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tvN ‘꽃보다 할배’의 감동의 순간은 중견배우 신구의 눈가에서 탄생된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H4(할배4)의 배낭여행을 다룬 이 예능 프로그램의 가장 큰 미덕은 젊은 세대에게 어려운 존재로만 각인됐던 우리 ‘할배’들의 가슴에도 보드라운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 아닐까.

그중에서도 ‘구야형’ 신구 할배가 보여주는 감정은 유럽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풍광보다도 더 큰 감동을 가져다준다. 무조건 직진, 앞으로 달리는 이순재 형과 다리가 불편해 걷는 것이 힘든 백일섭 막내 사이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이곳저곳을 살뜰하게 챙기는 것은 물론, 게스트 하우스 카페테리아에서 불편하게 아침식사를 하던 순간과 짜장라면을 끓이는 법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없어 하는 모습들이 보는 이들의 찐한 감정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드라마 촬영 탓에 유럽에서 다른 멤버들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오던 순간에 서운한 기색도 여과없이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거장으로 불리는 큰 어른인터라 언젠가부터 사람들에게 어려운 존재가 돼버렸지만 가슴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요동치던 감정이 남아있음을 보여준 신구 할아버지의 첫 리얼 버라이어티 도전은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꽃보다 할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미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9월 10일 서초동 흰물결 화이트홀에서 첫 공연) 연습에 돌입해 있었다. 배우로 산지도 이제 반백년. 연극 ‘소’로 1962년 데뷔한 그에게 연극은 꼭 먹어야 하는 밥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여전히 바쁜 와중에도 연극 무대에는 꼭 서려한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열정의 크기는 젊은 우리보다 더 거대하다.

Q. 안녕하세요. 선생님. 요즘 ‘꽃보다 할배’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보면서 저는 태어나기 전이라 보지 못했던 선생님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과거의 작품들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선생님들 옛날이야기 좀 부탁드릴게요.
신구 : 에이, 무슨 옛날이야기야. 그때는 다들 바빴죠. 이순재 형과 박근형, 그 사람들은 다 주인공하고 그랬었지. 나는 주인공은 잘 못했어. 그때도 아버지나 아저씨 그런 쪽이었어 나는. 그러니까 연애하는 그런 드라마는 나는 못해봤어. 그런데 순재 형이야 말할 것 없고, 박근형도 다 젊은 주인공 감 아니야. 미남이었으니까. 순재 형은 영화를 얼마나 했는데 트로이카라는 문희같은 여배우들하고도 영화 많이 하고, 제일 화려하게 했지.

Q. 우와, 그때는 정말 화려하셨을 것 같아요.
신구 : 하지만 그때 돈이 있었어야지. 지금 떠있는 배우들과는 비교도 안됐어.

Q. 그럼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배우가 되려고 하셨던 건가요?
신구 : 옛날이야기를 자꾸만 기계 틀어놓듯 하는 것 같은데, 난 실은 아나운서가 되려고 했어. 요즘에야 아나운서들도 다양하게 활용되지만, 그때만 해도 아나운서가 그렇지 못했거든. 그래서 그보다는 배우가 더 다양하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마침 지금은 돌아가신 동랑 유치진 선생이 드라마센터를 개관하시면서, 연극아카데미라는 특수학교를 만들었지. 배우나 극작가, 연출가 같은 인재들을 키우신다고. 거기에 내가 들어간거예요. 그게 60년대 일이야. 그 선생님이 내 예명을 지어주셨어요. 신구라는.

‘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Q. 아, 예명이었군요.
신구 : 본명은 신순기야. 촌스럽잖아.

Q. 전혀요. 그렇지만 신 자 구 자가 더 멋있기는 해요(웃음)
신구 : 하하하.

Q. 선생님, 첫 작품에 서던 순간의 이야기도 부탁드릴게요.
신구 : 연극 ‘소’를 했었어. 나는 텔레비전을 하면서도 연극을 놓지를 못해. 지난 3월에는 ‘안티고네’를 했었고, 작년에는 손숙 씨와 ‘드라이빙 미스데이지’를 했었어. 연극은 내게는 꼭 먹어야 하는 밥과 같아.

Q. ‘꽃보다 할배’ 인기 덕에 선생님 연극도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꼭 보러 오겠습니다.
신구 : 그게 내 소망이야. 그러니까 기사를 잘 써요(웃음).

Q. 과거에는 H4 선생님들이 한 작품에서 활동하신 적도 있으셨겠어요.
신구 : 근래에는 같이 작업한 작품이 없는데, 예전에는 연극도 같이 하고 프로그램도 같이 하고 그랬지. 그런데 나이 들면서 그럴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없어지고 그랬어. 그런 찰나에 이런 기회(꽃보다 할배)가 만들어져서 새삼스럽게 어우러졌지.

