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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찬권(58)이 20일 아쉽게 세상을 떠났다. 그는 40여 년 간 한국 록을 지켜온 파수꾼이었다. 많은 이들은 그를 들국화의 드러머로 기억하겠지만, 그것은 주찬권 음악인생 일부에 불과하다.

열다섯 살에 형들과 처음 무대에 오른 주찬권은 1974년 뉴스 보이스, 1978년 믿음소망사랑, 1983년 신중현과 세 나그네 등을 거쳤다. 1988년 솔로 1집에서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기타를 직접 연주한 그는 꾸준히 솔로활동을 하며 솔로 6집 ‘지금 여기’(2012)까지 발표했다. 여섯 장의 정규앨범은 들국화 출신의 전인권과 같고, 최성원보다 많은 숫자. 주찬권은 비록 큰 조명은 받지 못했지만 매 앨범마다 완성도 높은 음악을 펼쳐냈다. 그의 행보는 마치 비틀즈 해산 이후 재능을 만개한 조지 해리슨을 떠올리게 했고, 록에 대한 뚝심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주찬권은 흔히 들국화의 드러머로 널리 회자된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찬란한 명반으로 남은 들국화 1집에 세션연주자로 참가해 2집부터 정식 멤버로 활동했다. 포크 성향의 밴드였던 들국화가 록밴드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주찬권의 터프한 드럼 연주 덕분이었다. 주찬권은 들국화 외에도 다양한 밴드에서 활동해왔다. 들국화의 상징성이 워낙에 큰 탓에 대중에게는 여전히 들국화의 드러머로 익숙할 뿐이다. 2010년에는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신천블루스의 엄인호와 함께 한 프로젝트 ‘슈퍼세션’을 통해 노익장을 과시하며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는 들국화 멤버 중 가장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으며 후배들에게 산과 같은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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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찬권이 여타 드러머들과 다른 점은 기타, 건반 등 여러 가지 악기를 고루 다루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점이다. 드럼을 배우기 전 5살 때 기타를 먼저 잡았다. 열살 많은 친형한테서 기타를 배웠고, 이후 자신은 믿음소망사랑, 들국화의 명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최구희에게 기타를 가르치기도 했다. 주찬권은 미8군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여러 포지션을 소화했다. 그 자신은 “밴드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악기를 배우게 됐다. ‘서당개 3년’같은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1988년에 나온 솔로 1집 ‘SOLO’에서 전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고 기타를 직접 연주했다. 이 앨범에는 주찬권을 대표하는 명곡 ‘왠일로’가 담겼다. 전인권 못지않은 매력적인 보컬과 투박하지만 터프한 맛이 있는 기타연주가 일품이 곡. 이후 그는 자신의 솔로앨범을 원맨밴드 형태로 만들어오며 60년대 영미 클래식 록의 성향을 내비쳤다. 주찬권 본인은 “어렸을 때는 레드 제플린, 킹 크림슨, 핑크 플로이드, 지미 헨드릭스 등 굉장히 끝에 가 있는 록을 듣고 자랐고, 나도 그들처럼 대중성보다는 내 음악을 하려고 했다. 그가 원맨밴드 형태의 작업을 처음 시도한 것은 1999년에 나온 4집 ‘원 맨 밴드(One Man Band)’부터다. 주찬권이 원맨밴드를 고집하는 이유는 온전히 자신의 음악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작년에 나온 정규 6집 ‘지금 여기’는 주찬권의 솔로 유작으로 남았다. 이 앨범에는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노래들이 담겼다. ‘인생 뭐있다구’, ‘그냥’, ‘잠시 쉬었다가세’, ‘이순간은 우리의것’은 제목에서부터 인생을 돌아보는 허허로움이 느껴진다. 작년에 인터뷰를 했던 주찬권은 이 앨범에 대해 “이제 나이가 먹으니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이 좋더라. 이제 나도 젊음이 갔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앨범의 백미는 마지막 곡 ‘이순간은 우리의 것’이다. 멜로디와 가사의 합치는 노련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에 대해 주찬권은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그 노래 가사가 좋지. 그 가사는 나에게도 힘이 된다. 살면서 내가 힘을 얻고 싶을 때 이 가사를 떠올리곤 하지. 다른 사람들도 이 가사를 이해하면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음악이 그런 게 좋잖아(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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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들국화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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