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있어 타악기의 리듬은, 말하자면 건물의 형태와 굳건함을 가늠하는 주춧돌과도 같다. U2의 곡에서 래리 멀렌 주니어의 착착 감기는 타성의 드러밍이 깔리지 않는다면 보노의 드라마틱한 보컬은 독백처럼 흩어질 것이고, 마이크 포트노이의 드러밍이 설계하는 공간감이 아니라면 드림 씨어터의 현란한 연주는 응집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가 한국의 전통 음악인들을 찾아다니며 배움을 얻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무형문화재 82호를 찾아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 역시 한국 음악의 리듬이다. 제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이 영화는 그 자체가 한국 전통 음악의 뼈대를 이루는 리듬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한국 문화의 밑바탕에 깔린 주춧돌로서의 전통에 대해 설명한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창조적인 음악 연주에 있어 가장 특별한 음악인“이라고 소개된 사이먼 바커는 우연히 지금은 고인이 된 동해안 별신굿 명예보유자인 김석출 선생의 굿판을 접한 후 그 독특한 리듬에 매혹당해 한국을 찾는다. 동해안 별신굿은 한국의 중요 무형문화재 82호다. 원래 계획은 김석출 선생을 만나 그 리듬의 실체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로 선생이 사람을 만나기 어려워져 목적 달성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하지만 원광디지털대학교 전통공연예술학과 김동원 교수가 가이드를 자처해 다른 전통 음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며 바커의 한국 음악 기행은 더욱 폭넓은 방향으로 진행된다. 7년 동안 폭포 옆에서 소리 연습을 한 판소리 명창 배일동을 만나 “흘러가는 물과 날아가는 새에 영감을 얻는” 자연친화적 태도를 배우고, 장구의 달인에게서는 정해진 장단 없이 노래 부르는 사람의 호흡에 맞춰 연주하는 즉흥성에 대해 배운다. 그 과정에서 기와 음양, 호흡이라는 다분히 동양적인 개념들로 한국의 리듬이 설명되며 바커의 음악 기행은 결국 전통 문화 기행이 된다.

재즈 보컬리스트이자 사이먼 바커의 친구이기도 한 감독 엠마 프란츠가 다분히 영미문화권의 관객을 염두에 두고 찍은 이 영화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는 건 흥미로운 경험이다. 바커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 3일 밤낮으로 진행되는 별신굿이나 음과 양이 만나는 지점으로서의 폭포에서 기를 받는다는 판소리 명창의 고백, 한국의 무속인은 세습무와 강신무로 분류된다는 김동원 교수의 설명은 한국인인 우리에게도 대부분 낯선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형문화재 82호를 찾아서>는 우리에게도 새로운 앎을 얻는 기행이 된다. 지식의 역수출인 셈이다. 그렇다고 우리 전통을 외국인이 더 잘 안고 아낀다는 사실에 너무 자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서구의 시각을 기준으로 우리의 태도를 평가하는 건 결국 역전된 형태의 오리엔탈리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건 “언어는 달라도 음악을 통해 느끼는 건 동일하다”는 어느 강신무의 말일지 모른다. 한국의 관객 역시 한국 전통 리듬에 매혹당하며 바커의 여정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기행의 목적은 충분히 이룬 것이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