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야 피쳐사진 2013년 4월6
고래야 피쳐사진 2013년 4월6


‘국악’은 오랜 기간 한국인에게 삶의 애환과 시름을 달래준 전통음악으로 각광받았다. 현재 국악의 위상과 미래는 장밋빛일까? 아니다. 요즘 대부분 젊은 세대들은 국악의 ‘국’자만 나와도 거부감을 일으킨다. 그 결과, 대중과 점점 멀어진 국악은 보존대상으로 전락했다. 이에 위기감을 절감한 젊은 국악인들을 중심으로 80년대 이후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서구 대중음악 장르와 크로스오버 작업을 통해 ‘퓨전국악’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는 국악의 대중화 운동이 그것이다.

오랜 국악의 현대화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여전히 미미하다.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시도는 실종되고 오로지 대중성 획득에 매몰된 트렌디한 음악장르의 무분별한 차용과 단순히 국악기를 끼워 넣는 단순한 연주구성 스타일이 주류를 이뤄왔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이고 형식적인 합체과정을 통해 탄생한 질 떨어지는 퓨전국악의 범람은 다채로운 음악을 경험하고 살아가는 디지털 시대의 대중에게 피로감만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다. 퓨전국악이 여전히 생소한 월드뮤직으로 분류되는 슬픈 현실이지만 젊은 국악인들은 포기를 모른다. 80년대의 <어울림>을 시작으로 1997년 결성된 <공명>을 거쳐 2000년대에는 <그림(The 林)>, <잠비나이>와 더불어 걸그룹 형태로 진화한 여성 퓨전국악그룹 <린>, <퀸>, <미지>, <여랑>, <소리야>, <가야랑>, <단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며 끊임없이 대중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월드가수 싸이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신곡 ‘젠틀맨’을 발표해 세계인들의 관심이 쏠렸던 지난 4월 13일. 서울 서강대교 아래 광흥창역 인근에 있는 ‘CJ AZIT’에서는 국악의 대중화 작업에 한줄기 서광을 비쳐주고 있는 퓨전국악밴드 <고래야>의 정규앨범 발매 기념공연이 열려 다녀왔다. <고래야>는 기타리스트인 리더 옴브레(본명 김헌기)와 월드 퍼커셔니스트 경이(본명 안상욱) 그리고 김동근(대금, 소금, 퉁소), 김초롱(퍼커션), 권아신(보컬), 정하리(거문고)의 6인조 라인업이다. 옛 고(古), 올 래(來), 끌어당길 야(惹)를 조합한 한자 이름의 그룹명은 “옛것으로부터 지금까지 전해 온 감성으로 동시대 대중을 끌어당기고 소통하는 음악을 하겠다”는 음악적 포부가 담겨있다.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이미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이는 대중과 국악의 무심한 간극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이 희망적인 것은 이전의 그 어떤 퓨전국악 그룹에도 뒤지지 않는 탁월한 음악성을 담보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친숙한 멜로디라인까지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요와 판소리를 뿌리로 대중가요를 넘나드는 새로운 국악가요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을 모색하고 있는 이들은 ‘CJ Agit’의 신인 지원 프로그램인 <튠업(Tune Up)> 6기로 선정되었고, KBS2 TV의 <톱 밴드2>에서 16강에 진출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전도유망한 밴드다. 최근 발표한 정규 1집 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 이주의 발견에서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의 추천앨범으로 선정되며 그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사실 퓨전국악밴드 <고래야>는 2010년 국립국악원과 국악방송에서 주최했던 21c 한국음악프로젝트인 창작곡 경연대회의 우승상금 1천만 원을 노리고 결성된 불순한(?) 팀이다. 그 뿌리는 2008년 이자람이 주도해 판소리꾼들이 모여 결성한 소리극 동호회<타루>다. 이 모임에 초창기부터 참여했던 민경준과 뒤늦게 합류했던 보컬 권아신은 경연대회 참가를 위해 팀명을 <고래야>로 짓고 멤버 간택작업에 나섰다. 그래서 처음엔 김동근, 김초롱, 해금 연주자인 권아신의 동생 권미형, 거문고 정기화등 한예종 출신 국악인들과 홍대 인디씬에서 활동하던 연리목과 옴브레까지 영입해 8인조라인업을 구축했다.

