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깍지를 벗고 바라 본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실제 역사는?
방송화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화면

언제부터였을까?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극본 최정미, 연출 부성철)에 화가 나기 시작한 건. 처음에는 모든 것이 예뻤다. 장희빈을 인간 장옥정으로 바라보고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를 시도한 것이 신선했고, 유아인이 연기한 숙종은 ‘숙종앓이’를 일으킬 정도로 섹시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김태희와 유아인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니 드러나는 건 역사왜곡의 온상.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재미를 위해서 역사 왜곡까지 과감하게 시도했지만 시청률은 아직도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하지만 몰입을 방해하는 지나친 역사 왜곡은 문제가 된다. 드라마 속에 숨은 진짜 역사적 사실을 한 번쯤은 짚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역사적 오류 네 가지만 꼽아봤다.

1. 인경아가씨 그리고 인현아가씨?

콩깍지를 벗고 바라 본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실제 역사는?
방송 화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 화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 초반부에는 인경왕후와 인현왕후의 중전이 되기 전의 모습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 둘을 ‘인경’과 ‘인현’아가씨로 부른다. 그러나 ‘인경’과 ‘인현’의 칭호는 ‘시호(諡號)’로 붙여진 이름이다. 시호는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를 말한다. 따라서 실제로 인경왕후나 인현왕후는 각각 김씨나 민씨로만 불릴 뿐, 인경이니 인현이니 하는 말들은 살아생전에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혹시라도 드라마를 통해 시호를 실제 이름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을까 우려된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그동안 성은 장씨, 이름은 희빈으로 각인된 장희빈의 실제 이름을 ‘장옥정’으로 알리는 데에는 공헌했지만 다시 왕비 민씨를 ‘민인현’으로 각인시킨 오류를 범했다.

인경왕후와 인현왕후가 또래로 묘사된 것도 잘못됐다. 인경왕후는 1661년생이며 인현왕후는 1667년생이다. 인경왕후가 1771년에 세자빈으로 책봉됐을 때 인현왕후는 다섯 살 아이에 불과했다. 참고로 장옥정은 1659년 생으로 인현왕후보다 무려 여덟 살이 많다. 숙종은 1661년생으로 인경왕후와 동갑이며 장옥정보다 2살 연하다. 실제 김태희와 유아인이 연상연하인 것처럼 장옥정과 숙종도 연상연하!

2. 대비 김씨는 불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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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화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 화면

숙종밖에 모르는 아들바보, 서인밖에 모르는 서인바보인 대비 김씨(훗날 명성왕후)의 모습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사건건 장옥정을 방해하고 심지어 장옥정이 유산까지 하게 만든 대비 김씨는 역사적으로 이미 장옥정이 숙원이 되기 전에 죽었어야 하는 사람이다. 대비 김씨는 드라마에 나온 것처럼 천연두가 걸린 숙종을 위해 얼음물로 굿을 하다가 그 후유증으로 죽는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대비 김씨는 피만 조금 토하고 병석에 며칠 누웠더니 어느새 금방 나아 장옥정을 괴롭힌다. 심지어 병상에 있을 때도 계략을 짜는 머리만큼은 아프지 않았던 불사신 대비는 장옥정이 희빈이 되고 아들을 낳을 때까지 살아 있다. 드라마의 진정한 트러블 메이커, 대비 김씨는 언제까지 드라마의 내용 전개를 위해 살아 있어야 하는가.

실제로 대비가 계속 살아있었다면 장희빈은 역사에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궁녀 였던 장옥정이 대비에 의해 쫓겨나지만 숙종은 대비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장옥정을 바로 찾아내 숙원의 자리에까지 앉힌다. 궁녀 장옥정이 대비에 의해 쫓겨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숙종은 어머니를 넘어서지 못했다. 숙종은 대비가 숨을 거두고 나서야 장옥정을 궁으로 불러들인다. 장옥정이 처음 승은을 입은 것은 그녀의 나이 21세 때인 1680년이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을 때는 25세였다. 실제로는 무려 4년여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대비가 없는 옥정에게는 입궁 후 남은 것은 승승장구뿐이었다.

