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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 때가 있죠. 누군가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도 한없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을 겁니다. 주변에 숨 쉬고 있는 생명체들이 그저 책상으로, 밥솥으로, 장애물로 보일 때, 8일 개봉한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신작 <르 아브르>는 그 불신을 날려버릴 유쾌한 치료제 같은 영화입니다. 자신의 아내를 두고 “당신한텐 아까운 여자야”라고 놀리는 친구에게 영화 속 노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차피 누구에게나 과분한 여자야.” 그렇게 엄마 찾아 고향을 떠나온 검은 피부의 난민 소년도, 특별할 것도 예쁠 것도 없는 늙고 병든 부인도, 이 곳에서는 공평하게 귀한 사람입니다. ‘르 아브르’라는 프랑스 항구 도시를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이 영화의 배경은 어디라도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저 곤경에 처한 이를 돕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상식과 인정이 통하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르 아브르’일테니까요.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감기처럼, 불쑥 인간에 대한 절망감으로 앓고 있다면 꼭 이 영화를 복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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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회의와 우울 속에 잠식당한 뉴욕의 중년 남자 로버트. 이제 더 이상 손에 쥔 돈도 살 집도 없는 그에게 이삿짐을 나르며 성실히 살아가는 세르비아 출신 청년 프랑코가 제안을 하나 합니다. “그동안 모은 돈을 드릴게요. 고향에 있는 내 애인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데리고 와주세요.” 어차피 여기나 거기나, 뉴욕이나 베오그라드나. 선택의 여지없이 당도한 땅에서 로버트는 프랑코의 엄마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폐허의 도시 같던 베오그라드는 재즈가 흐르는 사랑의 도시로 변모합니다. 12월 15일 개봉하는 <히어 앤 데어>는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인 뉴욕, 내전과 독립의 과정 속에 침몰한 베오그라드, 천국과 지옥 같은 이 두 도시가 실상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 풍경을 보여줍니다. 중요한 건 ‘여기와 거기’가 아니라 그곳에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는가, 라는 깨달음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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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오는 기차가 교차하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스크린이라는 분화구를 통해 행복이라는 용암을 마구 분출하는 영화입니다. 별거한 엄마 아빠를 따라 남과 북으로 떨어져 살고 있는 형제, 그들이 바라는 ‘기적’은 그저 네 식구가 다시 모여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은 화산도 폭발 시킬 무서운 행동력과 준비력을 보여주는데요. 트렁크에서 미처 부화 되지 못한 채 질식사 했던 아이들을 그린 <아무도 모른다>처럼 세상의 어른들은 여전히 무심하고 이기적이지만, 절망을 묻고 일어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시선은 한층 밝고 유머러스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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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개봉한 <오싹한 연애>를 보며 엉뚱하게도 집 안에 텐트를 설치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몽상가들>의 청춘들처럼 나만의 동굴로 숨어들고 싶은 계절. 홍대 앞 ‘서교예술실험센터’ 옥상에서는 ‘텐트 올나잇`이라는 흥미롭고 오싹한 행사가 열립니다. 오는 12월 16일(금), 17일(토)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새벽4시까지, <무산일기> <회오리 바람>을 비롯해 다양한 실험 영화와 함께 홍대 인디 밴드의 공연이 함께하는데요. “전기장판, 전기담요, 전기온풍기, 전기히터, 전기난로 몽땅 준비”에 입장은 선착순, 참가비는 무료입니다. 그래도 너무 춥지 않겠냐고요. 혹시 아나요. 이 텐트 속에서 크리스마스를 따뜻하게 보낼 누군가를 만나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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