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가장 압도적인 영화 수다쟁이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이 지난 10월 15일 오후 2시 용산 CGV에서 공개됐다. 사실 <킬 빌>과 <데스 프루프>를 위시한 최근의 타란티노 영화들은 전 세계와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그리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다행히도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북미에서만도 1억2천만 달러를 넘어서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지금까지 타란티노의 최고 흥행작이었던 <펄프 픽션>을 가볍게 넘어섰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가 끝내주게 재미있는데다가 타란티노 영화로서는 경이로울 정도로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적인 사전 지식이 없이도 유쾌하게 관람할 수 있는 드문 타란티노 영화다.

내용은 (언제나처럼)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일종의 영화적 테피스트리에 가깝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유대인 미군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는 복수의 신념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유대인들을 모아 ‘개떼들’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나치 점령 프랑스로 향한다. 유대인 사냥꾼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프 왈츠)에게 가족을 잃은 여자 쇼사나 드레퓌스(멜라니 로랑)는 자신이 운영하는 극장에서 시사회를 여는 나치들을 제거할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 여기에 나치에 반기를 든 독일 여배우 브리지트 폰 하머스마르크(다이앤 크루거) 등 여러 종류의 인물들이 타란티노 스타일로 얽혀든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오는 10월 29일 와이드 릴리즈로 개봉한다.

끝내주게 재밌는 2차 대전판 <펄프 픽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은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펄프 픽션>이라고 할 수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챕터별로 분리된 각각의 사건을 개별적으로 음미하도록 만들어진 영화라는 소리다. 알도 레인과 개떼들, 유태인 소녀 쇼사나는 아돌프 히틀러와 요제프 괴벨스 등의 나치 괴수들을 제3제국 프로파간다 영화의 시사회에서 폭탄으로 날려버릴 계획을 각각 세우다가 결국 마지막에서야 한자리에서 스쳐지나간다. 그러니 클라이막스 따위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이 영화는 결국 히틀러를 죽여 버리며 끝나는 영화다. (이건 스포일러가 아니다. 스포일러라고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그냥 타란티노식 농담에 불과하다) 보통 영화를 보듯 기승전결을 따르면 머리 아파진다. 각 챕터를 하나의 유희처럼 생각하며 그냥 즐기는 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을 보는 방법이다.

배우들의 쫀득한 연기 발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핵심 중 하나다. 솔직히 브래드 피트의 연기가 딱히 타란티노 스타일과 잘 궁합을 이루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나이 들기 시작한 스타의 능글능글한 매력은 썩 괜찮은 구경거리다. 프랑스 여배우 멜라니 로랑과 독일의 청춘스타인 다니엘 브륄은 비극으로 끝나는 유태인 소녀와 나치 영웅의 로맨스를 맛깔나게 연기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어안이 벙벙한 명연을 보여주는 건 이 영화로 올해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다. 독어, 불어, 영어를 넘나드는 왈츠의 언어 유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라고 부를 만하다.

글. 김도훈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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