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카르멘’ 공연 장면.
뮤지컬 ‘카르멘’ 공연 장면.
뮤지컬 ‘카르멘’ 공연 장면.

스페인의 한 도시. 시장(이정열)의 딸 카타리나(이정화)와 훈남 경찰 호세(류정한)의 화려한 약혼식 광경. 호세는 약혼녀에게 뜨거운 마음을 전하려는데, 혼전순결을 중시한다는 말에 주저한다. 이 일이 빌미가 됐을까. 어느 날 호세는 뇌쇄적인 매력을 지닌 카르멘(바다)을 만나고, 예상치 않은 갈등을 겪게 된다. 순결한 카타리나와 치명적 유혹을 지닌 카르멘 중에서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 것. 더욱이 카르멘이 속한 서커스단 주인 가르시아(에녹)는 호세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데….(중략)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오페라, 연극, 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관객과 만나온 ‘카르멘’이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을 필두로 한 브로드웨이 드림팀에 의해 뮤지컬로 탄생했다. 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이 작품이 뮤지컬 장르로 국내 무대 초연으로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흔한 말마따나 ‘우려 반 기대 반’. 또한 수차례 동명의 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대중성이 뛰어난 이 작품이 어떤 모습의 뮤지컬로 탈바꿈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영화 ‘카르멘 존스’(1954) 포스터.
영화 ‘카르멘 존스’(1954) 포스터.
영화 ‘카르멘 존스’(1954) 포스터.


‘카르멘’이란 타이틀을 지닌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나는 작품은 ‘카르멘 존스’(Carmen Jones, 1954). 이유인 즉 주연을 맡은 도로시 댄드리지가 흑인여배우론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고, 이 작품을 계기로 흑인 여성에 대한 편견이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 기존의 흑인 여배우는 하녀를 비롯해 백인의 치다꺼리 혹은 아웃사이더 이미지에 머물렀는데, 이젠 흑인 남성은 물론이고 백인 남성의 눈길마저 사로잡는 매혹적인 여자로 신분상승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가 개봉된 지 몇십년이 지난 어느 날, 흑인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할리 베리가 수상 소감에서 도로시 댄드리지에 대한 고마움을 피력했다. 그만큼 댄드리지가 흑인배우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그에 따라 영화 ‘카르멘 존스’는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카르멘 존스’의 영화적 특징은 배우와 스태프가 온통 흑인이라는 것과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한편으로 도로시 댄드리지의 실제 삶은 여주인공 카르멘처럼 피폐하고 우여곡절이 많았으며,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럼 이번에 새롭게 태어난 뮤지컬 ‘카르멘’은 어떤 특성이 있을까. 가장 큰 차이점은 이제껏 알고 있던 여주인공 카르멘의 캐릭터를 비롯해 내용 전체가 대폭 수정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극적 반전을 이루는데, 스포일러라 언급할 수 없고 직접 공연에서 확인하시길.)

뮤지컬 ‘카르멘’에서 카르멘 역의 바다(왼쪽)와 가르시아 역의 에녹.
뮤지컬 ‘카르멘’에서 카르멘 역의 바다(왼쪽)와 가르시아 역의 에녹.
뮤지컬 ‘카르멘’에서 카르멘 역의 바다(왼쪽)와 가르시아 역의 에녹.

이 공연에는 몇몇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가르시아역의 에녹이 특유의 마초적인 분위기로 객석을 긴장시켰고, 부패한 시장 역의 이정열이 관록의 연기와 가창력을 새삼 확인시켰으며, 이네즈 역의 유보영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특히 카르멘 역의 바다가 무대 전체를 압도했다. ‘불후의 명곡’에서 검증된 그녀의 가창력을 공연 무대에서 직접 봤을 때의 느낌은 한 마디로 ‘기대 이상의 그것’. 무대 장악력은 물론이고 격렬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를 때 음정이나 호흡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장면에선 탄사가 절로 나왔다. 더욱이 카르멘의 캐릭터를 그녀 이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뮤지컬 ‘카르멘’은 ‘바다에 의한 바다의 매력이 한껏 발산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으로 고난도 수준의 서커스와 그에 따른 화려한 무대소품과 의상도 재미를 톡톡히 보여주고 있다. 특정 주제를 서커스와 연결해서 공연을 하는 ‘태양의 서커스’를 보듯, 이와 비슷한 콘셉트의 서커스와 마술이 등장한다. 놀라운 점은 서커스를 직접 선보인 이가 뮤지컬배우라는 점. 따라서 이 공연을 관람하면 뮤지컬과 서커스를 동시에 보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끝으로 이 뮤지컬에서 한 가지 아쉬운 건 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뮤직넘버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 카르멘이 호세 그리고 가르시아와 듀엣으로 부르는 ‘나 같은 여자’와 ‘너는 내가 가진다’는 강렬한 비트와 리듬, 자극적인 가사로 눈길을 끌지만, 동명의 오페라에 나오는 ‘하바네라’와 ‘투우사의 노래’에 비해선 중독성이 아무래도 약하다. 만일 오페라 곡이 뮤지컬에 그대로 나왔으면 혹은 오페라 못지않은 뮤직넘버가 무대에 올랐으면 어땠을까. 이러한 상상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이 공연의 재미가 뛰어난데 따른 또 다른 기대감의 표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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