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원의 인서트》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본드걸 여성 3인
'본드의 연인' 마들렌, '능동적' 평가 듣던 본드걸은 어디에?
'새로운 007' 노미, 찾을 수 없는 007로서 활약상
'본드걸다운' 팔로마, 사라진 분량
비슷한 시기 탄생한 캐릭터 캡틴 마블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
본드걸에게 새로운 역할 부여에 대한 필요성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포스터 /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포스터 /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김지원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수요일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본드걸은 제임스 본드와 함께 '007' 시리즈의 아이콘이다. 출중한 외모와 관능적인 매력은 본드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007'은 첩보물의 고전이지만 60년이란 오랜 시간 고집스럽게도 본드걸에게 똑같은 역할만 부여하고 있다. 본드걸은 제임스 본드와 이름은 공유하지만, 역할을 사뭇 다르다. '캡틴 마블'과 같은 여성 히어로가 '파괴력 끝판왕'의 주인공으로 서사가 만들어지는 시대에 본드걸은 여전히 서사의 주변만 맴돌 뿐이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에는 본드걸로 3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제임스 본드의 연인 마들렌 스완(레아 세이두), 새로운 007 요원 노미(라샤나 린치), CIA 요원 팔로마(아나 디 아르마스)다.

마들렌 스완은 범죄조직 스펙터의 조직원이자 제임스 본드의 숙적이었던 미스터 화이트의 딸. 제임스 본드는 마들렌 스완과 사랑에 빠졌고, 은퇴 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비밀에 대해 터놓고 믿음을 보여주기로 약속하자마자 제임스 본드는 폭발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위협 받게 된다. 마들렌 스완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제임스 본드는 의심을 지워내지 못한다. 그렇게 추격전 도중 제임스 본드는 마들렌 스완을 떠나보내 버린다. 마들렌 스완은 제임스 본드의 일방적 이별 통보에 큰 변명하지 않고 순순히 떠난다. 요원으로 복귀한 제임스 본드가 5년 뒤 다시 마들렌 스완과 마주쳤을 때, 마들렌 스완은 예나지금이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운운하며 방어적 태도를 취한다.

작가와 감독은 그녀의 큰 비밀이 무엇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다. 어릴 적 악당 사핀과 연이 있었다는 정도다. 영화는 이를 '중요한 연결고리'라는 떡밥을 던지지만, 극의 서사를 돕는 역할을 하기엔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주 말하는 '비밀'이란 단어는 극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전편 '007: 스펙터'를 통해 지금까지 가장 능동적인 본드걸로 손꼽혔던 캐릭터는 온데간데없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 스틸 / 사진제공=유니버설 픽쳐스
요원 노미의 활약은 특히 아쉬운 부분이다. 제임스 본드에 이어 007 코드를 부여 받은 만큼 그녀는 등장부터 자신감 넘치고 의기양양하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에게 자신이 새로운 007이라는 점을 과시하며 으스대는 모습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열등감에 빠져있는 모습처럼 비친다. 활약상도 부족하다. 현장에 타고 간 비행기는 제임스 본드에게 속절없이 뺏겨버리고 제임스 본드가 휘젓고 간 현장에서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후반부 제임스 본드와 협력하는 모습도 보여주지만 여기서도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수동적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노미는 본드걸이 아니라 최초의 흑인 그리고 여성 본드다. 하지만, 마이너리티를 대변하는 본드는 여전히 백인 남성의 도움을 받는 부수적인 존재로 그려질 뿐이다.

CIA 요원 팔로마는 그나마 본드걸다운 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다. 팔로마는 제임스 본드가 임무 수행 중 협력자로 만나게 되는 사이. 빠른 행동력과 뛰어난 사격 실력에 섹시미를 갖춘 인물이다. 가슴과 등 노출이 있는 블랙 드레스에 하이힐을 신고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그제서야 '007'을 관람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팔로마를 '치고 빠지기'식 캐릭터로 전락시켰다. 제임스 본드와 팔로마의 합동작전 분량이 지나치게 짧은 것. 감독이 러닝타임이 163분을 개성이 없는 두 명의 본드걸에 쏟아 붙는 것동안 팔로마의 영화적 공간은 축소되고 말았다.

본드걸은 그 캐릭터 자체만으로도 스핀오프작을 만들어도 될 만큼 제임스 본드만한 화제성과 인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007'은 60년 전 고전을 고수하며 본드걸을 조력자로만 두고 있다. 여전히 제임스 본드를 위한 도구이고 때로는 민폐를 끼치게 하고 서사의 주변인으로만 두고 있다.

'007'의 첫 영화가 나왔던 때는 1962년.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67년 마블 코믹스 세계에는 캡틴 마블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남성 캐릭터였으나, 현재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강력한 히어로 중 한 명이며 여성 캐릭터다. 스핀오프로 만들어져 상반기 극장가를 뒤 흔들었던 블랙 위도우 역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흥행과 의미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007 노 타임 투다이에서 앞선 24편의 007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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