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워 보이는 일도 해 보면 어렵다.’ 25년전쯤인가. 예전에, 남산 어느 자락에 걸려있던 플래카드에 이렇게 써 있었다. 스쳐 지나듯 접했지만, 이후로 오래도록 가슴 속에서 반짝였던 문구다. 1년만에 컴백한 그룹 애프터스쿨의 퍼포먼스를 그저 ‘봉춤’이라는 표현으로, ‘선정적이다’고 쉽게 내뱉어 버리는 일부 네티즌은 아마도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없거나, 봤어도, 이 문구를 채집해 가슴 속의 별로 남겨둘 마음은 없는, 무심한 이들일지 모르겠다. 아니, 이 문구가 아니라, 애프터스쿨의 ‘봉춤’을 본 적도 없는게 아닐까.

애프터스쿨 ‘첫사랑’ 무대
애프터스쿨 ‘첫사랑’ 무대
애프터스쿨 ‘첫사랑’ 무대

애프터스쿨이 여섯번째 맥시 싱글 타이틀곡 ‘첫사랑’에 맞춰 폴 댄스를 추는 모습을 봤다면, 그저 한 마리의 학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터. 사실, 학창시절 매달리기를 해 봤다면, 수초도 버티기 쉽지 않았던 기억이 누구나 있을 터. 그 시절 철봉과도 같은 폴에, 팔힘만으로 매달려 사뿐히 공중 부양을 하거나, 우아하게 턴을 하는 일은 사실 뼈를 깎는 고통을 담보로 한 일이었으리라. 6개월간, 밴드와 멍을 몸에 달고 살았다는 사실을 전해듣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는 일이다. 부상도 있었고 하루라도 연습을 빼먹고 싶은 유혹도 있었겠지만,’봉춤이라면 섹시한 분위기만을 강조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잠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멤버들의 성실함에 기댄 바가 컸다.

애프터스쿨 쇼케이스의 나나(왼쪽), 가은
애프터스쿨 쇼케이스의 나나(왼쪽), 가은
애프터스쿨 쇼케이스의 나나(왼쪽), 가은

사실 애프터스쿨이 그저 반 년 가까이 댄스 연습을 하고, 퍼포먼스를 무대에서 보여주는데 그쳤다면 그저 그런 걸그룹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은 이미 호흡을 맞췄던 용감한형제의 곡이긴 했다. 용감한형제는 애프터스쿨의 새로움을 꺼내어 성숙한 변화를 엿보기에 충분했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가사에, 멜로디는 세련된 느낌을 줬고, 흐느끼는 듯 가녀린 창법은 슬픈 듯 하면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여성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발라드에 가까운 ‘첫사랑’에 차분한 무대 분위기와 퍼포먼스로 컴백을 했다면, 애프터스쿨의 도약은 어쩌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애잔한 마음에, 격렬한 봉춤이 아닌, 마치 흐느끼는 소리를 형상화한 듯한 폴 댄스는 반전인 동시에 반전이 아니었다. 그동안 마칭 댄스, 탭댄스 등 퍼포먼스를 보여왔던 애프터스쿨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꾀한 셈이다. 애프터스쿨이라는 그룹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어가는 길에, ‘폴 댄스’가, 혹은, 용감한형제의 음악이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지. 이 둘은, 서로가 있어서 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조합이었다.

애프터스쿨 6집 맥시 싱글 재킷
애프터스쿨 6집 맥시 싱글 재킷
애프터스쿨 6집 맥시 싱글 재킷

이번 싱글의 다른 곡들 역시 애프터스쿨의 발랄함 대신 성숙미를 강조했다. 그루브하면서도 세련된 팝 분위기의 ’8 hot girl’ 역시 용감한형제의 작품. 스웨덴 작곡가 Niclas Ludin 등이 만든 ‘Dressing Room’은 여성의 판타지를 묘사한 가사가 눈길을 끈다. 일본 작곡가 BLACC HOLE의 ‘Time’s up’은 슬픈 가사와 밝은 멜로디가 어우러진다. 애프터스쿨의 진한 변신을 느껴보고 싶다면, 마지막 트랙의 ‘화장을 하다 울었어’를 권하고 싶다. 이별한 여인의 절절함이 묻어난다.

글. 이재원 jjstar@tenasia.co.kr

사진제공. 플래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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