3. 숙원에서 희빈으로, 장옥정의 고속 승진?!

콩깍지를 벗고 바라 본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실제 역사는?
방송 화면"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 화면


승승장구에도 절차는 있는 법. 장옥정은 1686년 종4품 숙원의 자리에 오른 후 단숨에 정1품 희빈이 된 것은 아니다. 극중에서 장옥정은 숙원 시절, 서인의 계략에 의해 말에서 떨어져 유산을 하게 되고 계략을 알아챈 숙종이 분노하여 장옥정을 희빈으로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장옥정이 희빈이 된 것은 1688년에 왕자 윤(?. 뒤의 경종)을 낳으면서이다. 게다가 단숨에 승진한 것이 아니라 회임을 하면서 소의(정2품, 1688)로 승급됐고 이듬해 왕자 윤이 원자(왕의 적장자)로 인정되면서 희빈에 책봉됐다. 남인 편에 서 있는 후궁의 아들이 원자로 되는 것은 실제 역사에서도 무리가 따랐다. 당시 송시열 등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은 왕비 민씨(인현왕후)가 아직 젊다는 이유로 후일을 기다리자고 주장했다. 서인은 책봉 뒤에도 상소를 올리며 계속 반대하였고 진노한 숙종이 송시열을 유배시키고 사사를 명했다. 이에 따라 장희빈의 편이었던 남인이 정권을 잡게 되었고 이것이 그 유명한 기사환국(1689)이다.

실제 역사에서 보듯 옥정의 희빈 책봉은 드라마처럼 숙종의 총애로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후궁이 아무리 장자를 낳아도 그에 따른 정치적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책봉은 쉽게 되지 않는다. 그만큼 옥정의 희빈 책봉은 무리한 시도였음에도 드라마 속에서는 한 밤 중 사랑고백으로 넘어가버린다. 이 책봉이 실제 역사에서는 서인의 거두 송시열을 비롯해 많은 서인 관료들을 파직시켰지만 드라마에서 서인들은 지금도 계략을 잘 세우고 있다.

4. 송시열 어디 갔어? 윤휴 어디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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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화면 속 민유중과 차례대로 송시열, 윤휴의 초상"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화면 속 민유중과 차례대로 송시열, 윤휴의 초상


파란만장한 정치적 사건들이 발생했던 숙종 시기에는 꼭 빠질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남인의 거두 윤휴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송시열과 윤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이 서인을 대표하고, 남인은 장옥정의 생모와 관련 있는 조사석이 나서고 있다. 드라마 속 민유중은 왕을 우습게 알고 각종 비리의 중심에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실제 민유중은 현종대에 함경도 경성판관으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7개 고을의 주민이 송덕비를 세우기도 했을 정도로 강직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드라마의 현실적 캐스팅 문제 상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송시열의 성격을 더하고, 장옥정의 편인 조사석에 윤휴를 더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무게감을 차지하고 있는 송시열과 윤휴가 없는 숙종대의 이야기는 아쉽다.

* 최고의 고증은 장옥정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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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이 가득한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도 제대로 된 고증 한 가지는 있다. 바로 ‘장옥정의 외모’이다. 물론 지금의 미인상과 당대의 미인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한 시대의 최고 미녀였다는 점이 같다. 조선시대에는 어우동, 황진이와 수많은 비빈 등 당대를 풍미한 미녀들이 많이 있지만 실록에 외모나 나이가 기록된 사람은 오직 장옥정뿐이다. “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被抄於內人, 入宮中, 頗有容色)”는 숙종실록에 실린 묘사는 이례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장희빈을 연기했던 9명의 장희빈 중 가장 미모가 빼어나다는 대한민국 대표미녀 김태희가 장희빈 최고의 고증이 아닐까.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제공. SBS,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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