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X변요한 주연 '자산어보'
정약용 비해 덜 알려진 정약전 다뤄
"역사의 진실에 다다르기 위해 '이야기 창작' 작업"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장창대는 정약전이 자산어보 집필에 도움을 받았다고 서문을 통해 소개하는 인물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용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정약전(설경구 분)이라는 인물과 청년 어부 장창대(변요한 분)가 자산어보를 함께 써가며 벗이 돼가는 모습과 함께 부패한 조선 후기 사회를 조명한다. 이번 영화는 이준익 감독의 열네 번째 영화이자 두 번째 흑백영화다.

영화에서 장창대는 서자로 태어났지만 출세의 뜻을 품고 있다. 성리학의 이념을 따르는 장창대에게 사학죄인으로 유배온 정약전은 경계해야 할 인물. 그러나 호기심 많은 학자 정약전에겐 해양생물에 해박한 장창대가 필요했고, 겨우 천자문과 명심보감을 뗀 장창대에겐 글공부 스승 정약전이 필요했다. 영화에서는 정약전이 갯벌에서 독특하게 생긴 물고기를 발견하고 장창대에게 그 이름을 묻는다. 짱뚱어라고 하자 정약전은 눈이 튀어나왔다는 의미에서 철목어라고 이름 붙인다. 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 장면에 대해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격물(格物)"이라며 흔히 알려진 목민심서와 정약용이 아닌 자산어보와 정약전을 다룬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가 흔히 들어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 앞에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이라는 문구가 있어요. 이를 합쳐 팔조목이라 하는데 그간 우리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만 집중해온 거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다룬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인문과학이라면 '격물치지성의정심'을 다룬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자연과학인 셈이죠. 영화에서 정약전이 짱뚱어에게 철목어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그건 일종의 가치를 부여한, '격물'인 셈이에요. 자산어보는 물질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의 쓰임새를 썼다고 할 수 있죠."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포스터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장창대는 입신양명해 임금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백성을 이롭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는 인물이다. 성리학의 본질은 올곧은 것이지만 혼탁해진 사회와 그 체제 하에서 관리, 아전들은 이미 썩은 상태였다. 영화에서 장창대는 관리들의 수탈에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장창대는 자산어보와 목민심서 사이에서 목민심서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죠. 조선 초기처럼 성리학이 반듯하게 서는 시기가 아닌 이미 나라가 망해가던 후기였고 성리학도 썩어가고 있었어요. 정약전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상세계가 무너졌다는 걸 알고 있었고 장창대는 그걸 몰랐던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이죠. 하지만 장창대의 길도 응원하는 게 정약전의 마음이에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차이를 인정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난 거죠."
영화 '자산어보' 스틸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 스틸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는 창대를 통해 부패한 성리학 사회를, 정약전을 통해 이런 사회에서 지식인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실사구시의 삶을 보여준다. 정약전의 실사구시 정신이 담긴 것이 영화 속 자산어보가 가진 상징성이다. 이준익 감독은 장창대와 정약전을 나란히 배치하는 비교 기법을 통해 두 인물과 각각의 상징성을 모두 뚜렷하게 보여준다.

"많은 역사 이야기들이 어떤 인물을 계속해서 미화하기만 하거나 폄하하기만 해요. 하지만 인물을 뚜렷하게 보여주려면 가치를 비교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야 해요. 영화 '동주'에서도 윤동주와 송몽규를 함께 보여줬기에 두 사람 모두 선명해졌죠. 정약전과 정약용 역시 차이를 얘기해주면 더 선명해보여요. 마찬가지로 장창대가 뚜렷하면 정약전도 선명해지죠. 이 차이는 옳고 그름이 아닌 단지 다른 것일 뿐입니다. '자산어보'는 그 차이를 보여주는 영화예요."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 / 사진제공=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이처럼 이준익 감독은 '자산어보'뿐만 아니라 '동주', '박열' 등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 위인들을 다뤄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가 사실이긴 하지만 그 안에 모든 진실을 포함하고 있진 않아요. 사실을 근거로 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찍진 않되 위대한 가치관의 뒤에 있는 또 다른 위대한 가치관을 보여주고 싶은 거죠. '인싸' 윤동주와 '아싸' 송몽규를 함께 보여줬을 때 관객들은 두 사람 모두 훌륭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번 영화에서 정약전과 정약용, 정약전과 장창대도 마찬가지죠. 장창대의 삶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물어야 해요. 저는 사실 안에 숨어 있는 진실을 찾기 위해 '이야기 창작'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거죠. 그래서 내 영화엔 영웅주의가 없는 겁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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