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라 할 수 있는 <닥터 지바고>를 비롯해 문학작품은 수많은 영화 플롯의 원천이 되어왔다. 하지만 문학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비워놨던 활자의 빈틈을 영상과 소리로 채워 넣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다. 또한 완성도의 기준이 다른 영화가 아닌 원작소설이기 때문에 <트레인스포팅>처럼 탁월한 영화조차 가끔은 원작 소설의 매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박한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PIFF) 아주담담 토크 ‘영화와 소설의 친밀한 퍼레이드’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퍼레이드>를 통해 이러한 장르적 교류에 대한 창작자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10월 14일, 해운대 QOOK TV PIFF 라운지에서 진행된 이번 아주담담에는 <퍼레이드>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과 배우 후지와라 타츠야, 그리고 원작자 요시다 슈이치가 참석했다.

감독의 부담을 가중시킨 원작자의 원칙

소설 <퍼레이드>는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는 다섯 남녀의 이야기를 인물 각각을 화자로 해서 다층적으로 풀어내는 청춘 소설이다. 때문에 아무리 <고>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라 해도 쉽게 도전할만한 작품은 아니라 할 수 있다. “8년 전 소설을 읽자마자 바로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이사오 감독 역시 “열 몇 편의 작품을 찍었지만 이번 <퍼레이드>야말로 가장 고생한 작품”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특히 편집에 있어서는 “혼란스러울 만큼” 이야기의 근저에 깔린 복잡한 내용을 관객에게 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화되어 표현하고자하는 주제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은 감독의 몫이기에 원작자로서 참견하지 않는다”는 요시다 슈이치의 원칙은 오히려 감독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하지만 작품은 완성됐고, <퍼레이드>는 이번 PIFF를 통해 월드 프리미어로서 상영됐다.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판단은 관객에게 맡겨야 할 부분이지만 적어도 원작자 요시다는 “<퍼레이드>라는 작품을 통해 내가 뭘 말하고 싶었는지 한 마디로 말하기 어려웠는데 오히려 영화를 보니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게 정확히 표현됐다. 신기한 체험이다”라며 만족을 표시했다. “상대 배우나 장소의 영향에 대해 무엇을 구상하기보다는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연기”를 시도한 후지와라 타츠야를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내가 만든 인물들에게 체온과 인간미를 불어넣어줘서 대만족”이라고 호평했다. 이사오 감독은 거의 매년 빠짐없이 PIFF를 찾는 이유에 대해 “부산 관객의 반응은 내 영화에 대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제 영화와 소설의 퍼레이드가 과연 친밀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PIFF를 찾은 관객들의 몫이다.

글. 부산=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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