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안보죠?" 20년전 영화계에 답이 있다[TEN칼럼]
2001년은 한국 영화계에 있어 기념비적인 해다. 한국 영화를 본 관객 수가 외화가 수입된 이후 처음으로 외화 영화보다 많아졌던 시기다. 한국 영화 시장이 급성장하며 꽃피우던 2001년, 그 전과 후에 한국 영화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걸까. 올해 힘든 시장 상황에 놓인 한국 영화에 주는 시사점을 역사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위기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연감에 따르면, 한국영화 관객 수는 1991년 1106만명에서 1993년 769만명으로 역성장한다. 그 해 외국 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84.1%에 달했다. 1990년대 초반 한국 영화는 뻔한 코미디 영화와 로맨스 영화로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영화계가 침체에 빠지면서 1991년 121편이던 제작 편수는 1998년 43편까지 쪼그라든다. 찍어내면 봐주던 영화 시장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영화 업계도 줄도산의 구조조정이 시작된다. 당시 한국 영화에는 변화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안보죠?" 20년전 영화계에 답이 있다[TEN칼럼]
<영화 투 캅스 포스터, 1994년 개봉작>

1994년 영화계에는 이 같은 변화가 불었다. "1994년은 한국 영화계에 희망을 준 한해였다. 제작편수는 65편에 불과했지만 그 어느 해보다도 작품의 질이 높았고 장르도 다양했다. 외국영화의 홍수 속에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살렸고, 관객들도 한국영화에 애정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새로운 바람도 불었다. 능력있는 신인 감독들이 제작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한국 영화 금기에 도전, 새로운 영화문법을 관객들 앞에 내놓았다. 관객들도 한국영화를 보는 눈이 달라졌으며 이제까지 느꼈던 한국영화의 인식에서 탈피했다. 한국영화도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1994년은 한국 영화계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당시 한국영화연감에 실린 평가다. 당시 흥행한 영화는 '투 캅스'로 84만명을 동원했다.

1994년 변화의 바람이 불었지만 녹록치는 않았다. 침체는 길었다. 1996년까지 1000만 한국 영화 관객 수를 넘기지 못했다. 외화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등장하고 세계적인 배급망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영화와 우리 영화가 경쟁력을 가진다는 것은 뱀새가 황새를 쫓아가는 격일 것" 1997년 한국영화연감에 나오는 민병록 동국대 교수의 평가다.
"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안보죠?" 20년전 영화계에 답이 있다[TEN칼럼]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제1회 포스터. '바다와 영화'를 상징했다. 자료: 부산국제영화제>

어려움을 겪으면서 뿌려놓은 도전의 씨앗은 결국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한국 영화 업계는 위기 가운데서 끝없이 노력했다. 1997년 IMF가 있었지만, 시장 핑계를 대기보다 새로운 한국 영화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1996년 9월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등 영화 산업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영화계의 열망도 컸다.

1999년 반전의 역사가 시작됐다. 한국 영화 관객 수가 2172만명을 기록했다. 당시 기록은 1999년의 선전을 이렇게 표현했다. "헐리우드 영화의 강력한 위협속에서 한국 영화를 포기할 것이냐, 아니면 승부수를 던질 것이냐는 갈림길에 섰다. 한국 영화가 승부수를 던졌고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외화를 접한 영화인력도 큰 힘이 됐다" 어려움 가운데서 한국 영화의 도전 정신이 빛을 발했고, 신인 감독들의 등장으로 시장이 활기를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안보죠?" 20년전 영화계에 답이 있다[TEN칼럼]
◆2000년대 꽃피운 한국 영화

당시 주요 흥행 작품들만 봐도 한국 영화에 어떤 다양성이 나타났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영화에 획을 그었다는 쉬리가 개봉한 건 1999년 2월이다.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9월), 친구(2001년 3월), 신라의 달밤(2001년 6월), 엽기적인 그녀(2001년 7월), 조폭마누라(2001년 9월) 등 그 당시 흥행작들은 그 전의 영화문법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줄거리나 연출이 많았다.

이런 변화 끝에 2001년에는 한국 영화 관객수가 4481만명, 점유율 50.1%를 기록했다. 외화(4455만명)를 누르며 기적을 만들어낸 해다. 2000년 6월 글래디에이터, 2001년 5월 진주만, 2001년 12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등 대작 외화가 줄줄이 포진했음에도 한국 영화가 상대적으로 빛을 냈다.

영화 산업도 부흥했다. 1998년 116개에 불과하던 영화 제조업 신고건수는 2001년 918건으로 8배 넘게 급증했다. 한국 영화가 고군분투하면서 2000년대초 국내 '멀티플렉스 영화관' 시대를 여는데도 크게 기여했다. 2003년 2월 CGV가 100개 스크린을 돌파했다. 좋은 영화가 나오면서 영화관 시장이 좋아지고, 다시 영화 시장이 좋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시기다.

◆위기 의식 커진 한국 영화시장
"사람들이 왜 한국 영화를 안보죠?" 20년전 영화계에 답이 있다[TEN칼럼]
<자료:2022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영화진흥위원회>

요즘 영화계에는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 넘쳐난다.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영화관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 정말 고민이 많다"는 말을 영화인들이 입에 달고 산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 바뀐 소비행태와 OTT의 등장 등 시장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을 으레 내놓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를 소비하는 시장 자체가 바뀌고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는 얼마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유튜브 쇼츠 영상 등이 내 라이벌"이라고 말했다. 영화 뿐 아니라 빠르게 바뀌고 있는 다른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는 취지일 것이다. 거대한 시장의 변화 앞에서 한국의 영화인들이 무기력함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 영화산업 매출을 보면 코로나 이전인 2019년 2조5093억원으로 매년 꾸준히 늘다가 2020년 1조537억원으로 반토막 이상 난다. 2022년에도 1조7064억원으로 코로나 이전 수준에 턱없이 모자른 상태다. '코로나 2년'을 버텼지만, 여전히 어렵다는 하소연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장 탓만 해서는 안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는 시리즈 3번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개봉한 지 2주가 안돼 400만명을 거뜬히 넘길 기세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안 찾는다'는 영화업계의 하소연이 민망할 정도다.

결국 볼 영화는 보러 나오는 게 관객이란 얘기다. 1990년대 중후반 '영화계 선배'들도 수많은 외화의 홍수속에서 한국 영화를 굳건히 지켜내고, 좋은 작품으로 결국 관객들을 한국 영화 앞으로 끌어왔다.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변화를 주도한 덕이다. 지금 한국 영화는 어쩌다 볼 만한 영화가 나오는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 '너무 뻔하다',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마치 1990년대 그것과 판박이다. 1~2년 내로 끝낼 문제는 아닌 만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 신임 감독 발굴과 더불어 기존의 영화 문법을 깨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한 시기다. 위기 의식을 도전 의식으로 바꿀 때라고 한국 영화의 역사는 이야기하고 있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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