12세 어린나이에 판소리를 시작한 보컬 권아신은 창작 판소리 극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온 젊은 소리꾼이다. 한국종합예술학교 판소리 전문사를 수료한 그녀는 동아콩쿨 판소리 일반부 동상을 수상했고,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AYAF(신진 아티스트 다년간 집중육성사업) 판소리 부분의 예술가로 선정된 재원이다. 판소리, 정가, 민요 등 전통가락을 공부한 보컬 권아신은 장르를 뛰어넘는 보컬을 실험 중이다. “저는 판소리보다 가요를 더 많이 듣고 자랐어요. 전통 판소리와 고래야 밴드무대는 감동이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저에게 맞는 노래 스타일을 찾으려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작곡과 기타 연주를 맡고 있는 리더 옴브레는 2001년 사운드홀릭 레이블 창립 1기로 선발되어 4인조 브리티쉬 기타 팝 밴드<그러나>의 멤버로 활동한 후, 2005년 4인조 레게밴드 <수염공화국>과 드럼이 빠지고 팀명만 교체한 3인조 밴드 <파프리카>의 멤버로 활동하며 2007년 정식음반을 발표했었다. 사운드홀릭 레이블에서 나온 후 혼성밴드 <자우림>의 리더 이선규와 작곡 프로젝트 팀 <엉클푸푸>를 결성했지만 김C가 리드하는 <뜨거운 감자> 앨범에 ‘못생긴 소년’이 한 곡을 발표한 것 외에는 대외적으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이후 2010년까지 ‘눈뜨고 코베인’의 키보디스트인 연리목과 함께 ‘욤프로젝트’ 듀오를 결성해 무용, 연극, 영화음악부분에서 왕성한 활동을 했다. 그는 “작곡 비를 많이 준다고 해 고래야에 들어왔다”고 웃는다. 밴드에는 합류하지는 않고 경연대회만 함께했던 연리목은 영화<은교>에 이어 최근 영화<말로는 힘들어>의 음악감독으로 주목받는 여성뮤지션이다.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멀티 퍼커션 경이도 “국악계에 돈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고 세션 비를 준다는 말에 돈이 될 것 같아 한 발 담그려는 속셈으로 들어왔습니다(웃음).”라고 거든다. 천리안 캠프 구르브 힙합댄스동아리의 최연소 부시삽 출신인 그는 한때 전 세계의 각종 음악 수집에 몰두했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차별로 음악을 들으며 2년 간 라이브러리 구축작업을 했습니다. 갑자기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때가 연애도 실패하고 함께 동아리 활동하던 친구도 멀어져 마음의 상처를 컸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사람들이랑 어울려 합주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더군요.” 그래서 레게밴드 <버스라이더> 출신으로 브라질에 다녀와 홍대 근처에 삼바 스쿨을 연 복철의 <에스꼴라 알레그리아 퍼커션 스쿨>에서 브라질의 큰 북 ‘수루드’와 템버린 종류인 ‘판데이루’ 같은 생소한 악기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실력이 늘면서 소희, 이한철, 포츈쿠키, 라디, 눈뜨고코베인, 좋아서하는 밴드 등 다양한 가수와 밴드 세션으로 참여하다 연리목을 만나 밴드에 참여했던 것.

밴드의 연장자인 김동근에 대해 권신아는 “오빠는 너무 유명해 어려워서 연락을 못했는데 선뜻 참가 의사를 밝혀 놀랬다.”로 말한다. 사실 처음 섭외를 했던 건 퉁소연주자는 한예종 대학원 석사과정에 있던 조선족 최민이다. 그는 중국 연변에서 민속 기악음악경연대회에서 1위를 한 실력자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참가제의를 거절해 김동근이 참여하게 되었다. 밴드의 음악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김동근은 대금과 소금, 퉁소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탁월한 연주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원 졸업 후 연극음악감독으로 활동했던 그는 현재 극단 ‘우투리’의 상임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완벽한 국악이 뭔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국악과 대중음악은 대립하는 이질적인 음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소견을 전한다.

전통음악은 물론이고 새로운 주법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거듭하는 김초롱은 장구, 징, 꽹과리 등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한국 전통 타악기 연주자로 전통장단에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전통원에서 수학한 그녀는 전통국악, 대중가요, 판소리, 음악 극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주자로 맹활약하고 있다. 정기하 후임으로 가장 늦게 밴드에 합류한 정하리는 학생시절부터 난계국악경연대회 입상, 무안 승달 국악경연대회 회우수상, 동아콩쿨 동상을 수상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2011년 벨기에의 안무가 시디 라비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합류해 유럽투어에 참여하며 거문고뿐 아니라 양금과 노래를 선보이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한예종 석사과정 마친 그는 2009년 국립부산국악원 연주단원을 거쳐 현재는 국립국악중학교 실기강사를 겸하고 있다.

우승상금 1천만 원을 노리고 ‘돈돌라리오’란 곡으로 창작곡 경연대회에 출전한 결과는 어땠을까? 예선에서 심사위원 평가 1위를 차지하며 순조로운 출발했다. 모두들 대상을 예상했지만 본선 결과는 장려상에 그쳤다. 옴브레와 경이는 “만약 우리가 대상을 받았으면 멤버 모두는 돈을 분배해 받고 각자 따로 튀었을 겁니다. 대상을 기대했다가 장려상에 머물자 억울한 생각이 들면서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는 마음이 들더군요.”라고 입을 모았다. 그래서 대회가 끝나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 끝에 밴드를 결성해 자신들의 마음에 드는 새로운 음악을 계속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노선을 달리했던 정기화(가야금)와 권미영(해금)이 탈퇴하고 6인조로 라인업이 재정비되었다.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인디10]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정식 밴드 가동을 결정하자 팀을 이끌어갈 리더가 필요해 회의를 거쳐 작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받은 옴브레를 선출했다. 작곡 능력과 음악감독 경력이 화려한 연장자 김동근도 리더후보였지만 2세가 태어나 포기했다. 보통 퓨전국악밴드들은 국악전공자가 작곡을 하는 관례가 있다. 고래야의 차별 점은 비 국악전공자인 옴브레가 창작을 맡고 각자 연주 시스템을 찾아 결과물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이 모여 만들었거나 즉흥적인 잼을 하다 완성된 곡은 공동작곡으로 정한다. 이에 대해 리더 옴브레는 “우리들만의 스타일로 연습하니 악기별로 선율이 살아있는 음악을 나오는 것 같습니다.”라고 만족감을 드러낸다.

