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랑종' 예고편 ./
영화 '랑종' 예고편 ./
<<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나홍진'이란 이름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관객들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였을까? 개봉과 동시에 '블랙 위도우'를 밀어내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영화 '랑종' 이야기다.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 낯선 시골 마을. 집 안, 숲, 산, 나무, 논밭까지, 이 곳의 사람들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가문의 대를 이어 조상신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무당) '님'(싸와니 우툼마)은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밍'은 날이 갈수록 이상 증세가 점점 심각해진다. 무당을 취재하기 위해 '님'과 동행했던 촬영팀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밍'과 '님', 그리고 가족에게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현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랑종'은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 피에 관한 세 달간의 기록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은 영화다. '곡성'의 나홍진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았고, '셔터' '샴' 등을 연출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개봉 전부터 '무섭겠다'라는 기대감을 안겼다.
'랑종' 스틸컷./
'랑종' 스틸컷./
개봉 이후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일부 관객들은 "후반부엔 진짜 무서웠다" "빙의된 '밍'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이 공개될 때가 계속 떠오른다"라는 반응이 있었고, 반면 다른 관객들은 "초반부에 너무 지루 했다. 처음부터 졸았다", "'곡성' 보다 훨씬 재미 없다", "불쾌했다"라고 반응했다.

여기서 '불쾌했다'라는 반응에 시선이 간다. '랑종'은 '곡성의 후속편을 만들고 싶다'라는 나홍진 감독의 바람에서 시작 됐다. '곡성'에서 무속인인 일광(황정민)의 전사를 다른 장소에서 다른 캐릭터로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해, 나 감독이 직접 원안을 쓰고 제작까지 참여했다. 태국을 배경으로, 공포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태국 감독이 찍었지만 나 감독의 짙은 향기가 베어 있는 이유다.

나 감독이 그동안 연출한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어둡고 스산하다. 또한 '추격자'부터 '황해', '곡성'까지 '피가 튀기고, 손가락이나 팔, 다리가 잘리는 장면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추격자'에서 슈퍼 아줌마 때문에 미진(서영희 분)이 살해 당했을 땐 불쾌감을 넘어 모든 관객이 분노 했다. '황해'에서의 잔혹한 폭력성, 살해 장면 등은 오랫동안 잔상에 남았다. 공포물인 '곡성'에서는 동물 내장, 사체, 피부 전염병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 돼 불쾌감을 안겼다.
[노규민의 씨네락] '랑종'에서 느껴지는 불쾌감', 나홍진의 원격 조종이 원인일까
영화 '추격자' ./(위부터), '곡성'./
영화 '추격자' ./(위부터), '곡성'./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암울하고, 꿉꿉하고, 잔인하고, 혐오스럽고, 때론 선정적이기까지 한 나 감독의 영화는 보고 나면 늘 찝찝함이 남는다.

'랑종'은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중 대부분이 '추격자' '황해' '곡성'을 봤을 때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하혈, 식인 등이 여과 없이 묘사 된 것에 대해 "구역질 나고 역겨웠다" "관람 후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라는 평도 있었다. 송경원 영화 평론가는 "반종 피산다나쿤에 빙의한 나홍진. 불쾌하고 찝찝한 걸로는 따라올 자 없다"고 했다.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은 "'곡성'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일부러 화면을 '곡성'처럼 꾸미지 않았다"고 했다. 나 감독 역시 '랑종'이 '곡성'과 비슷한 느낌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나 감독은 "나와 반종 감독이 거리를 둬야 하는 작품은 '곡성'"이라고 말했단다.

영화의 수위를 두고 두 감독이 언쟁을 했다는 말도 있다. 나 감독은 '랑종'에서 만큼은 선정적인 장면을 빼고, 잔혹한 장면을 최대한 자제하자고 제안 했다. 오히려 자신이 반종 감독을 말려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선정적인 장면이나 잔인한 장면을 이용해 흥행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런 장면은 CCTV로 보여주거나 어둡고 흐리게 보이도록 편집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개, 아기 등이 살해되는 장면이 등장해 이와 관련해서도 말이 많다. 해당 장면은 '더미'(모조품)를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랑종 감독은 "인간의 악(惡), 원죄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영화 '랑종'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랑종'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반종 감독은 전작 '셔터' '삼' 등에서 공포영화가 일반적으로 많이 활용하는 점프 스케어(갑작스럽게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테크닉)로 공포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 '랑종'에서는 '곡성'처럼 기괴한 비주얼과 음산한 분위기로 관객에게 불쾌감과 긴장감을 안겼다.

'랑종'은 코로나 19 영향으로 나 감독이 현장을 방문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반종 감독이 그날 찍은 촬영분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 반종 감독은 "나 감독이 작업한 내용물에 대해 코멘트를 주셨다. 간섭하지 않고 자율적인 권한을 줬다"라면서도 "그동안 영화 작업을 한 것 중에 이번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나 감독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압감과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메일로 작업물을 보내기 전에 완벽한지, 충분한지 생각하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라고 털어놨다.

이렇게 완성된 '랑종'엔 나홍진 감독의 색깔이 짙다. 현장에선 반종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진두지휘 했으나, 결국 나 감독의 원격 조종으로, '랑종'이 나 감독 색채의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 아닌가 싶다. '랑종'은 지난 14일 개봉해 나흘만에 누적 관객수 40만명을 돌파하면서 손익 분기점을 넘겼다. 현재 박스오피스 1위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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