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수·이정은·노정의 주연 '내가 죽던 날'
절망 속 세 여인들의 삶을 향한 의지와 연대
김혜수, 깊이가 남다른 섬세한 감정 열연
[TEN 리뷰] '내가 죽던 날', 곧 내가 살던 날


남들이 '불행'이라고 규정하는 삶 속에서 세 여인은 절박하게 삶의 의지를 내비친다. 나는 그 누구보다 살고자 하는 것이라고. 영화 '내가 죽던 날'은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미온이 감도는 손길을 고요히 내미는 작품이다.

형사 현수(김혜수 분)는 그동안 굳건하다 믿어왔던 자신의 일상이 갑작스레 무너져버리면서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변호사 남편은 외도해 이혼을 요구하고 있고, 직장에서는 절친한 동료와 불륜 사이로 오해까지 받으면서 휴직한 상태다. 복직을 신청한 현수는 정식 복귀 전에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었던 여고생 세진(노정의 분)의 실종 사건 조사를 맡게 된다. 세진은 섬마을에서 지내던 중 유서 한 장만을 남기고 절벽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경찰 측에서는 더 골치 아파지기 전에 이 사건을 '사망'으로 종결하길 원한다. 빠른 복직을 위해서라면 현수 역시 수사를 빨리 마쳐야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점점 더 몰두하게 되고 진실을 알고자 한다.
[TEN 리뷰] '내가 죽던 날', 곧 내가 살던 날
'내가 죽던 날'은 범죄수사극 형식을 빌린 휴먼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현수, 뜻하지 않게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이 돼버리면서 세상과 단절된 세진, 목소리를 잃은 채 전신마비인 조카를 홀로 보살피고 있는 순천댁(이정은 분). 세 사람은 '최악'일지도 모를 상황에서 처절하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희망과 위로다. 이들이 괴로운 삶을 이어가는 까닭은 결국 절망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살아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현수는 수사를 하면할수록 세진과 자신의 아픔이 닮아있다는 걸을 알게 되고 세진에게 동화되면서 그가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영화에서 현수와 세진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은 딱 한 번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수와 세진의 정서적 교감이 이어지고 있음을 관객들은 느낄 수 있다. 현수, 세진, 순천댁은 직접적으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지는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삶의 이유가 돼주며 연대하게 된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는 담담하지만 강인하게 영화를 끌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김혜수는 내면에 감춰뒀던 연약함을 현수라는 캐릭터로 꺼내놓은 듯하다. 그 아름다운 용기가 고결하게 느껴진다. 이정은은 목소리 없이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노정의 역시 타인에 의해 고통 속에 살게 된 여고생의 예민함과 괴로움을 세밀하게 표현해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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