Q. 처음 나영석 PD가 예능 출연 제안을 했을 때는 어떠셨어요?
신구 : 영석이라는 친구가 참 기발해요. 늙은이 넷을 모아가지고 그런 작업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

Q. 배낭여행이라는 콘셉트 때문에 고생도 적잖게 하셔야 했어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신구 : 콘셉트가 배낭여행이니까 (감수해야지). 비록 할배들이 가는 것이지만 이동하면서 편안하게 차타고 다니고 그러면 배낭여행의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지하철이나 버스, 이런 것을 타보고 해야 도시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되죠. 사람들도 만나보고 그 생활도 보게 되고 그런 것들이 이 여행의 맛이고.

Q. 정말 대단하세요.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젊었을 때 시대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새롭고 가치 있는 일에 시도해보라고 하신 말씀이요.
신구 : 우리 때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특히 머리 노랗고 눈 파랗고 키도 큰 서양인들 보면 저 우수한 종족들, 잘난 애들 이런 선입견이 있어서 괜히 주눅이 들었어요. 말 한 마디 하려고 해도 문법부터 생각하다 말해야 될 시간은 지나가고 그런 경험이 있지. 그런데 요즘이야. 그렇게 서양 사람들 보고 주눅 드는 친구들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젊은이들이 당당하고 떳떳해보여서 좋아요. 또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여행 자체는 여러 경험을 하게 하고 풍부하게 살찌게 하고 지식을 쌓게 만드는 건데, 그래도 내가 이 나이에 해보니까 역시 젊어서 이런 경험을 해 축적해 놓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약주를 좋아하시는 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웃음).
신구 : 나는 술을 좋아하니까 술을 먹기 위해서라도 매일 러닝머신을 빨리 걸어요. 술 좋아하는데 운동을 안 하면 금방 사람이 못쓰게 돼요. 사실 현지에 가면 현지 술과 음식을 즐기는 것이 좋긴 한데 양주나 와인은 입에 안 맞더라고. 소주가 평생 입에 붙어서.

Q. 선생님들 사이에 서열이 있다는 것도 ‘꽃보다 할배’에서 재미있는 지점이었어요.
신구 : 평상시에도 (이순재) 형이고 선배고 나이가 있으니까 나보다도 2살 위시고, (박)근형인 내 밑이고 (백)일섭이는 제일 밑이고. 일상생활에도 형이고 다 그렇지. 자연히 원,투,쓰리,포.

Q. ‘구야형’이라는 애칭도 친근하고 재미있었어요. 그 애칭은 원래부터 있었던 건가요?
신구 : 내가 신구니까 구 아니야. 예전에 사미자 씨 남편이 나보고 ‘구야, 구야’ 그랬어. 그걸 근형이가 듣고 나보고 ‘구야’라고 부를 수 없잖아. 형을 붙인거지(웃음).

Q. 선생님이 H4에서 중재 역할을 담당하셨어요.
신구 : 그럴 수밖에 없지. 나이도 중간이지만 백일섭이가 늘 쳐진단 말이야. 이 양반(이순재)은 늘 앞도 안 보고 가버리고. 그래서 중간에서 이쪽 세우고 이쪽 끌고 그래야 돼.

대만행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한 최불암(왼쪽) 백일섭 신구 박근형
대만행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한 최불암(왼쪽) 백일섭 신구 박근형
대만행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한 최불암(왼쪽) 백일섭 신구 박근형

Q. 여행 다녀오시고 나서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특히 선생님께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돌아오셔서요, 그때 서운해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신구 : 아유. 짠하지. 그럼. 호텔에서 각방 쓰고 그랬으면 그런 정서는 안 생겼을지 몰라. 좁은 방에서 늙은이 셋 몰아넣고 자게 만들고 뭐 끓여먹게 만들고 그러니까 있는동안 남다른 정이 들었죠.

Q. 평소에 연락은 자주 하시나요?
신구 : 안 했어(웃음). 하지만 낼 모레 만나요. 엊그저께도 만나고. 낼 모레는 CF 찍느라고 만나게 됐어요.

Q. CF 제안이 많이 들어온다고 들었어요.
신구 : 뭐, 문의는 많이 들어오죠. 넷이 함께 하는 것은 나는 매니지먼트가 없어 저쪽에 다 맡겨버렸어. 단, 개런티에 차등이 있는 것은 난 반대다 했죠. 다 똑같이 주면 주고 어느 한 사람이 나이가 적다거나 해서 적게 받는 경우에는 난 안한다 그랬죠. 그게 그렇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어느 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넷이 함께였기 때문이었으니까.

