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에 예의를 갖춰야 할 것 같아 정장에 나비넥타이까지 매고 왔다. 그런데 왔더니 이 자리만이 아니라 건물 전체에 이러고 온 사람이 나 하나다.” 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에서 장르영화를 소개하는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 초대된 영화 <죽이러 갑니다> 관객과의 대화는, 피가 튀기고 사지가 끊어지는 호러물 답지 않게 참여한 사람들의 재치 있는 발언들이 터져 나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코미디언 출신의 배우 김진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깔끔한 정장을 맞춰 입고 온 이야기로 첫인사를 전했고, 박수영 감독은 “사회에 만연한 가족주의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한 풍자를 담은 블랙코미디”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그 동안 스크린을 통해 만날 수 없었던 이경영과 독립영화 <똥파리>의 여주인공 김꽃비 등이 출연하는 <죽이러 갑니다>의 캐스팅은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시나리오 뿐 이었고, 열심히 설득하고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럼에도 기꺼이 출연해 준 배우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 박수영 감독을 모델로 한 오PD 역할을 맡은 김진수는 선뜻 캐스팅에 응하기는 했지만, 열악한 현장 상황으로 인해 “시체로만 3일을 촬영했는데, 독한 스모그로 인해 (시체인데도)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는 고생담을 전하기도 했다. 블랙코미디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후반부에 비해, 잔인한 방식으로 고용주의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는 해고노동자가 등장하는 전반부의 내용에 대해 관객의 질문이 집중되었는데, 박수영 감독은 잔인한 복수를 감행하는 해고노동자의 모습의 가장 일반적인 감정을 그린 것이라며 “비정규직을 포함해 사회적 약자들이 ‘얻어맞았으면 가서 때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다”며 이들을 지나치게 피해자로 그리거나 감정이 없는 사람들로 묘사하는 방식을 경계했다.

2005년 많은 단편영화제에서 수상을 했던 <핵분열가족>을 비롯해 블랙코미디 상황극을 많이 만들어왔던 박수영 감독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동 성폭행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며, “특별한 기교 없이도 웃음이 나올 수 있게 만드는 영화”를 향한 꿈을 밝혔다. <죽이러 갑니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과, 출연료와 임금을 받지 않은 배우와 스태프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독립영화로, 영화를 제작한 이승표 프로듀서는 “PIFF에서는 마지막 상영이지만 이 자리에 모인 관객들의 입소문과 선플로 개봉을 할 수 있길 바란다”는 아마도 모든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꿈꾸고 있을 소망을 마지막으로 전했다.

글. 부산=윤이나 (TV평론가)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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