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권, 〈전국노래자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의 김인권" /><전국노래자랑>의 김인권

배우 김인권. 그의 연기에는 어딘가 코믹하면서도 진정성 담긴 인간미가 묻어난다. 감독을 꿈꾸던 영화학도는 데뷔작 〈송어〉(1999)로 연기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았고, 첫 주연작 〈방가? 방가!〉(2010)에선 방가 역을 맡아 ‘김인권’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해운대〉(2009)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선 안정적이지만 캐릭터가 살아있는 연기로 ‘천만배우’ 대열에도 합류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꾸준히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는 그의 15년 연기인생의 저력이다. 흥행의 실패와 성공을 오갔지만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과 영화를 아우를 수 있는 연기력을 얻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할 준비를 마쳤다. 1일 개봉된 세 번째 주연작 〈전국노래자랑〉의 결과를 지켜보는 그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전국노래자랑〉의 개봉을 맞아 배우 김인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발걸음을 따라가 본다.

STEP 1 // 조금 다른 배우, 그리고 약간 독특한 제작자

김인권과 제작자 이경규는 대학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영화 〈전국노래자랑〉으로 만나기 전까진 일면식도 없는 사이. 조금 다른 배우와 약간 독특한 제작자의 만남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최민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만남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이 나오기까지 과정이 궁금했다.

Q. 〈전국노래자랑〉은 세 번째 주연작이자 제작자 이경규에겐 6년 만의 복귀작이다. 그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김인권: 부담의 차원을 넘어섰다. 〈강철대오〉(2012)가 흥행에 부진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중요해졌다. 이마저도 흥행이 잘 안되면 주연으론 힘들지 않겠나. 하하. 그래서 이경규 대표(대학교 선배지만 이날 김인권은 철저하게 이경규 대표란 호칭을 썼다)에게 감사하다. 〈전국노래자랑〉 시나리오 받을 때가 〈강철대오〉 개봉 즈음이다. 흥행이 잘 안 되면서 개런티 삭감은 둘째로 치고 주연으로의 섭외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경규 대표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저를 믿어줬다.

Q. 제작자 이경규의 제의를 수락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김인권: 어느 날 이경규 대표가 시나리오 받으러 오라고 하더라. 갔더니 최민식 선배하고 같이 있더라. 사실 두 분 모두 학교 선배지만 일면식이나 친분은 없었다. 특히 최민식 선배는 평소에 존경해마지 않던 선배다.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은 생각에 선배가 살던 곳으로 이사까지 하기도 했다. 여튼 그 자리는 방송계 정상(이경규)과 영화계 정상(최민식)이 만나는, 정상회담 자리였다. 저에겐 알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 앞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수락하고 말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잘 놀게 해주면 잘 할 거다’라는 최민식 선배의 한 마디가 굉장히 감동이었다.

Q. 친분이 전혀 없던 이경규 대표가 갑자기 시나리오를 준다고 했을 때 의아했겠다.
김인권: 즉흥적으로 시나리오를 준 것은 아니었다. 지인을 통해 이경규 대표가 〈전국노래자랑〉을 준비하고 있는데 나를 염두해 두고 있다는 말을 듣긴 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전화가 오길래 ‘거짓말이 아니었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김인권, 〈전국노래자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배우 김인권" /><전국노래자랑> 배우 김인권

Q. 최민식 하면 알아주는 연기파 아니냐. 그리고 연기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철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최민식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하는 것도 큰 숙제였겠다.
김인권: 정말 아웃이죠. 하하. 이번에 잘 못하면 영화판에서도 ‘아웃’, 학교 동문에서도 ‘아웃’이다. 최근 〈신세계〉 시사회 때 최민식 선배를 만났는데 그 때 〈전국노래자랑〉 잘 나왔다는 소리 들었다’고 한 마디 해주시더라. 다행이다.