2011년 CJ문화재단의 신인뮤지션 지원 사업 ‘튠업’에서 국악장르로는 최초로 6기 뮤지션으로 선정된 <고래야>는 데뷔음반 ‘물속으로’를 발표하며 공식 데뷔했다. 이후 천차만별 콘서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들이 대중적으로 존재감을 널리 알렸던 것은 2012년 KBS 2TV <탑밴드2>에서 창작곡 ‘개구리’와 송창식의 ‘왜 불러’를 퓨전국악으로 탈바꿈시켜 ‘한국의 힐링뮤직’, ‘퓨전국악의 모법답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13위를 차지하면서부터, 이어 벨기에 월드뮤직페스티벌 스핑크스 믹스드에 공식 초청을 받아 해외무대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김동근은 “대금 소리에 관객들이 환호하는 모습은 국악공연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죠. 사실 국악을 전공한 젊은 연주자들이 설 자리가 많지 않습니다. 고래야가 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주는 존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3월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웨일 오브 어 타임(Whale of a Time)’은 국악 대중화에 신선한 대안을 제시한 수작이다. 배가 바다로 떠나는 것 같은 멤버들의 심정을 그려낸 독특한 앨범 아트웍도 인상적이다. 싱글 음반은 탄탄한 음악성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1집은 음악성과 더불어 대중과의 소통에 역점을 두었다. 싱글에서는 시도하지 않았던 보컬 권아신의 국악과 대중가요를 넘나드는 창법이 그 증거다. 총 11곡의 수록곡들은 브라질 마라카투(Maracatu) 리듬의 ‘웨일 오브 어 타임’을 비롯해 나무하는 총각과 나물 캐는 처녀의 풋풋한 연애 감정을 마당극 형식으로 해학적으로 표현한 ‘어드로갈꼬’, 루마니아 집시음악의 정서를 담은 ‘검은 새’, 비틀즈의 음악을 재해석한 ‘Norwegian Wood’까지 국악과 월드뮤직을 교배한 새로운 어법의 음악들이다.

[골든 인디 컬렉션] 고래야, 퓨전국악 아닌 코리안포크뮤직그룹
(좌), 1집 (우)" />싱글 <물속으로(2011)>(좌), 1집 (우)

전통음악의 결을 유지하면서 새롭고 다양한 사운드를 시도한 이들의 노래들은 단박에 귀를 잡아끄는 친근한 가락은 아니지만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국악가요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옴브레는 “우리 음악은 딱딱한 전통 국악도 어려운 퓨전 국악도 아닌 국악을 가미한 대중가요입니다. 정통 국악연주자부터 록밴드 출신 기타리스트까지 멤버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기에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정통 국악계에선 이들의 음악을 가볍게 여기고 대중음악계에선 이질적 존재로 여기는 난관을 극복해야 될 과제가 남아있다. 퍼커션 경이는 “앨범판매수익과 공연수익만으로는 밴드를 오래 유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최근 각종 음악 페스티벌들이 서로 비슷한 라인업을 꾸리는데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1집을 통해 들려주고 싶은 걸 다 이루었기에 차기 앨범은 아이디어가 많아져 더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고래야>는 사업자 통장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지원금을 받아 스핑크스 페스티발 다녀오면서 6-700만원의 빚을 졌지만 지방으로 행사 다나며 갚아나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1천만 원 이상을 투자해 8월 2일부터 17일까지 영국 에딘버러 페스티발에 가는 일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항공기 비용 일부를 지원받지만 이들로서는 큰 투자를 하는 셈이다. 대중음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퓨전국악 같은 다양한 장르음악이 꽃피울 때 한국대중문화는 비로서 선진문화대국으로 진일보 할 수 있다. 그래서 록, 재즈, 월드뮤직 등 어느 장르의 공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퓨전국악밴드 <고래야>의 음악은 국악의 대중화와 한국대중음악의 선진화를 위한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고래야 프로필
2010년 국립국악원/국악방송 주최 21c 한국음악프로젝트 창작곡 경연대회 장려상
2011년 CJ 문화재단 신인뮤지션 지원 사업 ‘튠업’ 국악장르 최초 6기 뮤지션 선정, 천차만별 콘서트 대상
2012년 KBS 2TV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밴드2> 16강 진출, 벨기에 월드뮤직페스티벌 스핑크스 믹스드 공식 초청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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