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3일간의 비’에 출연 중인 배우 이윤지(왼쪽), 윤박 / 사진제공=(주)악어컴퍼니
연극 ‘3일간의 비’에 출연 중인 배우 이윤지(왼쪽), 윤박 / 사진제공=(주)악어컴퍼니
3일간 비가 내렸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건 실수였을까, 아니면 운명이었을까.

지난달 11일 개막한 연극 ‘3일간의 비'(연출 오만석)는 1960년대와 1995년을 오가는 구성이다. 장소의 변화 없이 한 공간에서 지난날과 오늘이 그려지는 점이 흥미롭다. 또 세 명의 배우가 과거에서는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연기한다는 것도 신선하다. 이윤지는 낸과 라이나, 윤박은 워커와 네드, 서현우는 핍과 테오로 두 번씩 옷을 갈아입는다.

‘3일간의 비’는 1997년 초연된 극작가 리차드 그린버그의 작품이다. 할리우드 배우 줄리아 로버츠, 콜린 퍼스, 제임스 맥어보이 등이 출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올해 초연이다.

배우 오만석이 직접 연출자로 나서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각색까지 도맡았다. 난해하고 공감하기 힘든 대사를 와닿을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거쳤다. 덕분에 극을 보는 데 큰 위화감은 없다. 다만 일부 장면은 유연하게 흘러가지 못한 채 갑자기 배우들의 격한 감정이 튀어 나오기도 한다.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이 잽싸게 치고 빠지는 통에 다음 장면과 대사의 맥이 풀리는 느낌이다.

달라진 옷뿐만 아니라 말투와 표정 등 세세하게 변화를 주며 두 역할을 소화하는 배우들 덕분에 극은 금세 활기를 찾는다. 역할에 몰입해 격분하거나 들뜬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며 앞선 장면의 의아함을 해소해준다.

연극 ‘3일간의 비’의 배우 서현우(왼쪽), 윤박 / 사진제공=(주)악어컴퍼니
연극 ‘3일간의 비’의 배우 서현우(왼쪽), 윤박 / 사진제공=(주)악어컴퍼니
특히 윤박은 거칠고 반항적인 데다 비관적이기까지 한 워커와 말을 더듬으며 지나치게 절제된 삶을 사는 네드를 살아 숨쉬게 했다. 서현우는 윤박, 이윤지를 오가면서 극에 윤활유 역할을 제대로 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우렁찬 발성과 정확한 발음으로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4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이윤지는 감정의 기복이 심한 인물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표현했다.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에선 내면의 깊이가 느껴졌다.

‘3일간의 비’는 비 내리는 마지막 날을 조명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격하게 달려오다 점차 차분해지고, 네드는 귓가를 멍하게 만드는 마지막 말을 읊조린다. 정점으로 치닫는 과정을 탄탄하게 만든 다음, “이 대사를 살렸다면 더 진한 여운이 남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는 9월 1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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