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생할까봐 쉽게 끝낸 건 아니지?” “제가 그렇게 착한 사람으로 보여요?” 영화 의 메이킹 필름 안에서, 감독과 배우는 그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배우는 데뷔 40여 년 동안 30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윤정희였고, 감독은 부터 까지 스스로 한국 영화의 한 갈래가 된 이창동 감독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거목이 된 두 사람은 어떤 인연이 닿아 에서 만났을까. 14일 서울 압구정 CGV에서 두 사람이 에 함께 출연한 배우 안내상의 사회로 제작보고회를 가졌다.

를 만들게 된 계기는.
이창동 감독 : 모든 작품이 그랬지만 도 내게는 도전이고, 실험이었다. 이 도전을 얼마나 잘 치룰 수 있을지 생각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의미 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점점 사라지는 세태에 그런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제목과 이야기로, 주인공으로 관객과 만나고 싶었다.
안내상 : 흥행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 같다. (웃음) 그래도 잘 되지 않을까?
이창동 감독 : 비슷한 질문을 영화할 때마다 받았다. 때도 이런 장애인이 나오는 영화를 극장까지 와서 보겠냐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관객과 소통하려는 욕망 때문에 영화를 만든다. 영화는 그래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매체가 아니라 대중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 진심이 전달되면 관객을 만나서 소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여인이 자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이야기”
이창동 감독 “꿈을 가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시>를 봤으면”
를 봤으면”" /> 어떤 도전을 말하는 건가.
이창동 감독 : 보는 사람들은 큰 변화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큰 도전을 한다고 생각했다. 관객과 만나고는 싶은데, 쉽기 보다는 어렵고 낯선 방식으로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관객들과 나 사이에 장애물 경주처럼 많은 장애물들을 놓고, 그걸 통과한 관객들과 결승점에서 부둥켜안고 싶었다. 이 영화도 그렇게 비쳐지길 바랐다. 그래서 낯선 형식의 영화다. 영화가 갈수록 재미나 오락,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경우가 많은데 는 자극 아닌 자극으로 다가서고 싶다. 영화 카피에 ‘가슴을 두드리는’ 이런 게 있는데, 좀 민망한 카피긴 하지만 (웃음) 이런 게 가슴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예고를 보면 영화가 전작들보다 좀 더 밝아진 것 같다.
이창동 감독 : 개인적으로는 전작들도 나름대로 밝았다고 생각한다. (웃음) 영화가 어둡냐 밝냐보다는, 영화를 먼저 본 사람들은 전작들보다 덜 불편하다고 하더라.

소설가 출신의 영화감독이 시 쓰는 사람 이야기를 했다. 소설, 영화, 시가 어떤 의미인가.
이창동 감독 : 본질적으로 똑같다. 내가 내 속에 있는 걸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걸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 하필 라고 한 건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가장 좋은 화두여서였다. 시는 없어도 살 수는 있고, 시라는 게 국어시간에나 배울 수 있고 졸업하면 잊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시는 필요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삶의 의미나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어떤 것 아닌가. 그 점에서 소설이나 음악이나 영화나 똑같다. 분명히 오락이 되는 영화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 않나. 관객들과 이게 무슨 의미인지 같이 생각하고 싶었다.

의 제목이 감독님의 필체로 알고 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나.
이창동 감독 : 그러면서도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 잘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썼다. (웃음) 원래 내가 붓글씨를 잘 못쓰기도 하고.
안내상 :누구나 쓸 수 있는 필체던데. (웃음)

미자라는 여성의 이야기로 알고 있다. 미자는 어떤 사람인가.
이창동 감독 :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는 감추어야만 하는 부분이 있어서 속 시원하게 말 못해 죄송하지만, 옆에 있는 윤정희 선생님 같은 사람이다. 우리가 아는 대로 윤정희 선생님은 왕년에 전설적인 배우였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의 아내고, 배우이면서도 자기 것을 다 버리고 수십 년 동안 남편 뒷바라지만 하셨던 분이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서울 주변의 초라한 아파트에 스스로 자기 인생의 작은 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소박한 60대의 여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여인이 자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얘기다.

