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현
윤상현
배우 윤상현은 느낌이 묘한 배우다. 한때 일본 배우 기무라 타쿠야의 판박이라는 수식 붙었을 만큼 뛰어난 외모와 장난기 가득한 눈빛만 보면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시종일관 얼굴엔 웃음을 띠며 농을 치지만 질문에 답할 때는 막힘이 없다. 유쾌함과 진중함, 그에게는 묘하게 뒤섞이기 어려울 것 같은 이 두 가지가 매력의 묘한 조화가 느껴진다. 누구라도 그와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 보면 몇몇 작품에서 그가 맡았던 캐릭터들이 단순히 연기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삶이다”라고 조금은 이기적으로 느껴질만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이미 수차례 방송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그의 조금은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그에게는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느껴진다. 물론 돈이나 명예와 같은 가치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삶에 대한 경험과 나름의 인생관을 확립한 이에게서만 느껴지는 여유다. 불혹을 앞뒀지만, 싱글이고, 쾌활하며, 여전히 열정적인 윤상현을 만나는 시간은 그렇게 흥미로웠고 즐거움이 가득했다.

Q. ‘너목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종방했다. 드라마를 한동안 쉬었던 터라 의미가 남다르겠다.
윤상현: 워낙 준비기간이 길었던 작품이기에 처음부터 잘 될 줄 알았다(웃음). 개인적으로는 얼마간 작품 활동을 쉬면서 감을 잊었었는데 ‘너목들’을 통해서 감을 되찾았다.

Q.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부분이지만 당신은 캐릭터 연기가 무척 뛰어나다(웃음).
윤상현: 사실 처음에 대본만 봤을 때는 고민이 많았다. 2011년에 MBC 드라마 ‘지고는 못살아’를 하며 변호사 역을 맡았기도 했고, 차관우의 캐릭터가 박수하(이종석), 장혜성(이보영), 민준국(정웅인), 서도연(이다희) 등의 배역들처럼 극과 개연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캐릭터 연기도 계속 반복되면 ‘윤상현 또 똑같은 연기 하네’라고 하실 것 같아서 준비하면서도 고심이 깊었다.

Q. 결과적으로 차관우 역을 잘 표현해낸 것 같은가. 캐릭터를 표현하며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
윤상현: 대본을 보니 관우가 변론을 하는 법정신이 많더라. 시나리오가 아무리 탄탄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아직 법정드라마는 생소한 장르다. 초반에 법정신을 찍을 때 시청자의 눈길을 확 잡아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변론 장면 준비에 공을 들였는데 생각보다 그 부분이 잘 나온 것 같다. 법정신에서 보시는 분들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고, 차관우 변호사 역을 통해 국선 변호사의 모범과 방향성을 제시하고 싶었다.
윤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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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 중에서 민준국을 변호하면서부터 러브라인이 사라졌음을 물론이고 욕도 많이 먹게 됐다.
윤상현: 모든 게 다 민준국 때문이다(웃음). 물론 처음에 작가가 나에게 “상현씨는 욕을 많이 먹게 될 거다”고 얘기는 했었다. 초반에 관우와 혜성이 손등 키스를 하고 상갓집 가서 식사를 챙겨줄 때만 해도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민준국을 변호하면서부터 다 깨졌다. 민준국을 변호하는 과정에서 관우의 내적 갈등을 디테일하게 보여드렸다면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설명조차 없이 민준국이 풀려나게 되자 내가 온갖 욕을 다 듣게 됐다(웃음).

Q. 차관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서인지 후반부의 형사물은 극에서 조금 튄다고 느껴졌다.
윤상현: 작가님이 그런 이야기를 충분히 안 해줬다. 처음에 “차관우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겠냐”고 했더니 “순수하고 맑은 아이처럼 표현하라”는 대답만 들었다. 그래서 정말 딱 그 정도로만 연기하게 된 거고(웃음). ‘차관우가 옛날에 멋진 형사인데 나중에 변호사가 됐다’는 말 한마디만 해줬더라도 좀 더 어른스러운 캐릭터로 풀어냈을 거다.

Q. 박수하, 장혜성, 민준국이 극에 긴장을 조성하는 역할이었다면 차관우는 그 반대였다. 분량이 많지 않은 가운데 중심 잡기가 쉽지는 않았겠다.
윤상현: 처음에는 불만도 있었다(웃음). 차관우의 분량이 적은데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한마디씩 하는 게 전부다 보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극의 전개에 가속도가 붙게 되니까 맥락상 내가 들어갈 여지도 없겠더라. 극에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맡은 소임을 해내는 데 집중했다. 차관우를 보면서 주변 인물들이 내적 성장을 경험하는 모습이 담겨야 하는데 그 부분을 세밀하게 표현해내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다.

Q. ‘너목들’ 제작발표회 당시에는 “이번에 내가 잘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상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크다(웃음). ‘내조의 여왕’, ‘아가씨를 부탁해’, ‘시크릿가든’ 등에서 줄곧 선보인 연기를 계속한다면 시청자분들도 질려하실 거다. 드라마 상에선 눈에 잘 보이지 않더라도 모든 캐릭터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다 담고 있다. 캐릭터 내면의 다양성이 살아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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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윤상현: 드라마를 쉬는 기간 동안 느낀 것은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역할이나 캐릭터가 생각하는 대로 잘 표현되면 스스로 만족하는 스타일이다. 캐릭터 자체의 무게감보다도 어떤 캐릭터를 맡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항상 좋은 작품만을 할 수는 없다. 내가 연기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웃음).

Q. 혼자 산 지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결혼에 대한 부담은 없나.
윤상현: 혼자 산지는 14년이 됐다. 요즘 들어 더 절실히 느끼는 건 혼자 사는 게 내 취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은 작품 마칠 때마다 부모님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가 몸이 안 좋으셔서 결혼을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최근 ‘너목들’에서 인연을 맺은 김광규 덕분에 MBC ‘나 혼자 산다’에도 출연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보며 공감은 됐지만 엮이고 싶지는 않다(웃음).

Q. 어느덧 마흔 줄에 접어들었다. 배우로든 남자로든 심경이 복잡할 듯하다.
윤상현: 정확히 말하자면 생일이 안 지났으니 아직 마흔은 아니다(웃음). 연기에 대한 부담은 크게 없다. 연기는 나의 삶의 모습 중 한 부분이니까. 원래 긍정적인 성격으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빨리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일산에서 레스토랑을 차릴 계획이다. 요리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니까 크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안 받고 철없이 사는 거다(웃음).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제공. 와이트리미디어, 엠지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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