Q. 시나리오조차 읽지 않고 제의를 수락했다. 이경규가 충무로 정통 제작자도 아닌 데 불신의 감정이 생기지는 않았나.
김인권: 이경규 대표는 스타일이 남다르다. 내공이 장난 아니다. 영화의 틀 안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 강점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전국노래자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경규 대표께서 앞에 흑인을 앉혀 놓자고 하더라. 그 이유를 물으니 “거기에 한국사람 앉혀 놓으면 이상해”라고 답하더라. 단순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감정을 자극할만한 부분을 캐치해 낸 거다. 직감을 많이 사용하시는 편인데 상당한 재능이다.

Q. 이경규를 만나면서 방송출연 빈도도 높아졌다.
김인권: 이경규 대표와 함께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것들이 많다. 마치 이경규 대표가 방송국을 통하지 않고 대국민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버라이어티 쇼에 참가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홍보, 예능 프로그램 출연, 아이돌 수준의 댄스와 노래 연습까지. 정말 ‘무한도전’이라 할 만큼 복합적이다.

Q. 〈전국노래자랑〉이 실제 사연을 토대로 하지 않았나. 봉남 역할은 가수 박상철씨를 떠올리게 한다. 염두한 부분이 있나.
김인권: 가수 박상철씨의 사연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는 건 조금 조심스럽다. 영화화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희화화해야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분이 봉남처럼 볼일 보다가 산에서 구르고 그러진 않았잖나. 일부러 거리감을 둔 감이 있다. 오히려 이경규 대표를 그리려고 했다.

Q. 이경규 대표를 그리고자 했다고? 이해가 좀 안가는 부분인데.
김인권: 솔직히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봉남 캐릭터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꿈을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 솔직히 얼마나 되겠나. 나 역시 현실하고 타협했을거다. 그런데 봉남은 그러지 않는다.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노래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절대로 접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미친 거다, 현실적이지 못한 거고. 근데 그런 면에선 이경규 대표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만큼 이경규 대표의 영화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그래서 봉남을 연기할 때에는 항상 이경규 대표를 염두에 두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처럼 ‘꿈꾸는 방랑자’의 이미지를 봉남 캐릭터에 담아내려 노력했다.

Q. 극 중 봉남이 부르는 노래도 직접 골랐다. 음악영화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기에 싸이의 〈챔피온〉을 선곡한 데도 이유가 있을 거 같다.
김인권: 원래 선곡 리스트에는 발라드도 있었고 트로트도 있었다. 설정도 처음에는 댄스가수가 아니었다. 그런데 현 시점에 맞게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기도 했고, 괜히 트로트를 하면 〈복면달호〉(2007)와 이미지가 겹칠 것 같기도 했다.

Q. 이전에 보여주지 않았던 춤과 노래를 보여주지 않나. 실제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
김인권: 원래 노래는 조금 했어도 몸치였다. 캐릭터 설정을 바꾸면서 춤 노래를 완전히 새로 배웠다. 〈전국을 뒤집어놔〉 덕분에 싸이의 히트곡을 만든 유명 작곡가 유건형도 만났고 녹음하면서 형돈이와 대준이도 만났다. 내가 언제 그들은 만나보겠나?(웃음) 그런데 그들과 함께 하면서 조금은 닭살스럽지만 자신감 있게 하다 보니 점차 나아지는 게 느껴졌다. 영화 속 〈전국을 뒤집어놔〉 장면에선 류현경의 공이 컸다. 원래 류현경이 힙합을 좋아하다보니 의상이나 컨셉트 등에 적극 참여했고 결과도 잘 나왔다.

김인권, 〈전국노래자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배우 김인권" /><전국노래자랑> 배우 김인권

STEP 2 // 주연, 그리고 조연의 의미

그에게 주연과 조연의 차이는 ‘모음’ 하나뿐인 걸까. 어느덧 세 번이나 주연을 맡았지만 색깔 있는 조연에 대한 그의 마음은 한결같다. 주연과 조연사이, 영화를 바라보는 배우 김인권의 시선 속엔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다.

