셨겠지’란 생각을 하고 보는데도 그 연기에 또 놀라게 된다. 계속 자신을 의심하지 않으면 그런 연기, 느낌이 나올 수 없다고 본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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