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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무대에서 노래를 하던 세인트 빈센트가 갑자기 2층 난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태프 위에 올라서더니 마치 잔 다르크처럼 씩씩하게 벽을 타고 2층 발코니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2층 발코니 바깥쪽에 한 손으로 매달린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기타를 연신 두들겨댔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2층 관객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세인트 빈센트 때문에 놀랐고, 1층 관객들은 입을 헤벌쭉 벌리고 그 모습을 올려다 볼 수밖에 없었다. 세인트 빈센트는 추락의 두려움 따위는 머릿속에 계산하지도 않는 ‘철녀’였다. 공연 내내 아름답고, 살벌하고,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뭘 잡숫기에 저리도 아름다울까?

24일 서교동 예스24무브홀 앞에는 세인트 빈센트의 첫 내한공연을 보려는 관객들로 긴 줄이 늘어섰다. 공연 시작 시간이 오후 8시가 되자 무브홀은 몰려든 관객으로 계단까지 붐비기 시작했다. 관객이 계속 들어오자 공연장 측은 막아놨던 2층을 개방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록 스타이지만, 국내에는 인지도가 낮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오산이었다.
st. vincent-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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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빈센트는 무대 등장부터 달랐다. 우아하게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래틀스네이크(Rattlesnake)’에 맞춰 퍼포먼스 먼저 선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마임과 같은 동작들은 단숨에 관객들을 빨려들게 만들었다. 발레리나처럼 종종걸음으로 무대 위를 누비던 세인트 빈센트는 기타를 어깨에 메자 살벌한 굉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인트 빈센트는 관객이 건넨 ‘천사머리띠’를 받더니 용케도 자신의 목에 끼고 연주를 이어나갔다. 마치 록의 괴물이 마네킹에 빙의를 한 것 같았다. 신세계였다.

국내 마니아들 사이에 가장 잘 알려진 곡 ‘디지털 위트니스(Digital Witness)’가 흐르자 객석에서는 반가운 함성이 들려왔다. 옆으로 고개를 까딱까딱하는 몸짓은 상당히 절도가 있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마치 노래의 일부와 같았다.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는 임팩트가 매우 강해 압도되는 수준이었다. ‘크루얼(Cruel)’의 환상적인 멜로디가 이어지자 그나마 노래가 귀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단지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인트 빈센트의 새로운 세상에 초대된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코리아’라고 말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st. vincent-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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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봤을 때 차가웠던 세인트 빈센트의 인상은 실제로 보니 따뜻하고 열정적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노래를 하면서 어쩌면 그렇게 눈을 예쁘게 뜰 수 있는지. 그녀는 여성의 강점을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최대한 살리는 듯 보였다. 마이크를 감아쥐는 손가락조차도 각이 잡혀 있을 정도였다. 군무를 추는가 하면, 바닥에 드러누워 노래를 하는 모습은 정말 대단했다. 긴 팔과 긴 다리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눈빛으로 관객을 압도하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환상적인 음악이 귓가에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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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때문에 관객들이 넋이 나가 있을 무렵, 세인트 빈센트는 ‘유어 립스 아 레드(Your Lips Are Red)’을 연주하다가 2층으로 벽을 타고 올라가는 희대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난간을 잡고 2층 발코니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 위험해 보였지만, 순간 그녀가 어린 시절 축구를 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조금 안심이 되더라. 세인트 빈센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대로 복귀해 무사히 노래를 마쳤다.

이날 공연에는 중간에 기타소리가 들리지 않는 등 음향적인 문제가 있었다. 헌데 세인트 빈센트는 중간에 사운드가 잘 안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퍼포먼스를 이어갔다. 공기의 흐름은 그대로였다. 전혀 당황하지 않는 모습. 대단한 여자였다. 수많은 공연 경력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순간을 만들겠다는 강박마저 있는 것 같았다. 매 곡마다 춤사위는 기타 연주만큼이나 도발적이었으며, 음악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창조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것은 온전한 세인트 빈센트의 세상이었다. 그녀는 신세계,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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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김밥레코즈(사진 안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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