Q. 김인권에게 ‘주연’은 어떤 의미인가.
김인권: 주연은 정말 영광스럽고 좋은 자리다. 하지만 주연은 홀로 대중과 전면전을 치러야 한다. 사실 이제는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하는 평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그럴만한 깜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주연배우로 나선다는 것은 대중에게 흥행성적으로 평가받는 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요 흥행작들에서 ‘신스틸러’라는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주연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조연은 캐릭터가 중요하기 때문에 특정부분 하나만 강조하면 되지만, 주연은 한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힘 줄때와 뺄 때를 구분하는 선구안이 중요하다. 그러면서도 작품에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주연을 경험하면서 극의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겼다.

Q. 주연을 맡았던 전작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흥행에서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까.
김인권: 〈송어〉를 찍고 ‘스타병’에 걸렸었다면, 첫 주연작 〈방가? 방가!〉가 예상외로 성공하면서부터는 잠시 ‘주연병’에 걸렸었다. 그 상태로 〈강철대오〉를 찍은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캐릭터 코미디에 욕심을 버리고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서 〈전국노래자랑〉에선 힘을 많이 뺐다.

Q. 〈방가? 방가!〉 이후로 김인권만이 할 수 있는 캐릭터는 확실히 잡힌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한 가지 캐릭터를 연기하는 부담도 있을 것 같다.
김인권: 나는 코미디 영화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완전한 정극 연기보다는 코미디에 정극적인 요소를 많이 넣는 방향으로 하고 싶다. 정극 연기에는 관객들을 흡입하는 배우의 매력이 중요한 것 같다. 외모도 중요하고. 그런데 나의 캐릭터는 관객들로 하여금 ‘내가 제 보다는 더 낫다’라는 생각을 하게하는 것이 포인트다(웃음). 그만큼 나는 이 캐릭터를 계속해서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정극에선 주로 코믹한 감초역할을 맡았기에 망정이지, 사실 정극을 진지하게 하는 것은 조금 벅차다. 워낙 그 쪽엔 얼굴 잘생기신 분들이나 연기 잘하시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도 〈송어〉 때의 악역이라든지 맛깔 나는 감초역할은 주·조연 관계없이 언제든지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김인권, 〈전국노래자랑〉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
배우 김인권" /><전국노래자랑> 배우 김인권

Q. 배우 김인권이 하고 싶은 연기는 무엇일까.
김인권: 최근에 문뜩 로빈 윌리암스가 떠올랐다. 주성치·짐캐리·우디 앨런 등의 배우들도 좋아한다. 맡은 배역이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긴 하는데, 하고 싶은 것은 주로 코미디 쪽이다. 관객의 기대치에 보답할 수 있는 좀 더 규모가 큰 코미디 영화도 생각하고 있다.

Q. 연기를 위해서 평소에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 지도 궁금하다.
김인권: 극장가서 영화를 많이 본다. 영화를 보다보면 직관적으로 체득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버지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사회성 짙은 코미디도 하고 싶다. 그 때문에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요즘 토크쇼처럼 진행되는 정치 평론 프로그램들을 보면 대중들의 생각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야후에서 연재되고 있는 〈정답사회〉라는 웹툰이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통념을 무작정 따라가는 대중을 보면서 이런 내용을 다룬 블랙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가득하다.

Q.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다. 연출자로서의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김인권: 지금은 계획이 ‘전혀’ 없다. 사실 2003년에 졸업 작품으로 〈쉬브스키〉를 연출 할 때만 하더라도 사제를 털어 영화를 찍었을 만큼 의욕도 넘쳤고 포부도 컸다. 군 제대 후에는 제작 미팅을 하면서 실제로 준비도 했었다. 근데 아이가 태어나면서 현실이 눈에 들어왔고 그때 발을 ‘확’뺐다. 연출에 대한 의지는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그리고 아이들이 자생력이 생긴다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웃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이진혁 eleven@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