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킴(좌), 벤 몬더
써니킴(좌), 벤 몬더
써니킴(좌), 벤 몬더

벤 몬더는 약간 초조해 보였다. 9월 14일 써니 킴과의 듀엣 공연을 1시간 앞둔 삼성동 올림푸스홀. 이날 공연을 녹음해 라이브 앨범을 제작하기로 했다. 재즈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재즈 기타리스트 벤 몬더. 재작년 내한공연을 봤다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당시 공연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예민한 성격이라고 언질을 받았는데,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이자 대화를 이어가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더구나 라이브앨범 녹음을 앞둔 상황이 아닌가? 그때 써니 킴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둘의 첫 만남부터 물었다.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지? 음악 말고 다른 것은 잘 기억을 못 하는 편인데…”

재즈 보컬리스트 써니킴이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 유학 시절 벤 몬더는 그곳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에서는 마주친 적이 없다. 다만 벤 몬더는 써니 킴이 속한 그룹 ‘프라나 트리오’의 데모앨범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2004년의 일이다.

“벤은 제가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다니는 학생인지도 몰랐어요. 카페테리아에서 스치듯 마주친 것이 전부죠. 당시 제가 속한 프로나 트리오는 여러 가지 현대음악을 했었는데 벤 몬더의 ‘Hatchet Face’라는 곡을 응용해 곡을 만들었어요. 반복이 하나도 없는 15분짜리 방대한 곡이었는데 그 중 멋지다고 생각되는 몇 초를 가져다가 새로운 곡을 하나 만들었죠. 그걸 녹음해서 드렸는데 인상적이셨나 봐요. 제가 숫기가 없어서 앨범을 직접 드리진 못했고 대신 드러머가 벤에게 건네줬어요.”(써니킴)

재밌는 우연이 있다. 그 데모앨범에는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 시인 루미의 시를 소재로 만든 곡이 담겨 있었다. 벤 몬더 역시 루미를 좋아해 똑같은 시로 작곡을 한 적이 있었다.(이 곡은 훗날 녹음됐다) 벤 몬더는 써니킴의 곡을 마음에 들어 했고,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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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재회(?)한 것은 이듬해 뉴욕에서였다. 벤 몬더는 55바에서 테너색소포니스트 도니 맥캐슬린과 연주를 하고 있었다. 공연을 본 써니킴은 용기를 내 인사를 하러갔다. 벤 몬더는 써니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벤 몬더는 “함께 연주를 하러 놀러오라”고 말했고 둘의 음악 인연이 시작됐다. 둘은 만나면 대화보다는 연주를 더 많이 했다. 둘 다 말하기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만나면 “안녕 잘 지냈지? 연주해볼까?”라고 말하고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즉흥 잼세션을 이어갔다. 즉흥연주를 하면서 서로의 음악을 들었다. 벤 몬더는 써니 킴의 앨범 ‘페인터스 아이(Painter’s Eye)’에 연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써니 킴은 음악적으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 뮤지션 중 한 명으로 벤 몬더를 꼽는다.

“화성에 있어서 벤은 음악가를 넘어 발명가인 것 같아요. 새로운 화성을 찾아내고 그 울림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능력이 존경스러울 정도예요. 제가 재즈를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요소들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에요. 재즈라는 음악 안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대단한 일들이 벌어지곤 하죠. 벤의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세계는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하고, 또 완벽해서 제 영혼을 만족시키시곤 해요.”(써니 킴)

“써니킴은 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음악적으로 매우 열려 있어요. 그녀와 앙상블을 해보면 무엇이든지 즉흥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특히 그녀가 가진 악기(목소리)의 음색과 음역대가 매우 훌륭해요.(벤 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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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에서 듀엣 앨범은 서로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마치 두 사람이 마주한 술자리라고 할까? 상대방의 말을 잘 받아줘야 좋은 연주가 나온다. 둘의 듀엣 앨범은 어떨까?

“우리 둘 다 말을 잘 안 하는 타입이라서… 앨범에 대한 콘셉트는 따로 정하지 않았어요. 선곡을 의논한 정도랄까요? 연주는 거의 즉흥적으로 진행이 될 거예요. 벤이 가진 음악과 저의 음악이 아무런 장벽 없이 만나는 거죠.”(써니 킴)

벤 몬더는 종종 듀오 앨범을 발표해왔다. 색소포니스트 빌 맥켄리와 ‘블룸(Bloom)’, 보컬리스트 테오 블랙맨과 ‘앳 나이트(At Night)’를 녹음한 바 있다. 벤 몬더가 생각하는 듀엣의 장점은 뭘까?

“듀오 연주가 좋은 이유는 다른 편성에 비해 연주자에게 많은 자유로움이 허락되기 때문이죠. 특히 보컬이나 색소폰과 같은 멜로디 악기들과 협연을 할 경우에는 기타리스트가 채워 넣어야 할 부분이 많죠.”(벤 몬더)

이어진 공연은 둘의 자작곡과 커버 곡으로 진행됐다. 벤 몬더의 ‘레이트 그린(Late Green)’, ‘에콜랠리아(Echolalia)’, 써니 킴의 ‘지렁이’ 등의 오리지널 곡과 ‘레츠 폴 인 러브(Let’s Fall in Love)’ ‘몽크스 드림(Monk’s Dream)’, ‘윌로우 윕 포 미(Willow Weep For Me)’ 등의 재즈 스탠더드, 그리고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등이 연주됐다. 공연기획사 플러스히치에서 녹음을 진행한 이 실황앨범은 내년 가을쯤에 공개될 예정이다.
공연사진
공연사진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플러스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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