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자 로베르타(로베르타 팔롬비니)는 멕시코 남자 호르헤(호르헤 마차도)를 만나 마법 같은 사랑에 빠진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게 행복했던 바닷가에서의 시간, 달리 설명할 수 없어 “신의 뜻”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던 사랑. 어느덧 둘 사이엔 귀여운 아들 나탄(나탄 마차도 팔롬비니)이 태어난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영원히 보존 될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 역시 캐리비언해의 염분만으로는 그 부패를 막기 힘들다. “난 여기서는 살 수 없어. 이렇게 살다가는 죽고 말거야” 그렇게 여자는 남자 곁을 떠난다. 는 이제 곧 도시 문명 속에서 살게 될 아들이 바닷가 아버지와 보낸 마지막 며칠의 기록이다.

만약 당신이 다가올 여름, 이국의 땅으로 떠날 수 없다면 는 그 마음을 달래줄 훌륭한 대체재가 될 것이다. 바다를 향해 (‘A la mar’) 난 창문 너머 만나는 산호초 군락지 ‘반코 친초로’의 풍광은 문명이 주는 편리와 즐거움을 잊게 할 만큼 매혹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가만히 있어도 젖과 꿀이 흐르는 꿈의 공간은 아니다. 깊은 바다로 잠수 해 잡은 바다가재와 고기들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부지런히 손질해 팔아야만 유지되는 낙원이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어쩌면 앞으로 아들이 살게 될 세계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것들을 가르친다. 가느다란 낚싯줄로 월척을 건지는 짜릿한 손맛과 심해를 여행하는 잠수법, 애완용 악어에게 먹이를 던져 주는 즐거움이나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귀여운 황로를 훈련시키는 세심한 기술 같은 것들 말이다.
영화 <알라마르>│바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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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창을 내겠소, 왜 사냐 건 웃지요
영화 <알라마르>│바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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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의 신예 페드로 곤잘레스-루비오가 감독, 촬영, 편집, 프로듀싱까지 한 는 연출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연기 덕분에 다큐멘터리라고 오해할 수 있는 영화다. 물론 이 영화는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픽션이다. 실제 부자관계인 호르헤와 나탄을 만난 후 영화를 구상했다는 감독은, 매일 저녁 그들에게 시나리오를 건네는 대신 “내일은 고기잡이를 갑시다” 정도의 상황만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삶에서 채집된 장면들은 수면 위에서 혹은 심해에서도 공평하게 반짝인다. 바다로 난 식탁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던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처럼 말이다.

이별의 날이 점점 다가오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오가는 말은 거의 없다. 문명의 세상을 알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당부의 말도 해 줄 수가 없다. “세상 어딜 가든 아빠가 보살펴 줄 거야”라는 주술 같은 다짐 뿐. 그저 팔에 기대어 잠든 아들이 깰까 온 힘을 다해 다른 한 팔로 배의 난간을 쥐고 있거나, 위태롭게 사다리를 오르는 아들 뒤를 따라 오르며 조용히 두 팔로 울타리를 만들어 줄 뿐이다. 이처럼 극적인 대사나 감정을 강요하는 장치 없이도 는 부자에게 이별 다가오는 순간, 기어이 관객들의 눈물샘에 수로를 연다.

바다위로 세운 집에 나란히 앉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이제 당신도 늙었다는 말에 노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냐, 아직 젊은 걸. 오래된 건 오직 길 뿐이지.” 그의 아들과 손자는 이제 헤어질 것이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별이 그리 길진 않을 것이다. 길의 시간 위에서 그들은 곧, 만나게 될 테니까.

글. 백은하 기자 one@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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