Q. 대만으로 가실 때는 최불암 선생님께서도 공항으로 배웅을 가셨어요. 이런 인기, 부러워하진 않으세요?
신구 : 아마 프러포즈가 갔을 거요. 하지만 국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털고 갈 수가 없었던 게죠.

Q. 선생님, 이번 여행이 재충전이 되셨을 것 같아요.
신구 : 그럼요. 다만 나이가 들어가더라도, 자기 건강은 자기가 잘 유지하고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건강은 개인의 행복이니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아직 있는만큼, 건강에도 충실해야겠다 생각했죠.

Q. 어르신들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으신 것 같았어요. 선생님들이 계속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것에 저희도 마음이 좋았고요.
신구 : 그렇게 자극 된다면 좋죠. 그렇지만 혼자 배낭여행은 힘들 수 있어요. 동료가 있어야 할 수 있는거죠. 내 몸같이 서로 아껴주는 사람이고, 나 같이 생각하는 친구와 동료가 있어야 가능해.

Q. 그리고 (이)서진 씨 같은 짐꾼도 있어야 하고요(웃음).
신구 : (이서진은) 참 착해요. 제 일을 열심히 하고 깍듯하고, 제대로 배운 아이에요. 아들 같고 그렇죠. 충분히 아들 되죠.

Q. 선생님들도 활동을 활발하게 하시고, 세계적으로도 이제는 실버 문화에 관한 관심이 높아요. 이제 주류가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신구 : 한 때지. 한 때.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은 역시 젊은이들이죠.

Q. 선생님, 그런데 나영석 PD는 ‘선생님들은 ‘꽃보다 할배’가 인기가 있다그러니 그런가보다 하시지만 실제로 재미있어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정말 어떠신가요?
신구 : 왜 난리들인가 싶어. 그냥 우리 일상대로 하는 건데, 그 나라 풍물은 영화로도 얼마든지 본 것인데 새삼스럽죠. 그렇지만 드라마는 대본에 쓰여진 디렉션과 대사에 따라 흘러가니 그 범주를 벗어날 수가 없지만, 요즘은 주연배우들도 무너지는 것이 대세고. 평생을 그렇게 지내온 네 사람이 규범에서 벗어났으니까. 자유로운 일상 속에 자신의 모습이나 버릇들이 나오고 그게 부딪히면서 재미를 느끼시는 것 같아요. 또 자연 풍물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즐길 수 있게 만들어지고 그랬던 것 같아요.

Q. 말씀하신대로, 선생님들의 일상을 다 카메라에 담는 거잖아요. 처음에는 불편하셨을 것 같아요.
신구 : 그렇죠. 자고 일어난 내 모습도 내가 모르고, 일어나서 거울로나 볼 것들이니까. 처음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웠어. 턱 밑에 마이크도 있고, 하루 종일 무슨 말을 하건 녹음이 다 되고, VJ들도 하나씩 붙고 풀 샷도 찍고. 답답하고 감시받는 것 같고 그랬어요. 그런데 지나니까 마이크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자유롭게 해요. 알아서 편집하겠지 하면서(웃음).

Q. ‘꽃보다 할배’가 참 좋았던 것이, 저희에게는 어려웠던 선생님들이 가깝게 느껴지고 또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돼서 좋았던 것 같아요.
신구 : 내가 그동안에 맡았던 역할이 근엄한 아버지, 무서운 쪽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려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과거에 시트콤을 하나 했더니 초등학생들도 와서 건드리고 그러더라고요. (젊은이들과) 친밀해지는 것 같아요.

Q. 선생님 그거 아세요? ‘꽃보다 할배’ 주 시청층은 20~30대 여성이에요. 그리고 이 세대 여자 시청자들이 선생님 같은 시아버지 만나고 싶다고 그래요.
신구 : 아이고, 시할아버지면 몰라, 시아버지는 무슨(웃음).

‘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꽃보다 할배’ 신구

Q. 선생님, 방송에서 의상도 화제가 됐어요. 특히 공항패션도. 감각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신구 : 여행 갈 때는 다 코디가 해주는 대로 입어요. 자기가 갖고간 옷은 보따리에 그대로 있어요(웃음).

Q. 아, 그러셨군요. 그래도 지금 의상도 너무 잘 어울리세요. 끝으로 선생님이 현재 꾸시는 꿈이 궁금합니다.
신구 : 이 나이에 무슨 꿈이 있겠어요.

Q.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선생님들 모두 너무나 젊어 보이시고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신구 : 이렇게 나한테 섭외가 오는 작품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그 작품을 내가 받았을 때 최선을 다 해 하는 것. 그게 꿈이죠. 이 나이에 뒷방 할애비 노릇 하는 사람도 많을 텐데 현업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워요.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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