“시나리오를 받고 흥분된 마음속에 작업을 했다”
이창동 감독 “꿈을 가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시>를 봤으면”
를 봤으면”" /> 윤정희 선생님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이창동 감독 : 개인적으로 잘은 몰랐지만 우리 세대에 윤정희 선생님 모르면 간첩 아닌가. 그래서 선생님은 나를 잘 몰라도 나는 잘 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윤정희 선생님이 주인공이어야만 할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선생님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말씀을 드렸다. 윤정희 선생님 본명이 미자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 쓰는 동안 주인공이 왠지 미자여야 할 것 같았다. 흔한 이름이지만 이름에 아름다울 미가 있고, 꼭 그만큼의 촌스러움과 그만큼의 아름다움이 있다.
윤정희 : 나도 눈물을 잘 흘리고, 작은 것에 감탄한다. 남편이 같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당신하고 비슷하다고 할 정도였다. 그래서 연기하는 게 걱정은 덜 했는데, 내 예전의 연기에서 벗어나는 게 어려웠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했어도 를 연기하는 건 참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편 앞에서 연습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이창동 감독과 똑같이 “좀 자연스럽게 할래?”라고 하더라. (웃음)
이창동 감독 : 윤정희 선생님은 굉장히 소박하시고, 얼굴에 주름은 생겼지만 내면에는 전혀 나이가 들지 않았다. 미자도 지금도 밤하늘의 달을 보면 60년 봐온 달일 텐데 뭐가 그렇게 황홀한지 그런 감정에 젖고, 현실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그런 여자다.

15년의 공백이 있던 윤정희 선생님을 캐스팅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이창동 감독 : 내가 부담스럽다기보다는 선생님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안내상 : 대출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웃음)
이창동 감독 : 아이폰을 사긴 했는데 잘 쓸 줄 몰라서…. (전화기를) 안 껐다.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웃음) 윤 선생님이 3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셔서, 과거에 연기하셨던 게 몸에 배어 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과는 다르다. 그래서 나와 부딪칠 경우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열려있는 분이었다. 젊은 배우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걸 깰 때 마음에서 저항하는데, 그런 것을 너무 잘 받아주셨다.
윤정희 : 이창동 감독이 나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 때는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쭉 봐와서 믿음이 컸다. 그 후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이런 시나리오가 없구나 싶었다. 흥분된 마음속에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해보니 어땠나.
윤정희 : 고맙다. 이창동 감독이 내가 정말 찾고 싶은 모습을 알려줬다. 그래서 역할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촬영장의 분위기와 감독과의 호흡이 아름답게 진행됐다.
안내상 :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나. (웃음) 이창동 감독은 배우를 탈진까지 몰아붙인다.
윤정희 : 60이 넘어도 나는 소녀처럼 산다. (웃음) 그런데 스태프들이 와서 안 피곤해요? 안 피곤해요? 이러는데 육체적으로는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배드민턴 하는 신이 있었는데, 여러 번 찍어서 팔이 아프긴 했지만 자꾸 영화사에서 병원에 갑시다, 병원에 갑시다 이래서 왜 그러냐고 했다. 파스 붙이면 그만인데. (웃음)
이창동 감독 : 배드민턴 치는 장면이 꽤 중요하고, 밤 촬영이라 밤새 배드민턴을 쳐야 했다. 젊은 사람도 그렇게 팔을 쓰면 근육이 뭉칠 수도 있어서 그렇게 되면 촬영에 지장이 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마사지도 받게 하려고 했는데, 윤정희 선생님 본인이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를 봤으면 좋겠다”
이창동 감독 “꿈을 가진, 갖고 싶은 사람들이 <시>를 봤으면”
를 봤으면”" /> 15년 사이 영화계가 많이 바뀌었는데 경험 해보니 어떤가.
윤정희 : 옛날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나는 영화를 떠났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런 분위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전에는 모니터를 보고 자기 연기를 분석하는 게 없었다. 이번에는 그럴 수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연기)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내 몸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정말 최선을 다하는 연기가 나와야 할지 고민하면서 만족할 때까지 하려니 정말 쉽지 않았다.

그런데 미모가 여전하시다. (웃음) 혹시 비결이라도 있나.
윤정희 : 나 평범하지 않나? (웃음) 머리도 그냥 내가 집에서 하는데… 다만 자기 피부는 자기가 관리해야 하니까 책을 보고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서 바른다.

는 칸 영화제에 출품될 것 같나.
이창동 감독 : 일단 작품을 보냈고, 칸 위원회 위원장과 선정위원들의 감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공식 발표 전까지는 언급을 하지 않는 게 관례라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윤정희 : 나는 내 팬들을 믿는다. (웃음) 팬들이 많이 봐줬으면 좋겠고, 그 외의 사람들도 많이 봐줬으면 한다. 특히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이창동 감독 : 나는 꿈을 갖고 싶은 사람들도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윤정희 선생님에 동감할 수 있는 분들과 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젊은 분들이 함께 봤으면 좋겠다.
안내상 : 그러면 천만 관객 든다. (웃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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